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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2월 12일 베트남 퐁니마을의 처참한 모습. 미 해병 연합행동소대 본 상병은 한국 해병 2여단 1대대 1중대가 작전을 수행했던 마을에 들어가 현장의 사진을 찍었다. 본 상병은 위 사진의 설명을 이렇게 적었다. "총에 맞은채 연못에서 발견된 두 젊은 여자. 사진 가운데 임신한 여자는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에 총을 맞았다. (머리 앞쪽이 날아감)"

여기 충격적인 보고서가 있다. 미국 사료관 문서관리소(NARA :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Record Group) 472에서 30년간 보관돼오다가 2000년 6월 1일자로 기밀해제된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의 조사보고서. 5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의 이 보고서에는 주월 한국 해병대 2여단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내용이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수록돼 있다. 이는 그동안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는 국방부의 공식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주월미군사령부의 조사보고서에 담긴 세 가지 사건

▲본 상병의 사진에 찍힌 피해자는 주로 어린이와 여자였다. 처참하게 살해당한 아이의 모습.
지난 10월 중순 문제의 보고서를 처음 입수한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상임대표 이해구, 강정구)와 박정희기념관 반대 국민연대(상임공동대표 곽태영 외)는 11월 14일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는 세 가지 '의미심장한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가 담겨 있다.

1. 1968년 2월 12일 사건
장소 : 쿠앙남(Quang Nam)성 디엔반(Dien Ban)현 퐁니(Phong Nhi)·퐁넛(Phong Nut) 마을
작전부대 : 한국 해병 2여단 1대대 1중대(일명 괴룡1호 작전)
희생과 손실 : 69명의 베트남 여성과 어린이들이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아 죽음. 한국해병 1명 부상

▲근처 연못에서 익사한 아이의 주검.
2. 1968년 10월 22일 사건
장소 : 쿠앙남성 쑤옌 짜(Xuyen Tra) 호앙쩌우(Hoang Chau) 마을
작전부대 : 한국 해병 2여단 2대대 7중대 3소대(일명 승룡3호 작전)
희생과 손실 : 베트남 민간인 22명 사망(8명의 어린이와 12명의 성인-합계 불일치-필자주), 베트남 민간인 16명 부상(5명의 어린이와 11명의 성인), 13마리의 물소 사살, 95채의 주택이 100% 파괴, 1000개의 저장고 파괴. 초기 작전중 한국 해병대 대원 일부 사망

3. 1969년 4월 15일 사건
장소 : 쿠앙남성 지 쑤옌(Di Xuyen)현 푹미(Phouc My) 사
작전부대 : 한국 해병 2여단 2대대 6중대 1소대(일명 승룡10호 작전)
희생과 손실 : 베트남 민간인 4명 사망, 12명 부상, 7명 구타. 대규모 재산피해. 지뢰폭발로 한국해병 1명 사망, 4명 부상, 미 해병 1명 부상


▲본 상병의 30년 전 사진과 설명은 2000년을 살아가는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본 상병은 위 사진에 대해 "가슴이 도려진 채 아직도 살아있는 여자"라고 증언했다.


특히 첫 번째 사건인 '퐁니·퐁넛 마을 사건'의 경우 미 해병 연합행동소대 Delta-2 소속 본(J. Vaughn) 상병의 증언과 사진이 첨부돼 있다. 한국군이 마을의 작전을 수행한 후 민간인 부상자를 도와주기 위해 마을에 들어갔다는 본 상병은 사진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때 찍은 사진 하나하나에 설명을 달았다. 그가 찍고 증언한 사진에는 거의 대부분 여자와 어린이만 찍혀있고 심지어 "가슴이 도려진 채 아직도 살아있는 여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한국군이 지나간 직후, 퐁니 마을에서 미군들이 볏짚에 가려진 채 도랑에 버려진 여자와 아이들의 주검을 찾았다.
68년 2월 12일 퐁니·퐁넛 마을 사건에 대한 미군측의 조사 후 68년 4월 29일 웨스트모어랜드(W. C. Westmoreland) 주월미군사령관은 관련자료를 채명신 주월 한국군사령관에 보내며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한달 후인 68년 6월 4일 채 사령관은 웨스트모어랜드에게 한국 측 조사자료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서 채 사령관은 퐁니·퐁넛 마을 사건이 한국군 복장을 한 베트콩의 술책이라고 밝혔다.

