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산 안창호의 문제의식은 '힘을 기르자'로 요약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건 당시 조선이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산이 '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것은 17세 때였다고 합니다. 한반도에 대한 종주권을 놓고 청나라와 일본이 쟁투를 벌였던 청일전쟁을 그가 직접 목격했던 것입니다.

1894년 7월 일본 해군은 경기도 풍도(豊島) 앞바다에서 청국 해군을 패퇴시켰고, 부산을 통해 북상한 일본 육군도 충청도 성환에서 청나라 육군을 물리쳤습니다. 이후 서울을 점거한 일본 육군은 북상을 계속해 9월에는 평양에서 다시 한번 청국군을 물리쳤습니다.

평양전투 이후 한 달도 안되어 일본군은 압록강을 건넜고 단둥에서 다시 한번 청군을 물리치고 뤼순(旅順)학살사건을 일으킨 후 봉천(奉天) 남부의 요동반도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듬해 2월16일 마침내 일본 해군은 웨이하이웨이(威海衛) 군항에서 청나라의 북양(北洋)함대를 격멸하고 타이완(臺灣) 점령을 위해 펑후섬(澎湖島) 작전을 마무리함으로써 청나라를 굴복시켰습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인상적이고 효과적인 전쟁입니다. 2천년간 조공국이던 일본이 종주국이던 중국과 6개월의 전쟁 끝에 완전히 제압해 버린 것입니다. 서양 각국이 일본을 다시 보게 만든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백성들은 청나라와 일본 사이의 전쟁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거나 감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양국 군대가 싸우는데 망가지는 것은 조선의 강토와 문화재였고 다치고 죽어나간 것은 조선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땅은 전쟁 결과에 따라 이편에서 저편으로 넘겨지는 전리품 취급을 받았습니다.

청일 전쟁은 조선 백성들에게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도산은 그 상처를 더욱 절절히 느꼈습니다. '어째서 외국군들이 조선 땅에서 싸우는가, 그리고 조선은 어째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당해야 하는가'하는 것이 17세에 불과했던 도산의 마음속을 괴롭혔던 일이었습니다.

도산은 다짜고짜로 서울로 올라가 구세학당에 입학해 서양식 학문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도 가입해서 적극적인 정치운동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조선인들에게 '힘'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지요. 도산의 이러한 깨달음을 주요한이 지은 <안도산전서>(412-3쪽)에 다음과 같이 표현돼 있습니다.

"…내가 이에 간절히 부탁하는 바는 이것이외다. '여러분은 힘을 기르소서. 힘을 기르소서' 이 말씀이외다. …독립이란 본뜻은 내가 내 힘을 믿고 내가 내 힘을 의지하여 삶을 이룸이요, 이 반대로 남의 힘만 믿고 남의 힘을 의지하여 사는 것은 노에의 하나니… 독립할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독립국의 열매가 있고 노예될 만한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망국의 열매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독립할 만한 자격이라는 것은 곧 독립할 만한 힘이 있음을 이름이외다."

도산은 후일 흥사단을 설립하면서 '힘'에 관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자력(自力)주의입니다. 믿고 의지할 것은 우리의 힘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양력(養力)주의입니다. 힘은 '길러야' 생기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대력(大力)주의입니다. '큰 힘'을 길러야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요약하면 '내 힘을 크게 기르자 (養大自力)'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당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요즘에야 '자기 힘'을 '크게'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시만 해도 병력과 무기 등의 군사력은 물론 양식과 산업의 경제력마저 미비한 조선은 생존을 외세에 맡겨놓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친중파, 친일파, 친러파 같은 파당들이 생겨났겠습니까? 자력으로 할 수 없으니 외세에 의지해서나마 독립과 개혁을 이루어 보자는 발상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식처럼 보이는 도산의 삼력(三力)주의는 당시로서는 정치가나 관료들로서는 이해할 수조차 없는 깨달음이었겠습니다.

도산은 '내 힘을 크게 길러야 하겠다'는 깨달음뿐 아니라 '어떤 힘이 필요한가'에도 생각이 미쳤습니다. 도산이 필요를 절감한 힘은 세 가지입니다. 그 세 가지 힘은 다음에 인용한 흥사단의 목표에 삼육(三育)으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본단의 목적은 무실역행으로 생명을 삼는 충의 남녀를 단합하여 정의를 돈수하고, 덕체지 삼육을 동맹수련하여 건전한 인격을 작성하고 신성한 단결을 조성하여 우리 민족 전도의 대업의 기초를 준비함에 있다."

길러야 할 힘의 종류가 세 가지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덕체지(德體智)가 그것입니다. 도덕(道德)적인 힘과 육체(肉體)적인 힘과 정신(精神)적인 힘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요즘 흔히 쓰는 말로는 지덕체(智德體)라고 하는데 도산의 목표에서는 순서가 바뀌어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도덕적인 힘이 가장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몸과 마음의 힘이 따라 나옵니다. 몸과 마음의 힘은 도덕적인 힘이 뒷받침 될 때에야 제대로 된 효력을 발휘한다는 인식으로 이해됩니다.

