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 운영관리계약서 제5조도로공사와 민자 휴게소가 체결한 운영관리계약서에는 영업가능한 업종이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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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요? 민간기업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도입하기 위해 추진된 민자 휴게소의 영업 범위가 도공이 임대계약으로 관리하는 휴게소와 똑같습니다. 새로운 업종의 임의 도입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도공의 내부 사정이 있습니다. 즉, 영업개시를 전후해서 도공의 담당 부서가 바뀝니다. 민자 개발 공모부터 준공까지는 '사업개발처' 소관이지만, 운영에 들어가면 '휴게시설처' 관할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휴게시설처는 도공이 짓고 관리하는 임대 휴게소와 임대 주유소를 총괄하는 부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 주유소의 90%는 도로공사 임대 시설입니다. 그러다 보니 민자 휴게소의 특수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업무의 편의를 위해 임대 휴게소와 같은 조건으로 영업 범위를 정한 듯 싶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영업을 전혀 할 수 없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3항을 보면 "도로공사가 따로 승인하면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자, 그럼 도공의 승인을 받으면 되겠군요.
누군 되고, 누군 안되는 사전 승인제도
휴게소 종사자들은 다 아는 내용입니다. 이 사전 승인제도가 얼마나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지를요. 대부분의 대기업과 새로 휴게소에 진출한 신규회사들이 모두 여기에 걸려 넘어집니다.
민간기업이 법적 사항을 모두 충족하고 승인을 요청했다 하더라도, 도공이 보기에 "무엇인가 문제가 될 것 같고, 책임질 일이 생길 것 같다"면 거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도공의 사전승인 권한에는 대상의 범위, 처리 절차, 판단 기준, 마감 시효 등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임의 판단이 가능한 권한인 셈입니다.
이해를 위해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일하는 휴게소에는 두 개의 진출로가 있습니다. 처음 설계대로 한 곳에 통합주유소를 설치하면 됐을텐데 인허가 과정에서 "고객불편이 예상되니 출구마다 주유소를 설치하라"고 해서 출구 두 곳에 모두 주유소를 설치했습니다.
준공을 마치고 주유소 영업을 시작하자 문제가 발생합니다. 두 곳 중 한 쪽 출구에 있는 주유소에서 주유 대기 차량이 발생할 경우 출구를 막아버리는 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주유 대기 차량이 2~3대만 늘어서도 출구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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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애초 계획에 없던 주유소가 들어선 후 출구 혼잡이 발생하자 휴게소는 다시 5억 원을 투자해 주유기와 유류 탱크를 증설해 대기 열을 줄이겠다며 도공에 승인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공이 승인을 해주지 않습니다.

▲주유기 증설에 대한 도로공사 답변주유소를 증축한 후 진행하라는 한국도로공사 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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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은 주유기 증설 대신 건축인허가를 받아 캐노피(지붕)를 설치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린벨트 지역에 있는 휴게소가 건축인허가를 새로 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나요? 사실상 "하지 말라"는 거절입니다.
그런데 주유기 증설에 캐노피 설치는 법적의무 사항이 아닙니다. 위험물안전관리법 시행규칙 제37조 주유취급소의 기준과 같은 인허가에도 해당 내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도공이 거절한 근거는 "고객의 이용편의"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출구가 막혀 이동이 불가능한 고객보다 캐노피가 더 중요한 고객편의였을까요?
더 놀라운 사실은 도공 임대주유소에는 이미 캐노피 없는 주유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앙고속도로 춘천주유소에 가면 캐노피가 없는 주유기가 있습니다.
이렇듯 도공이 "고객의 이용편의"라는 모호한 기준을 인용해 거절하면 민자 휴게소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얼마나 임의적인 적용입니까?
결국 3차례의 요청에도 도공이 승인해주지 않자 휴게소는 주유기 증설을 포기합니다. 그 결과 해당 주유소를 이용하는 고객불편과 매출감소로 인한 손실은 오로지 민자 휴게소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게 도공 민자 휴게소 사전 승인제도의 현실입니다. 신규사업 승인, 신규공사 승인, 운영에 대한 협조 의무 등 사실상 민자 휴게소가 도공의 입맛에 맞추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도로공사의 사전승인 권한들민자휴게소에 대해 도로공사는 공사,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전승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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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 퇴직자와 사전승인 제도
그래서 민자 휴게소 운영사들은 이를 풀기 위해 도공 고위 퇴직자를 '감사(監査)'로 채용합니다.
정부와 공기업을 상대하는 민간기업은 보통 해당부처 퇴직자 채용에 적극적입니다. 왜냐하면 전관예우 문화가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 공기업을 상대로 일을 하려면 고위급 퇴직자의 채용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문 또는 감사로 채용되어 대관업무를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민자 휴게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도공 출신 감사를 채용하여 업무에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역할이 좀 독특합니다. 휴게소 영업 관리나 경영 자문이 아닙니다. 게다가 민자 휴게소처럼 식음 시설이 대부분이고 서비스 영업을 주로 하는 곳에서 이분들의 행정·기술 분야 경력은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도공 사전승인 제도가 악용됩니다. 민자 휴게소가 요청한 각종 승인 요청을 도공이 까다롭게 다룰수록 도공 출신 감사의 필요성은 빛을 발합니다. 게다가 이 분의 채용도 민자휴게소가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공사에서 추천하는 것입니다.
▲도로공사 사업협약서 제23조 1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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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도공 출신 감사와 도공 사전승인 제도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전혀 다른 존재로 보이나 실은 한 몸이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고, 비전문가들이 민자 휴게소의 영업과 경영에 간여하면 할수록 민간 기업의 창의성은 사라지고 임대 휴게소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됩니다. 저는 이 사전승인 제도로 인해 민자 휴게소가 (원치 않게) 바보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민간기업의 자율성
민자 휴게소가 민자 휴게소다워지려면, 그리고 민자 휴게소가 대한민국 휴게소를 대표하여 휴게문화를 선도하려면, 무엇보다 자율성 회복이 중요합니다. 영업과 서비스에 관한 한 민간기업의 능력은 무궁무진합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라고 해서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민자 휴게소는 BOT(Build-Operate-Transfer, 건설-운영-양도) 사업입니다. 건물에 대한 재산권과 영업권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이 모두 민간기업에 있는데 어떻게 도공이 모든 것을 사전에 검열하고 결정할 수 있을까요?
도공은 여전히 민자 휴게소에게 자율권이 없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이미 드렸잖아요?"
민자 휴게소에게 영업의 자율성이 있으면 이렇게 운영할까요? 임대 휴게소와 똑같은 업종, 똑같은 영업방식, 비슷한 매장으로요? 이렇게 적자가 나는데도요?
'관행'에 너무 익숙해지니 그것을 '제도'라고 오해하는 듯합니다.
- 민자 휴게소의 위기③ - 고무줄 임대료와 입찰제도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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