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2 10:27최종 업데이트 23.06.1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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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피죽 올리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 노일영

 
남편이 지붕에 피죽을 올리는 작업을 끝내기까지는 6일이 걸렸다. 벌채한 통나무를 재목으로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나무껍질 피죽이, 원형 지붕 위에 둥그렇게 펼쳐져 있으니 나름 아름답게 보였다.

시골에서 피죽은 대부분 땔감으로 자신의 일생을 마치는데, 지붕 위의 마감재로 사용된 피죽은 그래도 생명 연장이 된 셈이다. 더구나 조각조각으로 올망졸망 모여 있으니 보는 이로 하여금 미적 경험까지 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와, 남편! 욕봤어. 이렇게 피죽으로 지붕을 덮으니까, 너무 예쁘다."
"피죽이 예쁜 게 아니라, 내가 예쁘게 깐 거지. 말은 바로 해야지!"


'어이구, 그래 너 잘났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 남편이 잘 깔아서 피죽 지붕이 예쁜 거지. 진짜 솜씨도 좋아!"

피죽을 다 깔고 나서 남편은 지붕 위로 나와 있는 스테인리스 연통에다 굴뚝 연기 배출기를 달았다. 배출기는 복잡한 구들 놓기 작업을 하지 않고, 적당히 구들고래를 놓고도 열을 골고루 방에다 전달하고 연기를 배출시키는 데 사용하는 전기 장치다.

배출기를 연통에 연결한 남편은 스테인리스 연통 주변에다 벽돌을 쌓았다. 배출기에서 연기가 나올 수 있게 구멍이 세 개가 뚫린 벽돌을 세워서 놓는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남편을 칭찬해 줬다. 진심이었다.

"이야, 대단해! 보통은 배출기가 보이게 그냥 두는데, 이렇게 벽돌로 가리니까 너무 멋지다. 디테일이 살아 있네. 그리고 벽돌에 난 구멍으로 연기가 나오게 하는 아이디어도 굿이야!"
"뭘 그 정도로···, 나란 놈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면 아직 멀었어. 아마 당신이 죽을 때까지도 모를걸."


'그래, 알면 알수록 힘들다, 더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다고, 이 양반아!'

지붕에 깔아 놓은 방수포 위에다 피죽을 놓는 작업은 처음에는 생각보다 빨리 진행됐지만, 3일째에 접어들자 남편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피죽 작업이 6일이나 걸린 것이다. 아무튼 새로운 공정이 시작되면, 남편은 초반에만 반짝 미친 듯 일하다가 점점 속도가 느려진다.
  

땔감이 됐어야 할 피죽이 지붕 위로 올라가니 때깔도 좋다. ⓒ 노일영

 
귀농 3년차 이상하게 변해버린 남편

체력 문제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남편이 이제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 즐거움을 못 느낀다는 점이다. 처음에 귀농했을 때는 삶의 모든 환경이 일시에 전면적으로 바뀐 터라, 얼떨결에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골에서 접하는 모든 일상이 사소한 것조차도 새롭다 보니, 남편은 요런 일도 재밌고, 요것을 조렇게 하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귀농한 지 3년 정도가 지났을 때부터 슬슬 피로와 권태가 남편의 혓바닥 위에서부터 층층이 쌓이기 시작했다.

말투가 거칠어지고, 사용하는 단어들이 부정적인 낱말로 바뀌고, 시X 같은 욕지거리가 가끔 게거품처럼 남편의 입 주변에 묻어 있었다. 그러다 그 피로감과 권태감은 암세포가 전이되는 것처럼 혀에서 뇌로 그리고 온몸으로 번져 나갔다.

