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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토막 펀드, 집값 폭락…. 미국에서 불붙은 세계 금융위기가 국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거쳐 가정경제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경제교육전문기업 '에듀머니'와 함께 '가정경제 119'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실질소득은 줄어드는 경제 위기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된 서민과 중산층이 주식·부동산 등 무모한 재테크의 함정에서 벗어나 우리 집 위기 상황을 점검하고 최소한의 안정된 삶을 지키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편집자말]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지난달 24일 결국 주가를 회복하지 못한 채 코스피 지수가 938.75로 마감되었다. 오후 3시 마감된 직후 카메라 기자들이 시황판앞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지난달 24일 결국 주가를 회복하지 못한 채 코스피 지수가 938.75로 마감되었다. 오후 3시 마감된 직후 카메라 기자들이 시황판앞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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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서아무개씨는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면서 4억 원을 대출했다. 이자율이 5%대일 때는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던 것이 이자율이 8%대로 올라서면서 이자부담만 한 달에 100만원이 추가로 늘어났다. 그때 외국계 보험사의 설계사로부터 엔화대출을 소개받았다. 그의 설명으로는 원-엔 환율이 오를 만큼 올라 꼭지에 달했기 때문에 환차익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자율이 지금의 절반도 안 되기 때문에 이자차익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기에 수직상승한 환율 그래프까지 보여주면서 환차익 가능성에 대해 확신에 가까운 이야기를 했다. 서씨는 원-엔 환율 950원 선이었던 지난 4월 보험 설계사의 권유에 따라 원화대출을 엔화대출로 갈아탔다. 설계사는 엔화대출의 정보제공 대가로 보험 200만원을 끼워 팔았다. 그러나 떨어질 것이란 환율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최고 50%까지 뛰어올랐고 이자도 1%가량 상승했다.

이자차익과 환차익이라는 일석이조는커녕 담보물에 비해 대출원금이 너무 커져버려서 상환압박까지 우려되는 상황에 내몰렸고 매월 이자부담이 크게 오른 것과 더불어 끼워 가입한 200만원의 보험료 때문에 현금 흐름이 깨져 버렸다.

엔화대출·펀드 때문에 날려버린 자산 증식의 꿈

서씨는 엔화대출 외에도 변액보험에 매월 700만원가량 납입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100만원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이 사람 저 사람의 부탁으로 보험료가 매월 조금씩 늘다가 급기야 엔화대출의 '꺾기(끼워팔기)'로 700만원까지 늘어난 것이다.

최근 주가하락으로 변액보험의 손실은 상당하다. 거기에 2년 전에 시작한 펀드도 손실이 나고 있고 올 초 급매한 주택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원-엔환율 상승으로 대출원금이 2억 원이나 불어나는 바람에 전체적인 자산 손실이 4억 원이 넘는다.

서씨처럼 소득이 높은 사람뿐 아니라 과도한 펀드 판매로 피해를 본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아직 미혼인 이아무개씨도 지난해 11월 적금 만기금을 찾으러 은행에 갔다가 은행원의 권유로 만기금 2천만 원을 고스란히 펀드에 넣었다가 반토막이 났다. 6개월 후에 꼭 써야 한다고 이야기했으나 은행원은 6개월이니 더더군다나 펀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은행 예금은 이자가 거의 없으나 펀드는 다르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은퇴 후 아이 '돌보미'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강아무개씨는 전세금을 인상해 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빚을 내서 반지하 빌라를 매입했다. 대출과정에서 강씨는 반지하 빌라는 현금화가 어렵기 때문에 대출이 쉽지 않다는 은행원의 말에 별 수 없이 변액연금을 꺾기로 가입했다.

가뜩이나 아이 '돌보미'와 같은 불안정한 돈벌이로 매월 생활이 빠듯한데 그중 20만원을 장기 투자 상품인 변액연금으로 불입하게 된 것이다. 현재 강씨는 몸이 불편해서 일을 중단하게 돼 1년간 부은 변액보험을 납입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간 납입한 돈을 대부분 까먹었다.

무리한 판매+변칙영업, 금융상품 판매 위험이 가장 크다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딜러들이 분주한 모습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딜러들이 분주한 모습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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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에서 무리한 펀드 판매를 해온 것이 큰 문제가 되어 현재 투자자들의 집단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나라만 망하지 않으면 원금손실은 없다', '예금보다 수익이 높다', '예금은 세금 떼고 나면 마이너스 수익이다'라는 등의 이야기로 어린아이부터 80세가 넘은 노인들의 쌈짓돈까지 무조건 펀드에 몰아넣는 판매를 해온 것이다.

무리한 판매로 인해 변칙적인 방법까지 다양하게 동원되기도 했다. 은행에서는 꺾기를 통해 은퇴 후 한 달 한 달 어렵게 버는 이들에게도 무책임하게 방카슈랑스 상품이나 펀드를 판매했다. 일부 보험설계사도 은행 대출 담당자를 통해 엔화대출 같은 상품을 소개, 연결해주고 보험을 끼워 팔았다. 또한 보험사에서는 설계사들이 기존의 정액연금 가입자에게 추가로 변액연금을 가입시키기 위해 자동대출 납입 제도를 활용했다. 자동대출 납입 제도란 보험계약자가 보험료 불입이 어려울 때 기존에 냈던 보험료에서 대출 받아 낼 수 있게 한 제도이다.

