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해 5월 13일 오후 3시쯤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성동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 전공 풍동실험실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그 불의의 사고로 박사 과정 2년차인 조정훈 연구원이 목숨을 잃었고 4년차인 강지훈 연구원은 두 다리를 잃었다.

푸른 하늘을 향해 항공우주공학의 꿈을 키워가던 청순한 '5월의 신록'을 무참히 앗아간 그 날로부터 1년이라는 세월이 바람같이 흘러갔다. 자식을 잃은 사람은 한없이 허황하고 무거운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고 다친 사람은 두 다리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좌절해야 했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더니 다시 1년 전 그 날이 왔다. 지난해 고 조정훈 연구원 영결식이 거행된 카이스트 노천극장에서 13일 오후 3시 고인의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비가 내리고 그친 다음 날이라 날은 상쾌했다. 하늘을 온통 차지하고 노니는 듯한 구름이 햇빛을 잘 가려주었다.

▲ 추모식장 전경
ⓒ 지요하
너른 마당에 가지런히 놓인 200여 개의 의자들은 유족들, 공주대 교수와 지역 문인들을 포함한 외래 손님들, 카이스트 교수와 교직원들로 거의 채워졌고, 카이스트의 젊은 공학도들은 스탠드에 앉아 숙연한 분위기를 함께 나누었다.

추모식은 박승오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먼저 권장혁 책임교수가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약력소개'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소개가 간단해서 고인의 너무도 이른 죽음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공학장 좌경룡 교수는 추모사에서 "고인은 전도 유망했던 젊은 공학도로서 한창 혈기 왕성하고 꽃다운 나이에 뜨거운 열정과 패기로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하다 뜻한 일을 다 펼치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를 당함으로 그 애석함이 더욱 절실해진다"고 말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또다시 이 같은 불행한 일이 우리 카이스트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모든 이공계 대학 실험실에서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여기 모인 모든 분들 앞에서 다시 한번 다짐한다"고 말했다.

또 실험실 학생대표 이종광씨는 추모사에서 "저희는 정훈이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저희가 감히 그 빚을 갚을 수 있을지조차도 모르겠습니다. 정훈이에게 진 빚을 저희가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길은, 정훈이가 가고 싶어했던 연구자로서의 길을 저희가 충실히 가는 것입니다"고 말한 뒤 "지금 이 순간에도 실험실에 숨어 있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실험에 열중해 있을 대학원생들에게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힘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하고 울먹이며 말했다.

▲ 1주기 추모식장의 고 조정훈 박사 영정
ⓒ 지요하
이어 공주문인협회 조재선 여성회원이 나태주 시인의 추모시 <아들아, 아들아>를 암송으로 낭송했고, 두 학생이 조남익 시인의 추모시 <그 이름 고 조정훈 영혼 진혼곡>과 이재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의 추모시 <나는 한국과학의 순교자라오>를 낭송했다.

슬프고도 무거운 기운이 장내를 감싸는 가운데 '조정훈 박사 추모기념문집 간행위원회' 위원장 권장혁 교수가 고인의 영정 앞에 추모문집 <하늘 밭에 뿌린 하얀 비행기의 꿈>을 헌정했다.

추모문집은 총 595쪽으로 도서출판 다래에서 만들었다. 고인의 삶과 연구 성과들을 고루 담았고 사고 사건과 관련한 다양한 문건들을 모두 수록했다. 고인의 아버지 조동길 교수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눈물로 쓴 편지글 <사랑하는 아들에게>와 본 기자가 지난해 여름에 썼던 <예비박사 외아들 잃은 조동길 교수의 슬픔>, <'카이스트'로부터 공문을 받고>라는 두 개의 글과 함께 그 글들이 불러모은 독자의견도 전부 수록되었다.

고 조정훈 연구원에게는 박사학위가 추서되었다. 그에 따라 홍창선 카이스트 총장을 대신하여 유진 부총장이 주는 학위증서를 고인의 누이동생이 대신 받았다.

