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편집자주-오마이뉴스는 우리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권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기동력있게, 심층적으로 취재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연재코너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부정기적이며 1-2주에 한차례씩 이어질 것입니다.)

잠시, 지난 7월 14일자 <동아일보>를 펼쳐보겠습니다.

"베트남戰 '민간인사살' 인정 - 大法 69년 육군소대장에 有罪…31년 만에 첫 확인"

1면 머리기사 제목과 부제입니다. 동아일보 이수형 기자와 신석호 기자는 이 기사의 첫문장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소대장이 베트남 민간인들을 사살하도록 지휘한 혐의를 우리나라 대법원이 인정해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사실이 31년 만에 처음으로 밝혀졌다."

32사단 98연대 제1대대 1중대 화기소대장으로 근무하던 김종수(59, 목사, 충남 공주시 유구읍)씨는 지난 68년 5월 1일 월남으로 파병됩니다. 하지만 68년 7월 26일 군법회의에서 베트남 민간인 사살 혐의로 사형이 선고되고, 69년 2월 12일 국방부 고등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같은 해 4월 29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됩니다. 죄명은 '살인', '명령위반', '허위보고', '약탈', '살인특수교사' 5가지. 모두 섬뜻한 느낌이 드는 단어들입니다.

국방부는 31년전 고등군법회의에서 이미 베트남 양민에 대한 '살인, 명령위반, 허위보고, 약탈'이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판결문에는 김씨가 무기징역을 받아야하는 이유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68년 7월 15일 소대원을 이끌고 매복지점이 아닌 곳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다음날 새벽 1시15분 경 매복지점에 나타난 월남인 7명을 체포합니다. 이들은 베트콩이 아닌 자유월남인이었지만 김씨와 소대원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월남화와 손목시계를 빼앗았고 2명이 달아나자 나머지 5명을 베트콩으로 위장하여 총기와 크레모아로 사살했다고 판결문은 적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기사를 본 후 문제의 판결문을 직접 찾아나섰습니다. 이 판결문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동아일보의 두 기자가 밝혔듯이 "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사살이 법원 판결에 의해 인정된 것은 이것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살해 피해는 없었다"는 국방부의 공식입장을 뒤집을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31년 된 빛바랜 판결문

입수한 판결문을 쭉 훑어보면서 오마이뉴스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김종수 씨에게 '사형'이라는 군법회의 원심을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69년 2월 12일 '국방부고등군법회의 판결'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선명히 새겨져 있습니다.

김정길(金正吉) 현 법무부 장관은 31년전 문제의 국방부 고등군법회의에서 검찰로 베트남 양민학살의 죄를 추궁했다.
'관여 검찰관 대위 김정길'

66년부터 육군본부 법무관으로 복무했던 김정길 대위는 69년 2월 12일 그 군법회의 자리에 '검찰관'으로 있었습니다. 그 김 검찰관은 현 김정길 법무장관입니다. 법무부 공보관은 "그 판결문의 김정길 대위는 현 법무부 장관이 맞다"고 밝혔습니다.

김정길 법무부 장관은 육군본부 법무관 근무이후 69년부터 95년까지 26년간 광주지검·서울지검·부산지검·수원지검·전주지검 검사와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쳐 검사장까지 지냈고 결국 법무부 장관까지 하고 있습니다.

31년 전 군 검찰 신분이었던 김정길 법무부 장관은 서슬퍼런 군법회의에서 김종수 당시 피고 소대장에게 베트남 양민학살 죄를 추궁했습니다. 김 장관이 1심대로 '사형'을 구형했는지 아니면 '무기징역'을 구형했는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당시 김 장관은 명령을 어기고 베트남 양민 5명을 살해한 죄를 물어야 한다고 판사에게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현직 법무장관이 "당시 재판은 잘못됐다"고 선언하지 않은 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학살은 있었다'는 것을 '대한민국'은 인정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청년 김정길의 구형, 그 후 31년

'고엽제 후유의증전우회' 소속 2000여 명은 지난 6월 27일 오후 한겨레 신문사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신문발행을 지연시켰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하지만 그로부터 31년 후인 오늘, 이땅에는 베트남 양민학살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한겨레21>이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학살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보낸 후 "베트남 전은 적군과 민간인이 구별되지 않는 게릴라전이었고 따라서 '양민학살'은 없었다", "게릴라전에서도 민간인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양쪽의 목소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 6월 27일에는 '대한민국 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소속 2000여 명이 한겨레신문사를 찾아와 '한겨레가 월남참전우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집기를 부수고 난동을 부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베트남 참천 군인들은 한겨레의 보도에 대응해 인터넷 홈페이지 이곳저곳에서 자신들의 정당성에 대해 역설하는 글을 올리고 있으며, 네츠고 홈페이지 여론광장 토론실 안에 마련된 '베트남전을 말한다'에서는 베트남 양민학살 논쟁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오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외국에서는 이미 '부도덕했던 외세개입 전쟁'으로 성격규정이 끝나버린 베트남 전쟁이지만 우리는 이렇게 21세기 벽두까지 이 문제를 부여잡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69년 김 장관이 검사로서 참여한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지난 88년 사면복권된 김종수 씨는 아직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인 사람은 양민이 아닌 베트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학살의 진상을 정부가 나서 조사해야 합니다.

김정길 현 법무부 장관 ⓒ 법무부 홈페이지(www.moj.go.kr)
김정길 법무장관은 31년전 군법회의에 대해 법무부 공보관을 통해 "30년도 넘은 일이라 당시 일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기억이 안날 수 있지만, 너무나 '역사적인 재판'이었기에 김 장관은, 아니 대한민국 정부는 기억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31년 전의 군사재판 기록이 발굴되고, 당시 관여 검찰관이 바로 현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 더 이상 정부도 나몰라라 해서는 안됩니다. 국방부 또한 명백한 증거 앞에서 더 이상 '베트남 양민학살은 없었다'는 말만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이 있었다는 주장은 <한겨레21> 보도만 하더라도 수십건에 이릅니다.

우리도 최소한 미국의 노근리 조사단 같이 정부차원에서 진상조사단을 꾸려야 합니다. 그래서 관련문서도 조사하고 베트남 현지에도 파견하여 진상조사를 벌여야 합니다. 우리가 미국에게 노근리사건 등에 대한 진상조사와 사과를 떳떳히 요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베트남에서 저지른 잘못된 행위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청산해야할 '20세기의 야만'은 이기적인 차원에서 부분적으로 극복되지 않고 세계적으로 극복될 것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