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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하면 으레 공주나 부여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몇 차례 도읍을 옮겼다는 것 역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잘못 알려진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의자왕과 3천 궁녀 혹은 계백이라는 인물 역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백제의 모습'.

그런데 백제가 지금의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구려에서 온 온조가 기원 전 18년 처음 백제를 세운 곳은 다름 아닌 서울. 475년 고구려 장수왕 휘하 3만 대군에 밀려 공산성 이른바 공주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약 493년간 백제의 도읍이 있던 곳이다.

특히 ‘한성백제’는 백제가 수도를 지금의 공산성 즉 공주로 옮겼을 때의 ‘웅진시대’ 및 부소산성 곧 부여를 수도로 했을 때의 ‘사비시대’와 구분하기 위해 갖다 붙인 명칭이다. 이는 백제 문주왕이 수도를 공주로 옮긴 475년부터 성왕에 의해 다시 수도를 옮긴 538년까지의 ‘63년’과, 성왕 때부터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의 ‘122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지금의 서울에 수도를 두었다는 것이다. 즉 백제 역사에 있어 익히 알려져 있는 공주나 부여보다 현재의 서울이 시기적으로 백제 도읍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라는 이야기.

▲ 몽촌토성
ⓒ 권기봉


백제의 첫 도읍은 부여나 공주 아닌 서울!

백제 역사의 72.7% 이상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유의 문화를 꽃피웠을 한성백제. 그 흔적을 찾아 떠나보자.

한성백제와 연관이 있는 유적이 서울과 하남 일대에 남아 있다. 하남은 근래 들어 도로나 건물을 지으면서 땅속에 있던 유물들이 지상으로 드러남으로써 한창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 한성백제와 관련해 의미 심장한 곳이지만, 그러나 발굴작업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둘러보기는 힘든 실정이다. 그러나 지레 포기하거나 겁먹지 말 일이다. 조금 서쪽으로 눈을 돌려 서울 송파구로 가자.

서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중 풍납토성은 백제가 서울에 도읍을 두고 있을 때의 왕성인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되는 성으로 현재 역사학계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는 성이다. 몽촌토성 역시 한성백제의 역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그러나 풍납토성이 우리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이형구 선문대 교수에 의해 62년경부터 풍납토성이 하남 위례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후 97년 신정 연휴기간 동안 현대아파트 공사 현장에 몰래 들어가 다량의 백제 토기 등을 수습해 공론화시키는 과정에서 비로소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 몽촌토성의 목책
ⓒ 권기봉

성의 바깥쪽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판 해자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풍납토성은 홍수 등으로 유실되어 볼 수 없는 서벽을 포함해 전체 길이가 약 3.5km(현재 남아 있는 것은 2.2km 정도)에 이르는 총 면적 26만여 평의 국내 최대 규모 토성이다. 게다가 아시아 최대 규모의 판축토성, 즉 나무 기둥을 세우고 나무판을 댄 뒤 진흙과 모래, 나무껍질 등을 켜켜이 쌓아 만든 성이기도 하다.

한편 이 성을 쌓는 데 들어간 흙의 양이 자그마치 8톤 트럭 20만 대 분량에 달하는 154만 톤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것마저도 계산의 편의상 성벽의 모양을 이등변삼각형으로 가정해 나온 최소량이라고 한다.

다만 풍납토성을 돌아봄에 있어 한 가지 문제는 아직 국가가 나서 토지매입을 하지 않은 관계로 골목길과 도로를 '스스로 알아서' 찾아 다녀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일단 잔디를 심고 철책을 둘러 놓아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만, 그 역사성에 비해 홀대 받고 있는 듯한 인상은 아쉬운 대목이다.

풍납토성의 상황이 이러하니 한성백제의 추억을 여유 있게 둘러본다는 것은 그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아니다. 아쉽더라도 조금만 자리를 옮겨 '꿈꾸는 마을' 몽촌토성으로 가보자.