베트남 민간인 4명이 사망했던 '쑤옌현 푹미 마을 사건'의 경우 미군 뿐 아니라 한국군과 월남군이 공동으로 조사했다. 미군의 체이스(Harold W. Chase) 대령, 월남군의 카오 칵 낫(Cao Khac Nhat) 중령, 한국군의 이영주 소령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공식 조사보고서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본 상병의 사진설명은 매정하리만큼 건조하다. "재더미에 묻힌 채 죽어있는 마을주민"


"지뢰와 수류탄 폭발로 인해 지뢰제거팀에 희생자가 발생했고 저격으로 인한 고통을 당한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으나, 마을의 남쪽 끝에서 한국해병이 광분상태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보고서는 왜 작성됐는가

▲'30년만의 공개' 미국 사료관 문서관리소(NARA)에서 보관돼오다 올해 6월 1일 기밀해제된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의 조사보고서. 미국군에 비친 한군군의 모습이 과연 얼마나 객관적인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우리의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다.
'미라이 학살사건' 폭로로 한창 시끄럽던 1969년 12월 12일, 미국 국무부는 주월 미대사관에 메시지를 발송했다. '한국군, 특히 해병대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에게 자행되는 비인도적인 행동에 관한 가능한 모든 정보를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국무부가 주월 한국군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던 이유는 일명 '랜드보고서'와 '사이밍턴 청문회' 때문이다. 랜드보고서는 랜드 재단에서 미 국방부의 용역을 받아 1968년 7월 작성한 '베트콩의 정치 스타일'이라는 비밀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현지인의 증언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사이밍턴 청문회는 1970년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 청문회로서 미국의 재정지원하에 베트남전에 참전한 동맹군의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국무부는 랜드보고서를 보고 사이밍턴 청문회에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관한 논란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여 주월대사관에 메시지를 띄운 것이다.

▲미군 비밀보고서는 68년 2월 12일 퐁니·퐁넛 마을에서 69명의 베트남 여성과 어린이가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아 죽었다고 적고 있다.
국무부의 지시를 받은 주월 미대사관은 이를 주월 미군사령부에 전했고 주월 미군사령부 감찰부는 즉각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자료를 수집, 보고서를 작성했다. 미군사령부는 조사보고서를 주월미대사관, 미군 태평양사령관, 미군 합동참모본부 등에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랜드보고서에 언급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의혹이 대부분 소문에 의한 것으로 근거가 빈약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랜드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민간인 학살 사건을 별도로 보고했다. 그것이 바로 위 세가지 사건이다.

민간단체 "이제 정부가 나서라"

30년 만에 공개된 이번 주월 미군의 보고서는 정부와 민간단체 사이에 오가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논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방부와 정부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없었고 공식적인 자료도 없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공개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군 중령이 사건조사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1970년 1월 주한 미대사 포터(Porter)가 박정희 대통령과 정일권 국무총리, 김정렴 비서실장, 최규하 외무장관 등 정부 고위급 관계자들과 긴밀히 협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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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니마을에서 살아남은 베트남 처녀를 미군이 치료해주고 있다. 자신의 눈으로 2월 12일 퐁니마을의 상황을 똑똑히 지켜봤을 이 처녀에게 한국이란 대체 어떤 존재로 남았을까. 이 치료는 미군이 아닌 우리가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보고서를 공개한 국제민주연대 변연식 공동대표는 "이는 우리 민족의 부끄러운 잘못과 독재와 전쟁으로 왜곡된 과거를 세상에 드러내는 고백성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이러한 노력이 궁극적으로 우리 민족의 도덕성과 양심이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전세계인들의 머리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정의로운 발걸음이라 확신한다. 이제 이 시점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한국 정부의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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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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