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윤아무개씨는 한 주에 한 번 '종합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한다. 간편 결제 기능을 통해 장바구니에 담아둔 티셔츠와 청바지를 구매하면 며칠 뒤 현관까지 택배가 배송된다. 서랍장에는 구매하고 몇 번 입어보지 않은 옷들이 쌓여있지만, 그는 여전히 "입을 옷이 없다"고 말한다. 윤씨의 쌓인 옷들은 어느 날 한꺼번에 버려지게 된다, 수거통 속으로.
2021년 7월 1일 방송된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내가 버린 옷의 민낯"에 따르면 헌옷수거함 옷 중 5%만 국내 유통되고 95%는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다. 수출된 옷은 일부 재판매를 제외하면 또다시 수로 혹은 강변에 버려진다. 이렇게 전 세계에서 발생한 폐의류가 매년 330억 개에 달한다.
우리가 쉽게 입고 버리는 패스트 패션,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걸까. '패스트 패션'은 최신 유행이 반영된 상품을 하나의 업체가 제작·유통하는 방식이다. 이를 공급하는 주체를 SPA 브랜드라고 하는데, 고물가 상황의 장기화로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스파 브랜드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2년 국내 5개 상위 스파 브랜드 매출액은 약 2조 8755억 원에 달했다. 이중 연평균 구매 횟수는 20대(9.5회), 1회당 구매 금액은 10대(9만 6746원)로 소위 'MZ' 소비층의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지갑이 굳게 닫힌 명품 시장과 달리, 옷 한 벌에 5만 원이 넘지 않는 일명 '가성비' 의류를 구매하는 소비는 몇 년 새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패스트 패션의 부상과 함께 의류산업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바로 유행의 부산물로 따라붙은 '환경 파괴' 때문이다. 최신 유행 제품을 빠르게 공급한다는 강점은 패스트 패션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런칭 시즌이 지난 재고는 하자가 없을지라도 전부 폐기 처리된다. 구매된 옷 또한 의류 폐기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원인은 소비 기간 단축에 있다. 패스트 패션은 저렴한 단가로 제품을 생산·유통하기 위해 의류의 품질을 낮췄다. 가성비 의류를 유행에 맞춰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짧게 입고 버리는 인식의 재구성으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더 큰 규모의 폐의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폐의류를 소각·매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에 달한다.
패션업계에 의한 환경 오염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이 의류 폐기물 수출량 5개국 중 하나로 꼽히면서, 이로 인한 유해가스 및 환경 파괴는 국내에서도 중대한 사회 문제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국내 의류소매 판매액이 해마다 급증하면서 재고 폐기의 증가 또한 가속화된 까닭이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발생 의류 폐기물은 연간 11만 톤에 이른다. 하루 300톤의 쓰레기가 발생하는 셈이다. 가정에서 버려지는 폐섬유와 사업장 폐의류를 합친다면 전체 규모는 5배로 불어난다. 이중 소비자에게 구매됐더라도 다시 착용하지 않는 옷의 비율은 21%, 재활용된 양은 5.8%에 불과하다.
권성하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이러한 환경 오염에 소비자 차원에서 단결해 대응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의생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권 교수가 대응책으로서 제시한 개념은 '슬로 패션(slow fashion)'이다. 패스트 패션과 대립하는 이 개념은 유행에 따르기보다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질 좋은 의류를 소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슬로 패션은 제품 사용자, 소비자에게 생각과 고려의 시간을 제공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잘 입을 수 있는 제품을 천천히 고려하고, 구매한다면 최대한 오래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저품질 의류는 세탁과 착용 등의 과정에서 쉽게 망가져 소비자가 단발적 사용을 선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친환경 패션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 또한 실천에 속한다. 최근 대중의 친환경적 소비 경향성에 맞춰 친환경 섬유로 옷을 제작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친환경 섬유는 미세플라스틱을 함유하지 않아 자연에서 쉽게 분해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권 교수는 재활용 소재를 도입한 의류를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환경에 대해서 고민하는 기업들이 성장하고, 이들의 제품을 소비자가 선택해야 결과적으로 패션산업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파타고니아가 있다. 파타고니아는 1993년 의류 기업 최초로 플라스틱병에서 추출한 원단을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재활용 소재를 사용한 제품을 생산 중이다. 이들 기업은 오는 2025년까지 모든 제품을 재생 가능한 소재로 만들고, 공정 무역 봉제 비율을 기존 83%에서 더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챔피온, 무신사 어스 등 국내외 패션 브랜드에서는 지난달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친환경 컬렉션을 비롯한 관련 캠페인을 선보였다. 글로벌 기업 챔피온은 '에코 퓨터 라인 컬렉션'에서 유기농 면과 재생 원사 아이템을 출시했다. 무신사 어스는 비건 브랜드 '닥터 브로너스'와 협업 기획전을 열어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했다.
지난 3월 진행된 '패션코드 2024 F/W'에서도 친환경 소재 의상 컬렉션과 별개 쇼룸을 연출하는 등 슬로 패션을 지향한다는 취지가 드러났다. 이처럼 전반적인 패션업계에서도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권 교수는 다만 "그린워싱, ESG 워싱 등 표면적으로만 '친환경'을 강조한 제품 또한 늘고 있어 소비자는 단순히 홍보성 문구에 현혹되지 않고 (워싱) 제품을 걸러내야 한다"며 객관적인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기소연 대학생기자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대학생기자가 취재한 것으로, 스쿨 뉴스플랫폼 한림미디어랩 The H(www.hallymmedialab.com)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