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까래가 모이는 원통을 받침대 위에 올린 모습, 각목으로 움직이지 않게 고정돼 있다.
노일영
남편과 나의 불화·반목·갈등을 토대로 만들어진, 막장 드라마나 다름없는 흙벽은 간신히 완성됐고, 남편은 24개의 서까래와 서까래가 모이는 원통도 모두 만들었다. 이제 흙벽 위에다 서까래를 거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흙집이 원형이다 보니 서까래를 거는 게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남편이 읽은 흙집 관련 책이 아무리 상세하게 시공 방법을 설명한다고 해도, 책만 읽고 직접 흙집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흙벽을 쌓는 것은 우리 둘의 몸을 갈아 넣어서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었지만, 나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시작되자 남편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은 집 짓는 현장에서 책을 펼치고 서까래와 관련된 부분을 몇 번이나 읽었는데, 고개만 저으며 책에 도돌이표라도 찍힌 것처럼 그 부분만 반복해서 거듭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건축이나 흙집에 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없는 남편에게 책이 답을 줄 수는 없었다. 책에 적히지 않은 공백들이 남편을 괴롭히는 듯했다.
"뭐 해? 진도 안 나가? 기술이 없어서 못 하겠으면, 포기하고 흙벽 위에다 지붕 대신 그냥 비닐이나 가빠, 거적때기 같은 거로 덮으면 되겠네."
남편이 흙벽만 덩그러니 세운 채 흙집 짓기를 그만두지 않을까 속으로 걱정했지만, 일부러 독하게 말을 뱉었다. 이 남자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옆에서 같이 걱정하고 위로해 주면 안 된다. 그냥 막 강하게 밀어붙이고 조롱도 섞어 줘야 제정신을 차린다. 그게 이 남자를 조련하는 방법이다.
"아니, 진도만 막 치고 나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이제부터는 좀 고민을 해서 정교하게 작업을 하려고 뜸을 들이는 거지, 기술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남편이 반복해서 읽고 있는 책을 빼앗아 서까래와 관련된 내용을 한번 훑어봤다. 24개의 서까래 끝을 원통 안에 판 홈에다 집어넣어야 한다. 그러면 원이 360도 이고, 360도 ÷ 서까래 24개=15도 아닌가.
'아니, 무슨 굉장히 어려운 기술적 난관에 직면한 줄 알았더니만, 이깟 산수 문제였다고?'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책에는 이 내용도 모두 적혀 있었는데, 남편은 이해를 못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강하게 밀어붙이면 남편은 저기 멀리 읍내 술집으로 튕겨 나갈 것이다. 조련사의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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