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또래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은 별로 즐기지 않지만, 또 한때는 열렬히 사랑했던 음식이 있다면. 그래서 또 그 많은 사람들이 혀끝보다는 머리로써 너그러이 사랑하는 음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쵸코파이일 것이다.

요즘에도 우연히 한 개 주어지면, 두 개만 되어도 먹지 않을 것인데 한 개라서, 어디 오랜만에 한 번 먹어보자고 뜯어보게 되는 쵸코파이. 그것을 먹다 보면 흔히 나누게 되는 대화들이 있다.

"쵸코파이 많이 비싸졌네. 옛날에는 백원이었는데."
"그나저나 이건 누가 먹길래 이렇게 계속 만들어내는거야?"
"야, 너 몰라서 그렇지, 이거 아직도 인기 상품이야. 육십만 국군장병하고 수억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다 쵸코파이의 열렬한 팬이잖냐"

어린 시절 나도 그렇게 좋아했고, 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쵸코파이. 그러나 또 많은 사람들이 우스운 옛날 음식 취급을 하기도 하는 이 식품이 가지는 가장 큰 흠은 아마도 그 단 맛일 것이다. 쓴 맛, 신 맛도 아닌 단 맛 때문에 배척받는 음식.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자연히 '사람이 참 간사해' 하는 감상으로 이어진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지금이야 '너무 달다'는 말이 흠이 될 수도 있지만, 바로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 달다'는 말은 곧 '너무 맛있다'는 의미 외의 것을 가질 수 없었다. 아니, 십년 전이 다 무엇이냐, 바로 몇 해 전 군대에 막 들어가 기초군사교육을 받던 시절에는 군종장교가 나누어주던 쵸코파이 한 개의 유혹 때문에 나는 이미 받은 세례를 또 받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지금은 냉면 국물이 너무 달고, 뼈다귀 해장국 국물이 너무 달고, 떡볶이 빨간 고추장이 너무 달다. 그래서 어디 담백한 음식점이 없느냐고 찾아다니기까지 한다. 그래서 쵸코파이도 그 맛은 별로 변하지 않았지만, 나와 내 세대의 삶이 얄팍하게나마 바뀌면서 어린 시절과 궁하던 시절에 느끼던 단 맛의 황홀함과 함께 잊혀져가고 있다.

전방 부대에서 군생활을 하던 시절, 어느 4월이었다. 4월이지만 전방의 산천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던, 그래서 늦겨울도 아닌 한겨울이었던 그 4월에 가까이 있는 어느 부대에서 한 병사가 탈영을 했다. 불빛도 없는 까만 밤에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체육복 차림 그대로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고 했다.

사라진 병사를 찾기 위해 또 수천 명의 병사들이 밤낮없이 산속을 헤맸다. 우리 부대도 책임지역이 겹친다는 이유로 덩달아 바빴었다. 심지어 그런 보람도 없이 보름이 넘어가도록 흔적조차 찾지 못하자, 그 부대 지휘관은 점장이도 찾아갔다고 했다. 그 점장이가 '민가에 숨어있을 것'이라고 하자, 주변 몇 채 안 되는 민가에도 가서 혹시 숨겼거든 내어달라고 통사정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병사가 발견된 것은 눈도 모두 녹고, 이젠 어디 숨어서 잘 사는가보다 했던 오월 말이었다. 그 병사는 다리 밑 돌 틈에 웅크린 채 풍화되고 있었다. 듣기에 40일 전 사라진 그 밤에 입었던 오렌지색 체육복 차림 그대로였고, 주머니에는 쵸코파이 빈 포장 한 개와 미쳐 다 먹지 못한 또 한 개의 쵸코파이가 들어있었다고 했다.

그 병사가 왜 부대 담을 넘었는지에 관해서는 듣지 못했다. 어쩌면 남달리 험한 일을 당했을 수도 있고, 또 그 시기의 누구나 겪게 되는 낯선 삶의 무게가 그날 그의 여린 부분을 찔렀는 지도 모른다. 아마도 담 넘어 불빛 한 점 없는 산길을 달리다가 다리 아래로 떨어져 다리를 다쳤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 숨어 수색병들을 속이려고 작정했다가 만만치 않는 겨울바람에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버렸을 것이라고들 했다.

그가 준비했던 쵸코파이 두 개. 아마도 일병이었다고 기억되는 그 병사는 쵸코파이 두 개라면 어둠 속 험한 탈영길에 마음이라도 좀 가벼워졌을지, 아니면 며칠이 될 지 모를 길에 든든한 비상식량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겨울 같던 4월 밤, 잠들지 말았어야 했던 그 자리에서 잠들어 얼어붙기 전에 그 병사가 '내일을 위해' 아마도 남겨두었을 쵸코파이 한 개가, 멀찍이서 소문으로만 듣던 내게는 목과 가슴 사이 어디선가 넘어가지 않고 뻗대는 커다란 알약처럼 뻐근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