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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그린비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권하는 도서목록엔 고전들이라 칭할 수 있는 작품들이 꽤 있다.

고등학교 때 받는 권장도서 목록 속의 <죄와 벌> <독일인의 사랑> ……. 그것들은 책이 얼마나 권태에 기여하는지를 가르쳐 줬다. 대체 무슨 말인지를 알 수 없지만, 'No Pains, No Gains'라고 하지 않았던가, 형이상학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이런 고역쯤은 감수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했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고전하면 으레 따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한번은 읽어 봐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이 소위 '고전'이다. 이쯤 되고 보면 '고전은 읽히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도 단순한 레토릭은 아닌 듯싶다.

그러나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은 제목 그대로 아주 유쾌하게 읽힌다. 한 번 잡은 책을 여간해서 놓을 수가 없다. 생동하는 구어, 과감한 생략과 영탄 등 저자의 발랄한 문체가 박지원을 살아있는 독서의 공간으로 불러낸다.

그 공간을 들여다보는 독자들은 시종 즐겁다. 근엄한 실학자로만 알았던 박지원이 기운생동하는 인간이었음을 이 책은 말해준다. 훤칠한 풍채, 우렁찬 목소리, 다혈질이면서도 유순한 성격, 촌철살인의 유머감각, 한 마디로 연암은 매력, 그 자체였다.

연암의 마니아로서 그의 인간적 매력을 고백하는 고미숙의 어법은 지극히 날렵하지만 결코 경박하지는 않다. 고전의 엄숙주의와 고리타분함에 경쾌한 잽을 날리며 문체는 씽씽 내닫는다. 그 문체는 고미숙의 것이면서 또한 연암의 것이기도 하다.

점잔을 빼는 학자라면 고미숙의 글쓰기에 도리질을 칠지도 모르겠다. 주관성을 배제하고, 수사를 절제하라는 것이 소위 '논문식 글쓰기'의 암묵적 명령이었다. 객관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결과적으로 읽히지도 않는 몰개성적인 논문을 양산해냈다. 대한민국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그런 몰개성적인 글쓰기에 직간접으로 참여한다는 일이기도 했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의 저자, 고미숙은 이런 논문식 글쓰기 방식을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긴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어조와 제스처를 쓸 것인가, 혹은 어떤 장식음을 활용할 것인가, 하는 따위는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다. 그런 테크닉을 숙련하는 과정 자체가 앎의 경계를 결정한다. 말하자면, 문체는 사유가 전개되는 초험적인 장인 셈이다.

(…) 지금 대학에서 양산하는 학문체계는 논문이라는 표현형식을 모든 구성원들에게 부과한다. 그러므로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대학이 부과하는 코드화된 언표체계를 습득해야만 한다. 예컨대,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또 결론에선 본론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남는 과제를 제시한다는 식으로, 사용되는 문장형식도 몇 가지로 정해져 있다. 이런 틀에 맞추려면 당연히 담을 수 있는 내용도 한정될 수밖에 없다.

(…) 만약에 논문에 네티즌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문체를 사용했다고 하자. 아예 논문 제출 단계에서 짤리고 만다. 그 정도까지 갈 것도 없이 약간만이라도 아카데믹한 어법에서 벗어나면, 당장 제동이 걸리는 게 대학의 현실이다.

(…) 문체야말로 체제가 지식인을 길들이는 가장 첨단의 기제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문체는 지배적인 사유를 전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문턱이기도 하다."


이 문장들은 박지원의 시대를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오늘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과거를 말하면서 오늘을 말하기', 바로 그것이 이 책의 서술전략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열하일기>에 대한 유쾌한 해석서다. 고미숙이 소개하는 연암은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연암의 선입견을 단 한 방에 날려준다. 저자가 전해주는 연암은 유머와 역설로 시대를 농락해버린 웃음의 천재요, 개그의 달인이었다. '열하일기의 빛나는 유머와 뜨거운 패러독스를 사방팔방에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 이 책의 저술동기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상당 부분 달성한 듯 보인다.