그리고 유가족, 추모위원, 교직원, 학생 순으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처음부터 울음을 참느라 애를 쓰고, 소리 없이 눈물만 닦던 고인의 어머니 이성인씨는 가족과 함께 헌화를 할 때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지난 일년 동안 하루도 기쁜 날이 없었고, 전에는 없던 이런저런 잔병들이 생겨 수시로 병원 출입을 해온 처지였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그 슬픔의 질량은 당해 본 사람만이 겨우 헤아릴 수 있을 터였다.

▲ 아들의 영정 앞에 분향 헌화하는 조동길 교수 부부
ⓒ 지요하
마지막으로 고인의 아버지 조동길 공주대 교수가 유족을 대표하여 인사말을 했다. 지난 일년 동안 진상 규명과 책임 소재 문제에 대해 고심과 번민을 거듭해 온 그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보상금에다 아들의 장례 때 들어온 부조금 전액을 보태고 자신의 사재까지 얹어 4억4천만원의 '카이스트 조정훈 항공우주공학 학술기금'을 조성했다. 그 기금에서 생겨나는 연간 3천만원의 이자 수입을 가지고 항공우주 공학도 3명에게 1천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라는 것은 이미 추모식 전에 알려진 사항이었다. 물론 그 학술기금은 조 교수 자신이 관리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측에 완전히 쾌척한 것이다.

"아버지로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아이가 죽어갈 때 같이 있어주지 못했다는 것, 아버지인 내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지난 일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았고, 꿈속을 사는 것이기를 바랐고, 저녁에는 아이가 집에 들어올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았습니다. 오늘까지 이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울음 때문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6대 독자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명확한 어조로 말했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 어떤 형태로든 아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살펴줘야 한다는 것, 그 두 가지 마음으로 일년을 버텨왔다고 했다.

"제가 제 아들아이의 추모사업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요구했던 것은 죽은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이라는 이름의 이 학교를 위해서이고, 우리 나라의 이공계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 안에 추모시비가 세워지기를 원한 것은, 다시는 그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는 성찰의 장소, 교육의 장소, 교훈의 장소가 만들어지기를 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은 아들의 넋이 카이스트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모든 이공계 대학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발전시켜 주고 지켜주는 촉매제와 같은 구실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하는 마음으로 슬픔을 달래며 좀더 겸허하게 살고자 한다고 했다.

▲ 휠체어를 타고 영전에 헌화하러 가는 강지훈 연구원. 그는 지난해 실험실 폭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 지요하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조 교수에게 뜨거운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보냈다. 곧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서서 추모문집을 한 권씩 받아들고 잠시 언덕길을 내려간 다음 일년 전 오늘 폭발사고가 났던 풍동실험실 근처 둔덕 위에 세워진 '추모시비' 앞에 모여 섰다.

추모시비는 공주 땅 석현 조각가의 손으로 만들었고, 조재훈 시인의 시와 정영진 화백의 그림이 새겨있다고 했다. 곧 유족들과 추모시비를 만드는 일에 수고한 이들이 양쪽에 서서 끈을 당겼다. 바람에 펄럭이며 막이 벗겨지자 보기 좋은 추모시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조동길 교수와 부인 이성인씨는 잠시 추모시비를 바라보다가 다가가서 어루만졌다. 생전의 아들을 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앞으로 종종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이곳으로 와서 추모시비를 어루만지며 살 거라는 생각이 언뜻 기자의 뇌리 속을 스쳐갔다.

추모시비에 새겨진 조재훈 시인의 추모시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맺는다.

하얀 비행기 정훈에게

보라
철철 넘치는 오월의 햇살
그 너머 푸른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낮달
너, 그렇게 살고 있다
땀으로 쌓은 지상의 봉오리가
마침내 하늘에서 피는가
첫눈 같은 사람아
바람 잔 들판의
풀꽃 같은 사람아
남은 사람들 거친 땅에 서서
머리 들어 그리움으로 바라보나니
영원하라
즈믄 해 영원하라
오늘도 간절한 너의 영혼
하이얀 비행기가 되어
아, 아득한 높이에서
날고 있다.

-전 공주사대 학장. 현재 공주대 명예교수. 시집 <겨울의 꿈> 등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