결국 고객은 그동안 자신이 낸 보험료로 이유 없이 대출 받아 보험 하나를 유지하고 새로운 변액 상품까지 가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객은 정액연금이 변액연금 상품으로 바뀐 것으로 착각했고 자신이 추가로 보험을 가입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심지어 대출을 받아가며 보험료를 내고 있다는 것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설계사들은 복잡한 엑셀 표를 만들어 언뜻 보기에 같은 보험료로 연금보험이 변액연금으로 전환된 것처럼 눈속임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이 경우 시간이 많이 지나면 대출금이 늘어나 대출이자 부담까지 가중되고 해약환급금이 부족해지면 의도치 않게 보험이 실효가 되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설계사들은 변액보험이 높은 수익을 낼 것이니 대출이자나 실효로 인한 손해는 별것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변칙영업을 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세금을 고민하는 고소득자들에게는 보험의 절세 기능을 과도하게 부풀려 판매하기도 했다. 변액 보험, 혹은 유니버셜 보험 상품은 납입을 하다가 중간에 돈이 필요하면 일부 찾아 쓸 수 있는 중도 인출 기능이 있다. 중도 인출한 부분은 보험의 특성상 보험사가 국세청에 지급조서를 발급하지 않으므로 세금 한 푼 없이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고 절세효과를 부풀린 것이다.

실적 압박에 갇힌 필연적인 판매 위험

간접투자가 대중화되면서 금융상품은 점점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있다. 은행원과 짧은 상담을 하는 것만으로 상품의 구조적인 위험을 다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보험 상품과 투자 상품의 결합으로 보험 상품 하나도 예전보다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졌다.

그러나 판매를 하는 금융회사 전문가(?)들의 수준은 여전히 단순하다.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서 판매하는 직원들이 어떤 교육과정을 통해 판매를 담당하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보험사는 금융초보자가 보험사 입사 후 한두 달의 교육으로 자격시험에 응시한 후 간단하게 자격을 취득해 판매가 가능한 구조이다.

원금손실을 투자자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상품을 취급하는 판매제도는 너무 취약한 제도였다. 게다가 실적 압박은 상당하다. 입사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보험 설계사들은 실적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는 사람에게 잘 모르는 상태에서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지난해와 같이 주가가 크게 상승하는 장에서는 자신도 변액보험과 펀드투자만 하면 큰돈이 벌릴 것이란 믿음만 갖고 영업을 했다는 것이다. 지점에서 주로 하는 교육이 주가가 오를 것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상승에 대한 믿음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200만 원 버는 친구에게 100만 원짜리 변액유니버셜 상품을 판매하면서 상승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제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게 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설계사도 있다. 은행이나 증권사에서도 판매 할당이나 판매에 따른 인사고과 반영, 인센티브 제도로 실적 압박이 보험사 못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주식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이제 막 시작된 간접투자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금융사들의 과도한 영업 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 전쟁은 직원들과 영업 사원들에게 커다란 실적 압박으로 전해졌고 그것은 불완전 판매로 이어져 고객들의 손해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판매 윤리의 제도적 장치와 교육이 절실하다

투자 손실에 따른 고객들의 민원과 항의로 증권맨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고 은행원들이나 보험 설계사들도 상당히 많은 사회적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서도 펀드나 변액보험 등의 금융상품 판매 피해를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로 인한 대규모 손실을 금융회사 직원 욕하기로 끌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

실적 압박과 시장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보편화될 수밖에 없는 엉성한 금융 판매 환경이 더 문제이다. 보험사에서는 누군가 편법 영업으로 큰 실적을 거두면 회사 전체가 교육을 통해 그 편법을 재생산한다. 문제가 생기면 개인에게 떠넘겨 버리면서 문제를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은행에서도 판매직원들에게 체계적인 교육보다는 판매 지침을 내리는 수준으로 펀드 상품을 교육했다. 펀드를 판매하는 은행 창구에는 투자설명서는 없고 민원에 대비해 민원을 피해갈 서류만 중요하게 다뤄졌다. 결국 그런 환경에서 금융 판매 위험이 커진 것이다. 금융회사 직원이나 영업사원들 모두 자신의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한 증권사의 적립식 펀드 통장.(자료사진)
 한 증권사의 적립식 펀드 통장.(자료사진)
ⓒ 김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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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위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저 판매직원들에 대한 질타와 원망으로 끝나지 않고 제도적으로 과도한 판매를 근절할 수 있는 위험한 판매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예를 들면 펀드 판매를 하면서 경험수익률을 예시하거나 자금의 용도가 짧은 기간 내에 쓸 돈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을 판매과정에서 정확하게 남겨야 한다. 이전처럼 단순히 금융사들이 민원을 피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어야 하고 좀 더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금융사들의 윤리적 판매 마인드 교육이 의무화될 필요가 있다. 자신이 판매하는 투자 상품으로 인해 손해를 볼 경우 그 돈이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절실한 돈인지를 늘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소비자들도 금융 소비에 대한 마인드를 재정비해야 할 때이다. 시장이 좋으니까, 신문이나 방송에서 나온 이야기니까, 믿을 만한 은행 혹은 금융사 직원이 한 이야기니까 하고 무턱대고 믿고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는 잘못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이 상당히 변덕이 심한 금융상품을 소비하고 있음을, 한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안고 있는 금융 상품으로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신중함을 잃지 않는 냉철한 금융 소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워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금융상품의 경우 그 자체 위험보다 그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위험이 증폭됨을 경제 위기를 겪으며 학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상품 인허가 과정에서도 위험성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지표를 만들고 그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소비자 고지가 이뤄져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현실이다. 그저 선진국에서 만든 겉만 번드르르한 금융공학으로 덧칠한 상품이라며 속에 감춰진 위험을 분석하는 것조차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때로 지식이란 옳지 않은 것을 옳은 것이라고 속일 때 훌륭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화려한 금융공학으로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이 금융위기를 안게 되었음을 교훈으로 여기고 금융 지식보다 돈에 대한 냉철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는 중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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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착한 재무주치의, #가정경제119, #금융위기, #펀드, #불완전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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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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