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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우연히 피시방에 들렸다가 '미르의 전설' 이란 머그 게임에 접하게 되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게임이 보통 중독성이 강한 것이 아니다. 경험치를 쌓을 때마다 레벨이 오르며 플레이어는 점차 강해지고, 다른 플레이어나 괴수들로부터의 위협과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게 된다.

머그게임의 공간은 현실 세계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덧붙여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살육의 공간이기도 하다. 강한 캐릭터가 나타나 약자들을 마구 살상해도 막을 도리가 없다. 만일 그가 나보다 강하다면 멀쩡히 눈앞에서 자신의 분신-캐릭터가 죽거나 가지고 있던 아이템을 모두 뺏기는 것을 목도해야할 때도 있다. 나 역시 이유없이 '나' 를 죽이는 캐릭터에게 저항한번 못하고 가지고 있던 돈이며 약초들을 모조리 빼앗겼다. 열이 났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었다.

허나 이런 살벌한 전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연대의 가능성이 증폭되기도 한다. 죽임을 당하고 다시 '생존 게임장(미르의 전설 내의 한 지역)' 으로 이동했을 때 재미있는 현상을 보았다. 대여섯 명의 '노랑이(레벨이 20이하인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게임창에서 이름이 노란색으로 나타난다)' 플레이어들이 모여있었는데, 누군가가 "악인이다" 라고 메시지를 날렸다. 그러자 모두들 악인으로 지목된 플레이어(다른 플레이어를 많이 죽인 자는 게임창에서 이름이 붉은색으로 나타난다) 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나역시 신이나서 '악인' 을 징벌하는 데 참여했다. 악인은 처음에 한두 플레이어를 죽이다가 더는 안되겠던지 접속을 끊었다.

이것봐라! 낱낱으로는 별볼일 없는 나약한 플레이어들의 연대가 막강한 플레이어를 물리친다! 나는 쾌재를 부르다가 연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천년이 낳은 사상가' 마르크스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는 절규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강고한 권력에 맞서기 위해 피지배자들은 힘을 모아야만 한다. 마치 '미르의 전설' 이라는 사이버공간-'생존게임장' 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레 연대하는 플레이어들처럼 말이다.

'미르의 전설' 속 사이버공간은 상당히 원시적인 사회 발전의 단계를 보인다. 비록 치안이 유지되는 커다란 성이 있긴 하지만, 정치 권력이 미치지 않는 무정부 상태의 공간이 각지에 흩어져 있다. 마치 초창기 인류 문명이 갓 형성된, 원시 부족 공동체와 같은 모습으로. 하지만 이런 공동체 역시 곧 현실 사회를 닮아갈 것이고 여기엔 권력과 자본의 연대가 선명해질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작은 힘들의 연맹에서 희열을 느낀다. 이 연맹은 자연발생적이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책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게릴라들. 그렇다. 이것은 각자의 공간에서 권력들을 만들어가는 작은 게릴라들의 싸움이었다. 이 게릴라들의 존재는 강자의 전횡을 막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헛! '왜 갑자기 머그 게임 분석 강좌를 하느냐' 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이 많을 것일터, 자 그럼 이번에는 현실과 좀 더 가까운, 현실을 직접 반영하는 사이버 공간을 말해보도록 하자. 다들 아시겠지만 2월 22일 '오마이뉴스' 가 창간하였다. 뉴스게릴라들의 연대, 이것이 오마이뉴스의 창간 모토가 아닌가. 편집자가 지속적으로 밝혔지만 이는 언론사상 유례가 없는 실험이다. 이 실험은 도대체 변화와 개혁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한국의 수구 언론이라는 괴물에 대항하기 위한, '국민 기자' 하나 하나의 연합체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것 역시 자연발생적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자 한다. 물론 언론개혁을 고민하던 몇몇 '선구적인' 발화점은 있었다. 그러나 이 게릴라 연맹의 급속한 확대재생산은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권력이 미치지 않는 작은 생활 공간에서 이 연대는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로 취재를 할 필요가 없다. 나의 삶을 반영하는 행위 자체가 취재이며 곧 기사 작성인 셈이다.

그대 뉴스 게릴라여. 이제 무기를 들어라.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미르의 전설' 에서 미약한 '노랑이' 들이 합심하듯 '악인' 을 때려 잡아보자. 자생적인 연대가 가지는 무서운 힘들을 보여주자. 함부로 약자들을 유린하는 '악마들', 정보를 선택적으로 가공하여 여론을 호도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요괴들' 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덧붙이는 글 | 머그 게임은, 네크워크에 온라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접속하여 벌이는 게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온라인상의 캐릭터 하나하나는 곧 하나하나의 실재하는 사람들의 기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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