그러고 나서 그런 힘을 기르는 방법론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흥사단이 표방하는 4대 정신입니다.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날 흥사단은 이 4대 정신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무실(務實 ; 참되자) ⇒ 거짓과 헛된 것을 버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정신
*역행(力行 ; 일하자) ⇒ 말보다 실천에 앞장서며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정신
*충의(忠義 ; 미쁘자) ⇒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고 사람에게는 신의를 지키는 정신
*용감(勇敢 ; 날쌔자) ⇒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정신과 탐구와 진리에 사는 정신

저는 물론 이런 해석에 썩 만족하지 못하는 편입니다만 이 단체 회원들이 채택한 수양 목표와 그 방법론을 두고 왈가왈부할 형편은 못됩니다. 그러나 적어도 무실(務實)의 항목에 대해서만은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도산의 가르치는 바를 무실(務實)이라는 말로 요약하고 싶어서 쓰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위의 4대 정신 중에서 무실(務實)은 다른 세 가지와 격이 좀 다릅니다. 무실은 다른 세 가지 정신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앞서 제시한 무실의 뜻 때문입니다.

무실(務實)은 실(實)에 힘쓴다(務)는 말이었습니다. 힘쓴다는 뜻의 무(務)자의 옛 글자에는 오른쪽 아래에 덧붙여진 힘 력(力)자가 없습니다. 그냥 '창 모(矛)'자와 '칠 복'로만 이루어졌던 글자입니다. 모(矛)란 끝이 갈라진 긴 창을 말합니다. 장비가 썼던 장팔사모도 그 일종이지요.

'칠 복'자는 '후려치다'는 뜻입니다. 오른 손(又)으로 막대기(卜)를 잡은 모양을 딴 글자입니다. 오른손으로 후려친다는 말은 힘껏 후려친다는 말입니다. 오른손잡이가 정상이었던 고대에서는 오른손이 왼손보다 힘이 센 것으로 인식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무(務)자는 원래 창으로 힘껏 후려갈긴다는 말입니다. 그것만해도 '힘'이 잔뜩 들어간 말입니다. 그런데다가 후일에 힘 력(力)자가 하나 더 추가됐습니다. 그래서 무(務)는 '있는 힘을 다한다'는 뜻을 더욱 강조한 말입니다.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태도를 가리키며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한편 실(實)자는 앞에서 이미 본 바 있습니다. 실(實)은 어원적으로 '원칙으로 잘 갈무리된 가용한 보화'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실(實)자는 한국에 들어오면서 '여물다' 혹은 '영글다'로 번역됐는데 오늘날에는 그런 동사의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여물다/열매'는 그 속에 세 가지의 뜻을 포함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참되다,' '씨가 있어 힘이 있다,' '꽉 차서 쓸모가 있다'는 뜻입니다.

무실(務實)을 이렇게 해석해 놓고 보면 무(務)자는 흥사단의 다른 정신인 역행(力行)과 용감(勇敢)과 겹치는 말입니다. 적극적이고 투쟁적이며 최선을 다하는 정신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한편 실(實)자는 충의(忠義)와 겹치는 개념입니다. 마음(心) 한가운데(中)에 있는 씨(實)가 바로 충(忠)을 가리킬 수 있고 옳다(義)는 것은 곧 참되다는 것이기 때문이겠습니다. (물론 의(義)는 단지 참되다(眞)는 뜻만은 아니겠습니다만 이는 나중에 더 살펴보기로 합니다.)

이렇게 도산의 '힘 기르기'는 사실상 '무실(務實)'이라는 말로 가장 잘 요약될 수 있습니다. 무(務)는 힘 기르기의 방법론을 가리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적극적이고 전투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무(務)이기 때문입니다. 실(實)은 길러야 할 힘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씨(원칙)가 갖는 자기 재생산 능력,' '실제에 유용한 쓸모 있는 힘,' 그리고 '거짓이 없는 참된 힘'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정리된 실(實) 개념은 사실상 도산이 말했던 세 가지 힘(三育)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됩니다. 자기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원칙(씨)의 힘은 도덕적인 힘(德力)과 연관됩니다. 실생활에 유용한 쓸모 있는 힘이란 개개인의 체력(體力)과 연관됩니다. 그리고 거짓이 없는 참된 힘은 진리를 알아내는 힘(智力)과 연관됩니다.

이렇게 도산의 '힘 기르기'는 온통 새로 해석된 무실(務實) 개념으로 잘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길러야할 힘의 내용을 설명해 줄 뿐 아니라 그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론까지 서술해 주기 때문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