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잃어버린 입맛 되살려주는 머위쌈 드세요
ⓒ 이종찬
지금, 우리나라 들판 곳곳에서는 머위가 호박잎처럼 파아란 잎사귀를 쑥쑥 밀어올리고 있다. 머위는 상추나 시금치처럼 누군가 애써 가꾸어놓은 그런 채소도 아니다. 머위는 그저 가만이 내버려 두어도 쑥처럼 저절로 잘 자라나는 흔한 들풀이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따올 수 있는 그런 들풀이다.

머위는 이른 봄부터 보리가 대를 밀어올리는 4월까지가 가장 향긋하고 맛이 좋다. 이 때를 놓치면 머위는 잎사귀가 거칠어지고 머위 잎자루마저 칡넝쿨처럼 억세지기 때문에 맛이 별로 없어진다. 그런 까닭에 머위는 특히 입맛이 떨어지는 요즈음 조리해서 먹어야 제 맛을 한껏 즐길 수 있다.

머위는 이맘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쑥과 함께 아주 즐겨먹는 들풀이다. 경상도에서 '머구'라 부르는 머위는 무엇보다도 쓰린 맛 속에 숨어있는 독특한 향기가 끝내준다. 특히 몸이 나른하고 입맛이 떨어질 때 머위를 조리하여 먹으면 쌉쓰럼하면서도 감칠맛 뒤에 찾아드는 독특한 향기가 금세 잃어버린 입맛을 되살아나게 한다.

어릴 때 내 어머니께서는 해마다 이맘 때면 장독대 곁에 쑥쑥 자라나는 머위잎을 끼니 때마다 땄다. 그리고 머위 잎과 잎자루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된장에 버무려 나물로 무쳐 내기도 하고, 밥 뜸을 들일 때 밥 위에 얹었다가 쌈으로 내기도 했다. "봄에 입맛이 없을 때는 머구잎 이기 최곤기라" 하시며.

▲ 요즈음 한창 피어나는 머위 꽃
ⓒ 이종찬

▲ 요즈음 가까운 들녘에 나가면 지천으로 깔린 게 머위다
ⓒ 이종찬
그때 나와 형제들은 머위의 그 독특한 쓴맛 때문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머위로 만든 조리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머위잎으로 만든 음식을 참 좋아하셨다. 특히 머위잎쌈을 잘 드셨다. 사실, 아버지께서 머위잎 위에 보리밥을 듬뿍 올린 뒤 구수한 멸치장을 얹어 한 입 가득 드시는 것을 바라보면 침이 꼴깍꼴깍 넘어기도 했다.

어머니께서 된장에 잘 버무린 머위나물에 보리밥을 쓰윽쓱 비벼 드시는 것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숟가락이 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며 머위 나물을 냄비 한 쪽으로 걷어낸 뒤 잘 비빈 보리밥만 올려주시곤 했다. 그땐 왜 그리도 머위잎의 쌉쓰럼한 그 맛이 싫었던지. 사실, 머위잎은 쌉쓰럽한 그 맛과 그 맛 뒤에 맴도는 향긋한 감칠맛 때문에 먹는건데.

각설하고. 머위는 예로부터 기침을 멎게 하고, 각종 암을 예방하는 들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선재스님의 사찰음식>이란 책에 따르면 "머위는 겨울 동안 몸에 쌓인 독을 풀어주고 입맛을 나게 하며, 중풍예방의 효과가 있다"고 써있다. 또한 산에서 독사에 물렸을 때에도 머위잎을 짓이겨 붙일 정도로 해독작용이 강하다고 되어 있다.

그뿐이 아니다. 머위는 폐를 부드럽게 하는 작용이 있어, 기침을 가라앉히고 가래를 삭혀주므로 천식이나 기관지 환자에게 아주 좋단다. 특히 폐결핵이나 중풍예방을 위해서는 머위꽃 이삭과 머위잎 자루, 머위 뿌리를 12시간 이상 오래 달인 물을 틈틈이 먹으면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머위로 만드는 음식은 크게 네 가지다. 머위쌈과 머위나물, 머위된장국, 머위장아찌가 그것. 이때 머위의 쓴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아이들을 위해서는 금방 올라온 어린 머위 순을 따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쓴맛을 빼는 것이 조리의 지혜.

▲ 잘 삶은 머위쌈
ⓒ 이종찬

▲ 된장에 잘 버무린 머위나물
ⓒ 이종찬
머위쌈은 부드러운 머위잎을 따서 잘 씻어 삶으면 그만이다. 이때 너무 푹 삶으면 잎사귀가 뭉개지므로 약한 불에 2~3분 정도 삶은 뒤 찬물에 살짝 담궜다가 건져두면 쌈 싸먹기에 아주 좋다. 머구잎 쌈장은 된장보다 멸치액젓이 제맛. 머구잎 쌈장은 멸치액젓에 간장을 조금 붓고 달래나 실파를 송송 썰어 넣은 뒤 깨소금을 살짝 뿌리면 된다.

머위나물은 자잘한 머위 잎사귀와 잎자루를 함께 따서 물에 잘 씻은 뒤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이어 찬물에 담궜다가 건져내 머위 잎자루의 껍질을 아래로 당겨 껍질을 벗긴 뒤 된장과 각종 양념에 버무리면 그만. 간을 맞출 때는 소금이나 간장보다 멸치액젓을 조금 넣으면 머위나물을 씹는 맛이 깊어진다.

머위된장국은 제법 넓직한 머위 잎사귀를 따서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이어 냄비에 멸치 국물을 붓고 된장을 풀어 물을 적당히 부은 뒤 머위를 넣고 센 불에 한소끔 끓인다. 머위된장국이 팔팔 끓으면 미리 송송 썰어둔 잔파와 다진 마늘, 엇쓸기한 양파와 고추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끝.

머위장아찌는 머위 잎자루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뒤 식초와 소금을 1:1로 섞은 물에 보름 정도 삭혀 물기를 뺀다. 잘 삭힌 머위 잎자루를 항아리에 담고 그 위에 된장을 두껍게 덮은 뒤, 달임장(물에 국간장을 풀어 푹 달인 장)을 부어 큰돌로 꾹 눌러놓았다가 한 달쯤 지나 꺼내 먹으면 된다. 이때 갖은 양념을 해서 버무려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머위잎은 뭐니뭐니 해도 초봄에 처음 돋아나는 어린 순과 잎을 따서 조리하는 것이 쓴 맛도 덜하고 향기 또한 뛰어나다. 게다가 어린 머위잎을 씻을 때에는 흐르는 물보다 미리 받아놓은 물에 살랑살랑 씻는 것이 좋다. 흐르는 물에 어린 머위잎을 씻다보면 잎사귀에 멍이 들어 삶으면 멍든 곳이 갈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보기에도 좋지 않고 맛 또한 떨어진다.

▲ 머위쌈은 멸치액젓으로 만든 쌈장이 있어야 제맛이 난다
ⓒ 이종찬

▲ 머위쌈,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지 않습니까
ⓒ 이종찬
지금, 가까운 들녘에 나가면 밭둑이나 논둑에 지천으로 깔린 게 머위다. 조금 더 지나면 머위의 잎사귀와 잎자루가 거칠어지고 드세지면서 쓴 맛이 아주 심해진다. 오늘 퇴근길에 가까운 들녘에 나가 요즈음 물이 한창 오른 머위잎을 한 바구니 따자. 그리하여 머위쌈도 싸 먹고 머위나물도 무쳐 먹으며 가는 4월을 우리 곁에 오래 붙잡아 두자.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