해자와 목책으로 둘러싸인 서울 도심 속 성, 몽촌토성

풍납토성과는 달리 몽촌토성은 1916년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보고에 의해 알려진 이후 방치되다가 1980년대 초 이 일대를 올림픽공원으로 개발하기 시작면서 본격적으로 발굴되었다.

ⓒ 권기봉

83년부터 모두 여섯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 몽촌토성. 이는 자연 구릉을 이용해 만든 토성으로, 성 외곽에 해자와 목책을 두르고 있었다. 지금도 해자 위치에 물을 가두어 놓아 당시의 모습을 어느 정도 상상해볼 수 있는데, 곳곳에 목책도 복원해 놓아 성의 원래 모습을 떠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성 내에서 초기 백제인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집터가 발견돼, 이를 복원해 놓고 있다.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코스로 흙으로 쌓은 성의 능선을 따라 산책이나 조깅을 할 수 있으며, 몽촌토성역사관도 있어 이곳에서 발견된 토기나 연장 등 각종 유물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몽촌토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고분군이 있어 하루에 둘러보기 알맞은 여정이다. 일제 시대까지만 해도 약 80기의 고분이 남아 있었다고 하나, 이후 꾸준히 훼손되어 74년 처음으로 발굴조사를 했을 당시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던 것은 단 3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런 나중에 여러 기의 적석총과 석관묘 등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 몽촌역사관
ⓒ 권기봉

‘한성백제 문화제’ 21일(일)까지 송파구 일원에서 열려

그냥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을 둘러보기가 멋쩍다면 오는 21일(일)까지 열리는 ‘한성백제 문화제’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격년으로 열리는 이 문화제는 올해로 6회째로, 고구려 고국원왕의 침입을 받았을 때 지금의 황해도 백천에서 격퇴하고 황해도 신계까지 영토를 넓힌 근초고왕의 아들 근수구왕을 테마로 열린다. 그는 일본이 백제로부터 학자를 구하자 왕인으로 하여금 일본으로 가게 해 백제의 문물을 일본에 전파한 왕으로도 유명하다.

석촌동 고분군과 백제고분로, 올림픽공원 등 송파구 일원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는 송파나루 장터 재현과 즉위식 행사. 뱃놀이 공연 등 각종 거리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먼저 19일에는 석촌호수에서 뱃놀이 선상공연이 열린다. 이 공연은 직접 석촌호수에 황포돛배를 띄우고 경기민요와 한국 고전무용으로 분위기를 한껏 드높일 예정이다. 그리고 20일에는 석촌동 백제초기 적석총에서 동명제와 근수구왕 즉위식 재현 행사 등이 열린다. 동명제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 때부터 시행된 것으로, 온조의 시조인 동명왕에게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이어 같은 날부터 21일까지는 조선시대 전국 15대 장시 중 하나로 유명했던 송파나루 장터가 재현된다. 짚신과 전통 도자기를 만드는 전통풍속체험마당이 마련되는 이 행사는 석촌호수 주변과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린다.

문의 : 송파구청 문화체육과 02-410-3410~3, www.songpa.seoul.kr/hanseong

▲ 몽촌토성
ⓒ 네이버 편집

그곳엔 어떻게 갈까?

▲ 석촌동 백제초기 고분군
ⓒ네이버 편집

1) 풍납토성 찾아가는 길 - 지하철 8호선 강동구청역이나 천호역에서 내리면 된다. 그러나 아직 안내표지판 등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지역주민들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2) 몽촌토성엔 어떻게? -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이나 지하철 5호선 올림픽공원역에 내리면 바로다.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 내에 있다.

3) 백제초기 고분군이 있다고? - 송파구 석촌동에 있다. 지하철 8호선을 이용하면 편하다. 석촌역에서 내려 6번이나 7번 출구로 나가, 약 400m만 걸어가면 된다.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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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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