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6.25전쟁 시 상륙작전>에 실린 문산호 구출작전 요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이렇게 해서 9월 13일부터 8일간 실시된 장사상륙작전은 종료됐다. 국방부가 1983년에 펴낸 <인천상륙작전>에 따르면 129명이 전사했다.
실전경험은커녕 기본훈련을 겨우 받았을 뿐인 학도병이자 신병들로 상륙작전을 감행한 유엔군과 국군이, 그런 작전을 기안하고 명령을 하달한 육군본부가 안쓰럽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학도병이란 단어가, 17세의 우국충청이란 칭송이, '아저씨 저는 열일곱 살이라며 버티다가 전장에 끌려갔다'는 회고가 안쓰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수도 서울을 빼앗긴 것은 물론 낙동강 전선까지 내몰려 이제 곧 부산 앞바다에 침몰할 것 같은 상황에 무슨 일인들 못했을까. 미국은 이미 유엔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로 옮길 계획까지 검토하던 판국이었으니.
그러나 전면전이 멈추고 70여 년이나 흘렀다. 그들의 용기를 칭송하고 죽음을 위로하면서 역사로 되새겨보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그들의 죽음과 고난에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장사상륙작전에 대한 재검토
전승기념관을 다 돌아보고, 돌아와서 한국전쟁 공간사를 일별하고도 뭔가 찜찜하고 어색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하나는,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양동작전 또는 기만작전이라는 것이다.
함정만 해도 261척에 7만 병력을 동원한 거대한 작전을 하는데 그 반대편에서의 기만 또는 양동이라고 하기엔 상륙군이 너무 초라하고, 상륙과 철수 과정은 초췌할 정도라고 느껴진다. 기만이나 양동이라면 스트레이트나 어퍼컷으로 결정타를 날리기 전에 잘 계산된 탐색과 견제의 잽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명칭 자체가 전승기념관인데 승리했다는 것인지 최선을 다했다는 뜻인지, 사실의 서술인지 추모의 수사인지 선뜻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대반격의 한 갈래였다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이 너무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
이런 미진한 느낌은 최근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인 박종상의 최근 논문을 보면서 말끔하게 풀렸다. 그는 동북아역사논총 69호(동북아역사재단, 2023.9)에 '6.25전쟁 시 장사상륙작전에 대한 재검토'라는 논문을 실었다. 그의 논문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는 장사리의 지역사 기록과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의 전시물은 물론 자신이 속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펴낸 <6.25전쟁사>(2009) 등 기존의 연구와 저술들을, 한국전쟁 직후에 발간된 자료와 정부기록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의 문서들과 교차해 검토했다. 결론적으로 크고 작은 많은 오류들을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