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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혜경/그림 김수자 기자

▲ 비에 젖은 시인의 뜨락을 바라보며
ⓒ 김수자
몰락한 왕국의 도읍을 걷는 일은 늘 특별한 감회를 불러오지만 내겐 부여가 더욱 그렇습니다. 열아홉에 처음 부여를 만났는데 그 음전한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잊히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월에 닳고 인연에 상처 입을수록 기억 속에서 부여는 점점 더 또렷해졌지요.

발이 가벼워 쉬이 배낭을 싸는 타입도 아니고 꿈이 드높아 미래로 내달리는 인간도 못되는지라 일상이 버겁다 싶으면 나는 그저 과거로 도망갈 뿐입니다. 금요일이었습니다. 과거로 숨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커지다, 더는 도망갈 자리가 없다고 느꼈을 때 부여행 기차를 탔습니다.

봄비가 안개처럼 풍경을 지우던 아침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논산에서 내려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부여로 향하면서도 부여로 간다는 실감은 왠지 없었습니다. 기억이 너무 강해서 실감을 잃었다고나 할까요. 젖은 부여는 20여 년 전처럼 고즈넉했습니다.

부여야, 잘 있었어.

기억을 더듬어 정림사지를 찾으니, 잘 다듬은 돌담에 깔끔하고 너른 경내가 소박한 옛 자취만 떠올리던 나를 놀래킵니다. 다행히 함부로 손댄 흔적은 없어서 새 변화가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열 아홉 그 시절, 쓸쓸한 빈 절터에서 홀로 당당하던 5층 석탑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었지요. 늙지도 낡지도 않고 여전한 돌탑을 보니 부여에 왔구나, 비로소 실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켠의 단단한 매듭이 설핏 풀리는 듯했습니다.

빗방울이 굵어졌지만 한가로운 거리는 걷기에 좋았습니다. 마음이 좀 누그러지자 비로소 오래 묵혔던 숙제가 떠올랐습니다. 부여에 있는 시인 신동엽의 집을 한번도 찾지 않은 것이 늘 맘에 걸렸었지요. 한가한 관광객이 된 김에 가보자 하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저 젊은 날 나를 사로잡았던 시인의 육체가 궁금하다는 그런 속된 호기심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신동엽을 만난 것도 열아홉 그해 봄이었네요. 불법복제로 은밀히 전해지던 신동엽의 <금강>. 오빠는 그것을 건네며 조심해서 한 부만 복사해 오라고, 평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막 복사한 따끈한 종이뭉치를 들고 나는 도서관 맨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곤 한 장 한 장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넘겨가며 읽어 내렸습니다.

"우리들이 어렸을 적 황토 벗은 고갯마을 할머니 등에 업혀 누님과 난, 곧잘 파랑새 노랠 배웠다......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영원의 하늘, 끝나지 않는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몇 번이나 고개를 쳐들고 눈물이 마르기를, 솟구치는 격정이 가라앉기를 바랐는지요. 도서관 구석에서 가슴 조이며 <금강>을 읽던 4월 어느 날의 기억, 그건 지금도 흉터처럼 내 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복사한 종이들을 접고 풀칠해서 내 손으로 제본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금강>은 지금도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나중에 시절이 좋아져 정식으로 출판된 <금강>과 <신동엽 전집>을 사고서도 그 볼품없는 복사본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미련인지도 모르지요.

<금강>과 신동엽은 그날 그 순간부터 내게 죽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이처럼 되고 싶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시를 쓰고 싶다는 것은 더욱 아니고, 다만 그의 시를 읽은 자로서 그의 시에게 덜 부끄럽고 싶다는 마음으로 청춘의 한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끄러움조차 상투가 되어버린 일상을 살며 그날로부터 스무여 해가 지난 지금 나는 제 허물을 세월에 묻는 인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툭하면 나이를 들먹이고, 변한 시대를 운운하며, 체념과 방관을 관용과 달관인 양 안팎을 속이고 있었지요. 그래서 더욱 더 늦기 전에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다시 한 번 몸을 곧추세우고 제대로 살고 싶었지요. 시인의 집을 가보자던 마음에는 어쩌면 갈수록 누추해지는 내 삶을 구하고픈 엷은 소망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시인의 집은 아담하고 정갈합니다. 안채 툇마루에 앉아 소박하게 다듬어진 꽃밭을 바라봅니다.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 마당을 채웁니다. 병약했던 시인이 어느 날 빗방울 소리에 문득 방문을 열고, 내가 앉은 이 툇마루에서 하염없이 마당을, 하늘을, 돌담 밖 세상을 그렸으리라 생각하니 목이 뜨끈해집니다. 툇마루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조막만 합니다. 우물처럼 내 속을 비추는 웅숭 깊은 그 하늘을 나는 오래 보지 못합니다.

몰락한 왕국의 도읍에서 잊었던 스승을 만났습니다. 더 허물어지기 전에 찾아 나선 여행, 스무여 해 전처럼 부여는 조용히 나를 품어줍니다. 내 속의 독을 금강에 다 흘려보내고 열아홉의 다짐만 가지고 돌아오는 길, 하늘은 여전히 흐리지만 비는 이제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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