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무너진 흙벽
노일영
남편은 넋을 잃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무너진 흙벽을 지켜보기만 했다. 남편의 두 손은 부들부들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남편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1톤 트럭을 타고 사라졌다. 철물점에서 사 올 물건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무너진 벽을 수습해서 다시 황토를 깔고 나무를 올려서 벽체를 쌓고 있는데, 남편은 2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더니 읍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화가 났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무너진 벽체에서 황토를 걷어내 둥글게 공처럼 만들어 쌓으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후회막심이었다. 남편이 흙집을 혼자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막았어야 했다. 늘 혼자서 뭘 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뒷감당과 수습은 내 몫일 때가 많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또 속아 넘어가다니···.
무너진 벽체가 거의 다 원상 복구됐을 때쯤 남편은 동네 아재의 트럭을 얻어 타고 마을로 돌아왔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기분은 좋아 보였는데, 복구된 벽을 보더니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적반하장의 아주 정확하고 모범적인 사례였다.
"아니, 내일 내가 이걸 다 복원하려고 했는데, 혼자서 이걸 해 버리면 어떡하냐고."
"됐고. 내일은 내가 쉴 테니까, 혼자서 하면 되잖아."
동네 아재는 제법 그럴듯하게 올라간 흙벽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아재 앞이라서 허세를 부리느라 남편이 화를 낸 게 분명했다. 남편은 아재에게 흙집 짓기의 전문가이자 대가처럼 종알종알 지껄이고 있었다. 책 한 권 읽고 일을 시작한 남편이 내뱉는 말치고는 좀 많이 과했다.
"이렇게 집에까지 태워 주셨는데, 만약에 뭐 아저씨가 흙집을 짓겠다면 제가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이 짓을 한 번 더 한다고?' 아재에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할 수는 없었다.
"저는 절대로 다시는 흙집을 안 만들 거니까, 아재랑 우리 신랑이랑 둘이서만 하세요. 흙벽 쌓다가 보면 저절로 피눈물이 나오는데, 저는 죽어도 다시는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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