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9 07:12최종 업데이트 24.08.2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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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달라도 윤석열 정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대화는 말 그대로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상대가 반감부터 갖게 되는 표현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너진 남북관계와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적대성의 완화와 대화 재개가 필수적입니다. 서로 '제 이름 부르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기자말]

28일 자 <중앙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 "문 전 대통령, 펜스에 김정은의 핵개발은 방어용이라 말해" ⓒ 중앙일보


맥매스터 "文, '김정은에게 핵은 방어용'이라고 말하더라"(조선일보)
맥매스터 "문재인 '김정은, 방어 위해 핵 필요' 美에 말했다"(중앙일보)
2017 한미정상회담서 북핵 놓고 충돌…'방어용' 대 '공격용'(KBS)

28일 주요 언론 인터넷판에 실린 기사 제목들이다. 이들 외에도 많은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기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맥매스터의 회고록을 인용해 비슷한 보도를 쏟아냈다.

이들 제목과 언론의 자의적인 해석만 놓고 보면, 문재인이 마치 조선의 핵무장을 변호하는 태도를 보인 것처럼 비친다. 특히 <중앙일보>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위적 차원에서 핵을 개발하는 것이라는 북한의 기존 논리를 사실상 그대로 반복한 격"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는 저급한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맥매스터의 회고록 <우리 자신과의 전쟁에서: 트럼프 백악관에서의 나의 임무 수행>에 담긴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꼭 사담 후세인이나 무아마르 카다피처럼, 김정은도 방어를 위해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라는 것이다.

이 발언이 사실이더라도 문재인은 조선의 입장을 소개한 것이지 본인이 북핵을 방어용으로 간주해 용인할 수 있다는 취지는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북핵 불용' 입장을 견지했다는 것이 팩트이다.

김정은이 합리적?

허버트 맥매스터의 회고록 <우리 자신과의 전쟁에서: 트럼프 백악관에서의 나의 임무 수행> ⓒ 하퍼콜린스


그럼 왜 후세인과 카다피가 나온 것일까? 후세인은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받아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침공에 의해 제거되었다. 하지만 핵 개발의 흔적은 이라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침공의 구실을 찾으려 혈안이 되었던 부시 행정부 마음속에 있었다. 카다피는 미국 등 서방의 설득에 의해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했지만, 그 이후 서방의 지원을 받은 반군에 의해 제거됐다.

그러자 미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후세인과 카다피의 운명을 목도한 조선이 핵무장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아래와 같은 평가를 내놓은 사람도 있었다.

"제가 보기엔 김정은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일들을 예의주시해 왔습니다. 핵무기를 가진 국가들과 그걸 지렛대로 삼았던 국가들을 말이죠. 김정은은 자신의 주머니에 핵 카드를 넣고 있어야 강력한 억제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북한이 리비아와 우크라이나의 핵 포기에서 얻은 교훈은 불행하게도 '만약 핵이 있으면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핵무기가 없다면 그걸 가져야 한다'라는 것이죠. (중략) 김정은의 행동은 정권 및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일까? 트럼프 행정부의 정보 수장인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현직'에 있을 때인 2017년 여름에 강연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 말이다.

번지수 잘못 짚은 비난

2017년 6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행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의 '북핵 불용' 입장은 조선이 대표적인 적대시 정책이라고 비난했던 한미연합훈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6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조선은 추파를 던졌다.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도 이러한 '쌍중단'을 강하게 제기했다.

그런데 문재인의 입장은 확고했다. 워싱턴행 비행기 안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합법적이고 방어적인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불법적이고 도발적인 북한의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 중지를 맞바꿀 수는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놓았다. 또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가운데 군사력의 수준을 가장 높이 끌어올렸다. 한국의 군사력이 2017년에 12위로 평가받았다가 2022년에는 6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상당수 언론이 트럼프를 공격하기 위해 쓴 맥매스터의 회고록을 이용해, 그것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전직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 달성이나 그 토대 구축에 실패한 것에 대해 얼마든지 비판할 수는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번지수를 잘 짚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비핵화라는 목표 달성을 안일하게 본 데 있었다. "북한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대화와 신뢰"라면서도 정작 문재인 정부는 역대급 군비증강과 한미연합훈련에 매달리면서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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