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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SW산업의 전망에 대한 한국인프라 김기영(39) 사장의 입장은 지난 호에 소개된 KAT시스템 국오선 사장과는 반대편을 서 있는 듯하다. 외국산 S/W에 정면 대응해 한국형 ERP를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국오선 사장과 달리 그는 오히려 외국제품을 기반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상반된 비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산 엔진을 개발할 비용에 값싼 엔진을 들여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고객이나 회사에 더 큰 이익이라면 바람직한 측면이 있죠. 국내 업체들도 굳이 외국제품과 기술격차가 큰 분야에서 경쟁할 것이 아니라 틈새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어요."

벤처투자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한 지난해 6월. 인터넷GIS(지리정보시스템) 전문업체인 한국인프라는 대만계 창투사인 CDIB코리아와 N벤처기술투자로부터 3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그동안 오토데스크사의 그늘에 가려 있던 한국인프라가 국내 GIS업계에 알려진 계기이기도 했다.

한국인프라(대표 김기영)는 국내 CAD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오토데스크사의 국내 하나뿐인 GIS분야 컨설팅 파트너로서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 신공항고속도로 등 공기업에 웹 기반 지리정보시스템을 공급해 왔다. 하지만 자체 솔루션이 아닌 외국제품에 기반한 사업이다보니 인터넷GIS사업을 통해 실적을 올린 거의 유일한 업체이면서도 업계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외국솔루션과의 정면 대응은 무의미"

김기영 사장은 실적면에선 GIS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다. 타 GIS업체의 경우 자체 개발한 주엔진을 사용하는 반면 한국인프라는 오토데스크 제품을 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국산 GIS솔루션의 장기적 전망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국내 업체들도 기술적으로 오토캐드처럼 우수한 S/W를 만들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만들고 난 뒤 이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기술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죠.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매출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지금 국내 현실에선 수백개국을 상대하는 외국의 다국적 기업에 규모의 경제면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과거 한글 워드프로세서 논란에서처럼 국산 S/W 개발에는 효율성 문제와 더불어 기술 종속이라는 양날의 칼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외국제품의 도입이 반드시 기술개발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터넷GIS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로 승부

"개인적으로 국산 프로그램이란 이유로 '한글'을 쓰는 것보다는 MS 워드가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국산 엔진을 개발할 비용에 값싼 엔진을 들여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고객이나 회사에 더 큰 이익을 준다면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는 거죠. 국내업체들도 굳이 외국제품과 기술격차가 큰 분야에서 경쟁할 것이 아니라 외국기업들이 하지 않는 틈새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김기영 사장은 한국인프라가 단순히 외국솔루션을 가져다 국내시장에 공급하는 중간 딜러가 아님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인터넷GIS로 실적을 올린 기업은 우리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툴만 판매해서 얻게되는 성과는 아니죠. GIS솔루션과 별도로 전자지도 가공과 관련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같은 부가가치를 새롭게 창출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인프라에는 영업 인력이 6명에 불과한 반면 기술연구소와 인터넷사업부에 속한 R&D 인력은 그 세 배에 가까운 16명에 달한다.

"영업맨은 회사의 꽃"

숫적으로 부족한 영업인력을 뒷받침하는 건 김기영 사장의 영업마인드다. 김기영 사장은 스스로 영업맨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엔지니어 출신 사장들이 갖추기 힘든 그의 영업 마인드는 대표이사 취임 3년만에 한국인프라를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갖춘 벤처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광운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학창시절부터 엔지니어보다는 기술영업을 꿈꿨다. 83년 과학생회장을 맡아 14개 대학과 연계한 전자공학과 연합회를 조직하는 등 활발한 대학시절을 보낸 그는 공부보다는 대인관계에 훨씬 자신이 있었다.

"영업은 회사의 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술영업을 하기 위해선 기술은 물론이고 도덕적인 인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죠. 특히 회사의 수익창출 과정에서 첫 접촉과 마무리를 모두 담당한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그래서 전 이 길로 들어선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외상으로 넘겨받은 회사로 출발

한국인프라의 모체가 된 구룡엔지니어링은 98년 그가 대표이사로 취임하기 이전엔 직원 2명이 딸린 작은 회사였다. 당시 그는 자본금 1억원짜리 이 회사를 '외상'으로 인수했다. 도면관리시스템 사업을 하던 당시 사장이 김기영 사장의 능력을 믿고 회사를 넘긴 것.

"나중에 잘되면 갚으라는 조건이었지만 저를 믿고 회사를 거저 준거나 다름없었죠. 결국 그 뒤 여윳 돈이 생겨 1억원은 모두 갚았어요."
오토데스크코리아 AEC/GIS팀장을 맡아 기술영업 분야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그가 창업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제 스스로 재미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모든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의 열정을 바쳐서 일하는 소규모 회사를 꿈꿨죠. 그래서 앞으로 회사가 크게 성장해도 직원수 50명을 넘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국인프라란 회사명칭의 의미를 정보산업의 근간인 인터넷과 도면관리 외에 인적 자원으로 꼽을 정도로 그의 직원 챙기기는 유난스럽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선 직원들이 비전과 성과를 공유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인간관계가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부서별 회식 외에 매년 두 차례씩 체육대회와 3박4일 정도의 워크샵을 꾸준히 갖고 있다.

'컴타운' 기반 모바일GIS 진출 계획

한국인프라가 지난해 올린 65억원의 매출 가운데 인터넷GIS 관련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 여기에는 자체 개발한 압축프로그램 KRzip2000을 통한 1억 5천만원 정도의 매출도 포함돼 있다.

"앞으로 독자적인 엔진을 개발할 생각은 없지만 인터넷GIS를 통한 기술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멀티미디어 분야나 KRzip2000과 같이 유틸리티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여기에 지난 6월의 투자유치는 그와 한국인프라에 큰 의미를 갖는다.
"30억원이란 자금은 벤처기업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독자 아이템을 갖게 했고 초기수익이 불명확한 컴타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여유가 없었던 R&D 투자가 가능해져 앞으로 엔터프라이즈 GIS분야 진출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기영 사장은 한국인프라의 장기적 비전을 모바일GIS에 맞추고 있다. 그가 수익이 불명확한 인터넷 생활지리정보사이트인 컴타운(www.comtown.co.kr) 사업을 의욕적으로 시작한 것 또한 장기적으로 모바일GIS를 통한 다양한 부가사업을 염두에 둔 것이다.

취재후기

김기영 사장과의 인터뷰는 4일 오후 2시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본사에서 이뤄졌다. 100분 여에 걸친 긴 인터뷰를 마치고 작별인사까지 나눈 기자를 다시 불러 세운 김기영 사장은 자신의 컴퓨터를 통해 사내 인트라넷과 MIS시스템을 자랑삼아 보여줬다.

"이 시스템을 통해 직원들의 근무 상황과 회사 매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요. 비록 작은 중소기업이긴 하지만 기업공개를 앞두고 투명한 경영을 하겠다는 의미로 일찍부터 준비해 왔죠."

평생 영업맨으로서 깨끗한 경영을 약속하는 대목이었다.

김기영 프로필

1963년 경북 상주 출생
1987년 광운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7년 학사장교 임관(1990년 예비역 중위로 전역)
1990년 (주)리스트 도면관리사업부 입사
1993년 (주)경진시스템
1996년 (주)오토데스트코리아 AEC/GIS사업지원부
1998년 (주)한국인프라 대표이사 취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코스닥신문 63호(2001.1.8)에 게재된 기사를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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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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