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달라도 윤석열 정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대화는 말 그대로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상대가 반감부터 갖게 되는 표현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너진 남북관계와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적대성의 완화와 대화 재개가 필수적입니다. 서로 '제 이름 부르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 [기자말] |
▲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총상을 입은 오른쪽 귀에 붕대를 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연합뉴스
11월 5일 실시될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 국내에서 많이 회자하는 주장이 있다.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적인 핵무장까진 아니더라도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을 갖춰 '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보수 성향의 사람들만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진보 성향의 사람들도 '이제 고민할 시기가 왔다'는 취지로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서에는 '우리가 핵무장을 하면 자주국방 역량을 확보해 대미 자주를 증진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깔려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대심리는 현실과 얼마나 부합할까? 일단 한국이 핵클럽 가입의 문을 두드릴 때, 제일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이 미군과 확장억제를 제공해 온 동맹국이고, '갑'의 위치에서 한미원자력협정을 체결한 당사국이며, 거부권을 갖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기에 그러하다.
트럼프의 당선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이러한 미국의 위상과 맞닿아 있다. 트럼프는 핵비확산체제를 중시하지 않고, '자기 나라 안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또한 동맹 관계에서도 돈벌이를 중시한다. 그래서 한국이 미국제 무기 도입과 대미 투자를 늘리고 방위비 분담금도 대폭 올려주면, 트럼프로부터 핵무장 동의나 묵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유행한다. 또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도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수도 있다. 한국의 핵무장 추진 시 가장 우려되는 경제 제재와 관련해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한국 핵무장에 반대하는 나라들이 독자적인 제재를 가하는 걸 피하기는 어렵다. 후술하겠지만 미국의 독자 제재도 배제할 순 없다.
트럼프의 생각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한국이나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 적은 있다. 하지만 이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철수하면 한국과 일본의 안전은 어떻게 지키느냐'는 반문에 대한 반박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핵무장을 타진하면 트럼프는 '주한미군을 철수해도 좋다는 뜻이냐'고 반문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든 진보든, 한국 정부가 핵무장 추진과 주한미군 철수를 맞바꿀 수 있을까?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미국 의회가 이에 동의해 줄까?
핵무장이 미국의 제재를 면제받으려면
그래서 살펴봐야 하는 것이 미국의 법체계이다. 미국 의회는 1기 트럼프 행정부 때처럼 국방수권법을 통해 주한미군의 철수는 물론이고 감축도 불허하는 조항을 넣을 것이 확실하다. 작년 12월에 미국 의회가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하려고 할 경우 상원의 3분의 2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을 제정한 것에서도 이러한 기류를 읽을 수 있다. 이는 미국 의회의 동의 없이 나토 탈퇴도, 주한미군 철수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뿐만 아니다. 미국은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는 비핵국가들을 상대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광범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다. 미국 국무부에서 30년 동안 이 분야를 담당했었던 뉴웰 하이스미스(Newell Highsmith) 변호사의 보고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우선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에 담긴 비핵국가의 의무사항을 자체법인 원자력법에도 구체화해놓고 있다. 핵심적인 조항은 ▲ 핵폭발장치 등 군사적 이용 금지 ▲ IAEA의 전면적인 안전장치 실행 보장 ▲ 이전 품목에 대한 안전조치 확보 ▲ 핵무기 개발 의혹 및 안전조치 불이행 국가를 상대로 한 미국의 핵 관련 품목의 반환 요청 권리 등이 있다. 미국은 평화적인 목적의 핵 이용 국가들을 상대로 이러한 조항에 근거한 양자 협정을 체결해 왔는데, 한미원자력협정도 그중 하나다.
미국은 이에 근거해 핵무기 개발 시도 국가들을 상대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다양한 법을 갖고 있다. 또한 대통령조차 이러한 제재법의 집행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그만큼 미국의 제재법은 강력하다는 뜻이다.
글렌 수정법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이 법을 근거로 핵폭발 장치 접수·실험·정보 및 부품획득 국가들을 상대로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 그 목록에는 ▲ 해외지원법 적용·방산 물자 판매·해외 금융 조달 등의 종료 ▲ 미국의 신용 및 대출 제공 거부 ▲ 국제금융기구 이용 제한 ▲ 미 상무부의 금수 품목 및 기술 확대 적용 등이 망라되어 있다. 또 무기 이전 제재법, 해외지원 제재법, 핵협력 제재법, 수출입은행 제재법 등 추가적인 제재 근거도 갖고 있다.
이들 제재법은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적용된다. 우선 비핵국가가 NPT와 IAEA 안전조치 협정을 탈퇴하는 경우이다. NPT와 IAEA 안전조치협정은 회원국의 탈퇴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가 제재를 부과할 것인가의 여부는 안보리 결의 채택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런데 미국의 제재법은 양상이 다르다. 비핵국가, 특히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국가가 NPT와 IAEA에서 탈퇴하는 즉시 제재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NPT와 IAEA 탈퇴국이 실제로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독자적인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 비핵국가가 핵무기 개발에 나서면, 미국의 독자 제재는 더욱 강력하게 부과된다.
물론 예외는 있을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국가안보상 이익이 동맹국의 핵무기 개발에 따른 비확산 체제의 훼손보다 더 크다고 결정할 경우 일부 제재가 유예·해제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미국 대통령의 권한은 제한적이다. 대표적인 제재법인 글렌 수정법에는 '면제 조항'이 없기 때문에, 동맹국에 대한 제재를 유예·해제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새로운 법 제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는 핵무장에 나선 한국이 미국의 제재를 면제받으려면 행정부는 물론이고 의회의 동의와 이에 따른 법 제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 떼려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이는 결과'
▲ 지난 9일부터 19일까지 강원 인제군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에서 실시된 '한·미·UAE' 연합 KCTC 훈련에서 연합전투단의 미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도시지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 육군
그래서 '미국 의회가 한국의 핵무장과 주한미군 철수를 맞바꾸는 거래에 동의할까'라는 질문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주류는 한국의 핵무장도, 주한미군 철수도 반대한다. '이단아'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할 수 있다는 게 미국 주류의 '공포의 실체'이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이러한 거래를 막으려고 할 것이다.
핵무장 이전에 '핵 잠재력'부터 확보하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1차 관문은 한미원자력협정에 있다. 이 협정은 플루토늄 추출에 필요한 사용후 연료 재처리는 "서면 합의"를, 우라늄 농축은 "오직 20% 미만"을 명시해놓고 있다. 이러한 협정을 개정하려면 '정부간 협상 및 합의→대통령의 승인→의회 통보 및 검토→의회 동의시 승인'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국의 핵 잠재력 확보 의도가 여차하면 단기간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려는 데에 있는데, 미국 대통령·행정기관·의회가 동의해 줄지 여부는 짙은 안개 속에 있다. 협정에서 탈퇴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협정을 종료하려면 1년 전에 미국에 통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앞서 언급한 미국 제재법의 적용을 불러오게 된다.
한국의 핵무장과 관련해선 이외에도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많다.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이다. 핵무장이 대미 자주성을 증진하기보다는 이를 결심하는 순간 대미 종속성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혹 떼려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는 뜻이다.
한국이 조선에 버금가는 핵 능력을 확보하는 데 10년 안팎은 족히 필요한데, 이 사이에 한반도 위기는 고조될 것이고 이는 한국이 주한미군과 미국의 확장억제를 더더욱 필요로 한다는 것을 뜻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더구나 미국은 갈수록 '이기적인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론을 지렛대로 삼아 무리한 요구를 해오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