남편은 귀농 3년차가 지나자, 내가 본 적도 없는 이상한 캐릭터로 변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남편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귀농 생활은 우리가 계획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소농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자급자족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귀농하기 전 그리고 갓 귀농했을 때, 남편의 계획은 야망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키운 농산물로 자급자족의 삶을 살고, 생산하는 작물을 판매해 생활비를 마련하겠다고 작정한 남편은 야심만만했다. 하지만 벼·밤·두릅·마늘·고추·감 같은 작물을 조금씩 소규모로 농사지어 팔아도 우리 두 사람의 인건비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형 농기계를 소유하고 양파나 벼 같은 작물 하나만 대량으로 재배하는 대농이 돼야, 농촌에서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농촌·농업·농민의 현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 남편은 의기소침해져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남편이 흙집을 혼자 짓겠다고 나댈 때, 내가 허락한 이유는 귀농 초에 활달하고 낙천적이던 남편의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별명인 '경솔의 아이콘'에 걸맞은 경솔한 흙집이 탄생해서 경솔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겠지만, 남편이 예전의 여유만만하고 느긋한 성격을 되찾는 걸 보고 싶었다.

경솔하고 어설픈 흙집이 어떤 식으로든 형태를 드러내고 나면, 통장의 잔고는 작살날 것이고, 우리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질 것 뻔했다. 하지만 남편의 몸과 마음에 침투한 피로와 권태가 더 많이 전이돼 숙주인 남편을 죽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지붕의 피죽 작업이 끝나고 나니 거의 완성된 느낌이 난다. ⓒ 노일영

 
장독 2개가 일으킨 사달

피죽 작업을 6일 만에 마친 남편. 지붕의 중심에 있는 서까래를 모은 원통의 윗부분과 굴뚝 위를 덮는 작업만 끝내면 이제 지붕 위로 올라갈 일은 없었다. 남편은 지붕에서 내려와 엄마 집의 마당으로 걸어갔다. 남편이 향한 곳은 마당 구석에 있는 장독대였다.

장독대에는 장독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남편은 장독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러곤 큰 항아리 하나와 작은 옹기 하나를 집어 들고 흙집 짓는 곳으로 가져와서 지붕 위로 올렸다.

"이건, 엄마 거잖아! 이걸 왜?"
"이걸로 지붕 공사 마무리 지으려고."

"우리 것도 아니고, 엄마가 싫어할 수도 있는데···."
"아니, 딸과 사위가 이렇게 개고생하고 있는데, 장독 2개 쓴다고 뭐라 하시겠어?"


남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항아리와 옹기를 뒤집어서 황토 모르타르를 발라 지붕과 굴뚝 위에다 고정시켰다. 항아리와 피죽 지붕, 옹기와 벽돌 굴뚝은 예상외로 너무 잘 어울렸다. 프랑스의 시인 '로트레아몽'이 서사시 '말도로르의 노래'에서 얘기한 "해부대 위에서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그건 말도 안 되는 미친 풍경에 불과했다. 남편과 내가 지붕 공사를 끝낸 걸 자축하고 있는데,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말 그대로 미쳐버렸다.

"이기 무신 지랄이고. 너거가 정신이 인나 엄나? 저기 어떤 장똑인데···."
"장모님, 저것 2개는 뚜껑이 없어서, 마감재로 사용했습니다."

"지랄하고 자빠짓네. 장 담글라꼬 물로 단디 씻어가 말리고 있었따 아이가. 잘 말리고 나믄 짚을 태아서 소독을 할라 캤는데, 이게 무신 지랄이고. 그라고 뚜껑은 내가 광에다가 뒀다 아이가. 차말로 사위 땜에 내가 몬 살것네."

  

지붕의 중심에 있는 원통을 덮은 항아리와 굴뚝 위에 설치한 전기 배출기를 덮은 옹기, 엄마는 이 모습을 보고 미쳐버렸다. ⓒ 노일영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신 남편은 고개를 떨구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 내 남편한테 왜 이 지랄인데! 그깟 항아리 두 개가 뭐라고!"
"그게 아이라, 저거뜰이 너거 아부지가 옛날에 사 준 기라가꼬."

"열녀 났네, 열녀 났어. 아버지 살아생전에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더만···."


엄마는 내게 눈을 한번 흘기더니, 남편을 향해 눈으로 레이저 광선을 마구 쏘아 댔다. 그 순간 아마도 남편은 쥐구멍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함양타임즈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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