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3 11:49최종 업데이트 24.06.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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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공습으로 사망한 혁명수비대원 7명의 관 앞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장례 행렬에 앞서 기도하고 있다. 장군 2명을 포함한 7명의 혁명수비대원은 1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 연합뉴스


중동의 숙적, 이란과 이스라엘의 무력 행동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최근 제한전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 지난 1일(현지시간) 시리아 다마스쿠스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이란 혁명수비대 지휘관 2명을 포함해 7명을 사살한 것이다.

보복을 예고한 이란은 13~14일에 걸쳐 무인기와 미사일 300발 이상을 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재보복을 예고한 이스라엘도 18일에 이란을 폭격했다. 선제공격-보복-재보복이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중동 정세와 세계 지정학이 중대한 위기에 처한 셈이다.


확전 여부와 더불어 또 하나의 관심사는 이란의 핵무장 결단 여부이다. 이와 관련해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 고위 사령관은 이스라엘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핵 독트린'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핵 독트린'은 대개 핵보유국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란 고위층이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핵무장 여부를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낳았다. 그런데 이 발언이 나온 다음 날 이스라엘이 이란 공격을 강행했다. 중대 기로에 서 있는 이란의 핵 선택이 '무기화'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성을 높여준 셈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이 이스라엘의 '예방 공격'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1981년에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전을, 2007년에 시리아의 핵 의혹 시설을 선제공격으로 파괴한 전례가 있다. 이들 나라의 핵무장을 예방하겠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전례에 비춰볼 때, 이스라엘이 또다시 이란 핵시설에 선제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이란이 핵무장 문턱을 넘기 전에 이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네타냐후 정권은 이란 정권을 '나치'에, 이란의 핵무장을 '아우슈비츠'에 비유해 왔다.

'나치와도 같은 이란 정권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또다시 홀로코스트가 벌어질 수 있다'는 화법을 즐겨 사용해 온 것이다. 이는 이란의 '핵 독트린' 재검토와 이스라엘의 예방전쟁론이 맞물려 매우 위험한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란의 선택지
 

지난 17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북부의 한 군사기지에서 열린 국군의날 행진에서 미사일이 트럭에 실려 이동하고 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보복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어떠한 공격 행위도 ‘강력하고 격렬한’ 대응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연합뉴스

 
이란의 핵무장 능력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물질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고농축 우라늄이고 또 하나는 플루토늄이다. 이란의 경우에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올해 2월 기준으로 이란이 5.5톤의 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고, 이 가운데 일부는 60% 수준의 농축도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대개 1개의 핵무기 제조에는 90% 이상 고농축 우라늄 25kg 정도가 필요하다. 19일 로이터 통신은 이러한 내용을 기초로 이란이 결심하면 수개월 내에 2개 분량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보다 큰 지정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일부 강경파들은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을 묶어 "새로운 악의 축"이라고 부른다. 2002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불렀던 것을 소환한 것이다.

이 표현 속에는 이들 네 나라가 반미·반서방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는 불만과 우려가 깔려 있다. 세계 질서를 이런 식으로 구분해 강경 일변도로 나가면 '말이 씨가 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른바 '북핵' 문제는 이를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과거엔 중국과 러시아도 '핵 비확산' 관점에서 북핵 문제를 바라봤고, 그래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규탄과 제재에도 동참했다. 하지만 미·중 전략경쟁과 미·러 대결이 격화되면서 이들 나라는 북핵 문제를 '지정학'과 '세력 균형'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보리에서 추가적인 대북 제재 부과에 '방어막'을 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핵무장을 저울질하고 있는 이란 정권도 이러한 사례를 참고할 법하다. 핵무장에 나서더라도 자신과의 관계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신흥국·개발도상국)에 있는 상당수 국가가 미국 등 서방과 이스라엘에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것도 이란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실추된 리더십 재건?
 

지난 13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상황실에서 이란의 이스라엘 미사일 공격과 관련해 국가안보팀과 회의를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 위기 상황에 대한 긴급회의 후 이란의 공격에 맞서 이스라엘에 대한 '철통같은' 지원을 약속했다. ⓒ 연합뉴스


그래서 미국의 무책임과 무능을 다시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 핵 문제에 비하면 북핵 문제는 풀기 쉽다"면서, 대이란 협상에 기울였던 노력의 반의 반도 대북 협상에 기울이지 않았다. '전략적 인내'라는 알쏭달쏭한 이름하에, 한편으로는 '북한위협론' 활용에, 다른 한편으론 '제재 만능주의'에 빠져 있었다.

이랬던 오바마 행정부는 백악관을 나오면서 '북핵 문제가 국가안보상의 최대 도전이 되었다'는 말을 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전해주었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 때 체결되어 잘 이행되고 있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으로 불린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해 버렸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 합의의 복원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합의를 복원하면 대북 협상에도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이란과 타결에 접근할수록 이스라엘의 반대도 심해졌다. JCPOA 서명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영국·프랑스·독일조차도 2021〜2022년에 걸쳐 나왔던 잠정적인 합의안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에 더 까다로운 요구를 내놓았다. 결국 이스라엘의 로비에 굴복한 미국은 협상 동력을 잃고 말았다.

중동에서 이란이 이스라엘에 이어 핵보유국이 될 경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험을 잉태할 공산이 커진다. 이를 막겠다며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상대로 선제공격에 나서면, 미국, 헤즈볼라, 하마스, 시리아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개입하는 전면전으로 비화될 위험도 커진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막대한 무기를 제공하면서 외교적으로도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가담하지는 않겠지만, 이란에서 날아오는 무인기와 미사일을 요격했고 앞으로도 그러겠다고 한다. 13년 만에 이뤄진 유엔 안보리의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 표결에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해 지구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트럼프 때 실추된 미국의 리더십을 재건하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인을 포함한 지구촌의 많은 사람이 '아마겟돈'처럼 되어 가고 있는 중동을 보면서 묻고 있다. 이게 미국의 재건된 리더십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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