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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장대비가 쏟아지지 않는다. 잔뜩 흐린 날씨가 지속되다간 가끔씩 게릴라처럼 빗줄기가 굵어져 무방비 상태의 행인을 때릴 따름이다.

오늘 새벽길을 걸었다. 불현듯 쏟아지는 장대비는 내 작은 우산을 비웃는 듯 온 몸을 적셨다. 빗속을 걸으며 지금의 '나'와 지난 10년의 '나'를 생각해보았다.

초고속인터넷 시대를 구가하는 '속도전'의 시대, 모든 가치가 상품으로 환원되는 시장만능의 시대. 그러나 나는 혹독한 시절, 유토피아와 거대담론에 목숨을 걸었던 무모하고도 무시무시한(?) 청년들을 돌이키고 있었다.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은 광포한 시대의 개인들을 다루고 있다. 자유가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히 살해되고 그것에 대한 저항 역시 똑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잔인한 시대의 사람들.

소설은 그들 역시 사랑에 목말라했고 행복에 굶주렸음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한 시대'를 살았던 개인들의 삶 속에서 그 시대의 사회와 구조는 더욱 명료하게 반영될 수 있음을, 산산히 부서진 일상생활 속에서 시대의 폭력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이 꿈꾸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질러 죽음으로써 저항했던 미경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웃고 있을까? 그녀가 사랑했던, 하지만 살아있을 적엔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던 영태는 시베리아 벌판 너머 어디에서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있을까?

아버지의 임종, 사랑하는 이의 수감, 출산과 독일 유학, 중산층의 잔잔한 지식인 청년과의 연애와 그의 죽음, 마침내 스스로의 죽음. 윤희는 이제 원없이 '여보'라는 말을 천상에서 부를 수 있겠지. 현우는 그들의 딸인 은결이를 통해서 윤희, 아니 시대와 화해할 수 있을까?

"누구든 언제든 투쟁하는 전사로 남아 있지 않는다. 혁명위원회도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내는 아이를 낳거나 식량배급이 늦는다고 투덜대고 좀 일찍 들어올 수 없냐고 바가지를 긁고 생활비가 거덜이 났다고 하소연하고...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혁명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환멸에 치를 떨게 할지라도 피부를 찌르는듯 전율로 나는 살아 있다고 중얼거리게 하는 사업."

나는 내 주변을 둘러본다. '전사'들은 자기 살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한다. 그들은 그들이 모든 것을 바쳐 싸웠던 시대로부터 보상받지 못했다. 새로운 세대의 청년들이 자기계발과 자본주의 사회속의 성공과 행복을 쟁취하고 있을 때, 그들은 멀찌기 떨어져 바보처럼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지 않은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혹독하고 엄격했던, 그래서 아기자기한 사적 행복을 자진반납했던 '전사들'에 의해 인류 역사는 조금씩 전진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런 질문과 답변 역시 그들의 삶과 청춘을 보상해주지는 못하리라.

그대의 '오래된 정원' 속을 들여다 보라. 거기에는 무슨 꽃과 나무가 열려 있는가? 아직 그것들은 말라 죽지는 않았는가? 혹시 그들에게 잠시동안의 햇볕과 물 한줌을 내줄 용의는 없는가?

밤새
비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소년은
웅크려 밤을 지샌다
온 하늘을 덮었던
황사(黃砂), 여기저기
뿌연 흔적을 남기고
서늘한 아침에
개나리, 무리져 피다

계절들이 지나고
영겁의 세월은
다시 바람을 몰고 온다
허나
그 바람이 지난 후
여전히 망울진 꽃봉오리들
흔적처럼
말갛게 세상을 열겠지

밤새
비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소년은
웅크려 밤을 지샌다
온 하늘을 덮었던
황사(黃砂), 여기저기
뿌연 흔적을 남기고
서늘한 아침에
개나리, 속삭이다
저 장엄한
새 봄이 왔어요

(이준석,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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