이 책의 곳곳에는 들뢰즈의 자취가 어른거린다. 유목·탈주·배치와 같은 들뢰즈식 개념어들이 연암을 설명하는 데 맞춤한 틀이 되어주고 있다. 들뢰즈의 어법을 빌리자면 연암은 지배적 코드로부터 탈주하여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산 유쾌한 분열자였으며 한시(漢詩)라고 하는 형식적 틀로부터 조차도 탈주하고자 했던 유목민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었다. 어떤 장르적 구속도 그의 생동하는 에너지를 가둘 수 없었다. 그만큼 그는 발랄한 인간이었다.

"그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소품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문장에 생의 약동하는 기운을 불어넣을 것인가였다. 말하자면 글이란 읽는 이들을 촉발하는 공명통이어야 한다. 찬탄이든 증오든 공명을 야기하지 못하는 글은 죽은 것이다."

연암의 문체를 잘 요약해주는 문장이다. 이를 다시 들뢰즈의 어법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중요한 것은 외부와 내부를 넘나들면서 끊임없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변이의 능력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논점을 변증법적으로 영토화하는 순간 종횡무진하는 이 게릴라적인 담론은 고상하고 평온한 질서로 평정되고 만다.

(…) 그의 글은 소설과 소품, 고문과 변려문 등이 자유자재로 섞이는 한편, 천고의 흥망성쇠를 다룬 거대담론과 시정의 우스갯소리, 잡다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하나로 분류되는 순간, 그 그물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곤 한다."


<열하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예고편의 컨셉을 '호모루덴스가 펼치는 개그의 향연'으로 잡겠다는 식의 구절은 다소 연암을 희화화한 감이 없지 않지만 과히 틀린 말도 아닌 듯싶다. 속사포처럼 튀어나오는 연암의 달변을 찬찬히 음미하다보면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연암의 인간적 매력을 독서의 시공간 안에 탄력 있는 언어를 빌어 복원시켜 놓았다는 점. 연암과 다산을 비교한 대목도 흥미롭다.

"그(다산)가 택한 행로는 혁명적이기는 하되, 성리학적 틀과 마찬가지로 이항대립적 마디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안에서 소수적이고 분열적인 욕망의 흐름이 틈입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예측불가능한 흐름들은 중심적인 의미화의 장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경세가인 다산이 엄청난 양의 시를 쓴 데 비해, 정작 문장가인 연암은 시의 격률이 주는 구속감을 견디지 못해 극히 적은 수의 시만을 남겼다. 전자가 시에 혁명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면, 후자는 시의 양식적 코드화 자체로부터 탈주하고자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신체의 파동을 지녔던 셈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호곡장(好哭場)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광활하기 짝이 없는 요동벌판을 처음 본 순간 연암은 이렇게 독백한다.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만하구나.'

연암의 도저한 내공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요동벌판이 한 번 울기에 좋은 곳이란다. 이에 일행 중의 한 사람인 정진사가 '이런 하늘과 땅 사이의 큰 안계(眼界)를 만나서 갑자기 다시금 울기를 생각함은 어찌된 것이요?'라고 물으니 이에 대한 연암의 대답이 기상천외한 걸작이다.

"아이가 태 속에 있을 때는 캄캄하고 막힌 데다 에워싸여 답답하다가, 하루 아침에 넓은 곳으로 빠져 나와 손과 발을 주욱 펼 수 있고 마음이 시원스레 환하게 되니 어찌 참된 소리로 정을 다해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런 까닭에 마땅히 어린아이를 본받아야만 소리에 거짓으로 짓는 것이 없게 될 것일세.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는 것이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고, 황해도 장연(長淵)의 금사산(金沙山)이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오. 이제 요동벌에 임하매, 여기서부터 산해관(山海關)까지 일천 이백 리 길에 사방에는 모두 한 점의 산도 없어 하늘가와 땅 끝은 마치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매 놓은 것만 같아 해묵은 비와 지금 구름이 다만 창창할 뿐이니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오."


연암의 이 거인다운 스케일에 압도당하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선 <열하일기>에 직접 부딪쳐 볼 일이다. 그러나 고미숙을 읽는 독서의 시간도 충분히 즐겁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개정신판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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