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7 04:55최종 업데이트 23.04.1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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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직접 만든 우마(현장 작업대) 위에 놓인 나무들. ⓒ 노일영

 
서까래 작업이 끝난 뒤, 남편과 나는 서까래 위에 올릴 판재를 사러 제재소에 갔다. 지게차가 꽤 많은 양의 판재를 1톤 트럭으로 옮기는 동안 제재소 사장이 물었다.

"뭐 하는데 이거를 이마이(이만큼) 사 갑니꺼?"
"여기 와이프랑 둘이서 흙집을 짓고 있어서요."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사장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눈빛에서 강렬한 동정심을 본 건 확실하다. 사장이 다시 남편에게 물었다.

"둘이서 맨든다? 사장님은 흙집 맨드는 업자라요?"
"아뇨. 그냥 흙집을 한번 지어 보고 싶어서···."


"아따, 마누라 잡것네. 기력을 빼가꼬 사람을 쥑이 뿔라 카믄, 흙집 맨드는 기 최고제···."

사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내두르며 내게 말했다.

"아지매요, 남편이 아지매 몰래 어데 보험 마이 들어 논 거 아이가? 몸 간수 잘하소, 마."

농담처럼 말했지만 뼛속 깊이 말이 박힐 정도로 제재소 사장의 목소리는 울림이 컸다.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남편은 내 눈치만 살살 살폈다. 그제야 흙벽을 쌓으며 내게 갑질을 떨었던 게 엄청나게 잘못한 일이란 걸 눈치챈 걸까?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다
 

판재 작업 첫날에 하루 종일 일한 결과물, 진도가 정말 너무 느리다. ⓒ 노일영


만약 내가 그 갑질에 대해 조금이라도 입만 뻥긋하면, 남편은 사회적으로 생매장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건 남편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 남편은 그 정도로 뭔가를 깊게 생각하는 위인이 아니다. 그저 순간적이고 즉물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할 뿐이다. 남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허허, 제재소 사장님, 그 양반 말씀 참 재미나게 하네. 흙집 짓는 게 마누라 죽이기라니···."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 나 생명 보험 없는 거 알지? 열받아서 내가 죽어도 당신한테 돌아갈 보험금은 없으니까, 제발 좀···. 뭔 말인지 알지?"


제재소에서 사 온 판재의 한쪽 면을 전동대패로 살짝 다듬는 일만 해도 반나절이 걸렸다. 남편이 직접 만든 우마(현장 작업대) 위에다 판재들을 올리고 판재의 겉면만 전동대패로 한 번 지나가는데도 양이 워낙에 많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전동대패질을 하는 걸 보면서 그제야 남편이 흙집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흙벽과 서까래까지 올렸으니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흙벽 작업뿐만 아니라, 서까래를 걸면서도 끊임없이 혼자서 투덜거렸고, 판재를 대패질하면서도 중얼거렸다. "내가 미쳤지. 책만 보고, 내가 미쳤어."

판재를 거의 다 다듬은 남편은 오후 2시부터 동네 아재들을 불러 술판을 벌였다. 진행 과정을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남편은 신이 나서 흙집에 관해 아주 긴 브리핑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동네 아재들은 앞으로 흙집을 지을 일도 없고, 옛날에 초가집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어서, 다들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제공한 치킨과 족발 같은 안주 때문에 마지못해 몇 가지를 묻는 시늉을 했다. 그런 질문에 정성을 다해 길게 답하는 남편을 보면···. 어이구! 남편은 눈치코치 없이 혀 세 치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남편은 나와 단둘이 작업할 때와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의 모습이 너무 달랐다. 남편은 동네 아재들에게 자신을 매 순간 노동을 즐기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흙집·본인·아내·인생 심지어 흙집 관련 책을 쓴 저자에게도 악담을 퍼부으며 작업하면서···. 이건 정말, 정말로 전형적인 위선자의 모습이었다.

남편이 왜 그런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귀농하자마자 유기농 농사를 짓는다며 설치다가 아재들에게 욕을 좀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아재들이 비료·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남편을 보며 한마디씩 건네면, 남편은 관행농의 문제를 지적하며 아재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물론 그 비난들도 책에서 읽은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농사짓는 논밭 근처에 전답을 가진 아재들은 우리 뒤에서뿐만 아니라 앞에서도 남편을 공격했다.

"야, 이놈아! 니가 농사를 그 따우로 지가꼬, 내 전답에 벼하고 콩은 잡초 때매 보이지도 않는다 아이가. 농약을 안 뿌릴 끼믄 손으로 다 뽑든동, 니 밭에 떨어진 잡초 풀씨가 내 밭꺼정 오는 거 모리나?"

경솔의 아이콘
 

남편이 서까래 위에서 판재 작업 중이다. ⓒ 노일영


남편은 동네 아재들에게 내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는 잘난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살다가 시골로 온, 아무것도 모르고 입만 살아 있는 놈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흙집 따위는 쉽게 짓는 놈이란 걸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튼 다음날부터 남편은 흙벽에 놓인 서까래 24개 위로 올라갔다. 내가 전동대패로 표면을 다듬은 판재를 밑에서 올려 주면, 남편은 판재를 자르고 못을 박았다. 작업은 흙벽의 안쪽 부분, 즉 방의 천장이 될 부분부터 시작됐는데, 천장의 외곽에서 중심을 향해 판재를 고정시켜 나갔다.

서까래 위에다 판재를 고정하는 일에는 충전식 원형톱과 끌, 망치 등이 사용됐는데, 작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또 투덜대기 시작했다. 한옥에서는 서까래 위에 판재를 고정하는 작업이 힘들지 않은데, 흙집은 원형이라 판재를 조각조각 잘라 붙여야 해서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갑자기 화가 났다.

"아니, 또 왜?"
"그게 아니라, 한옥은 긴 판재 하나씩 갖다 대고 못질만 하면 되는데, 흙집은 조각조각 잘라서 못을 박아야 하니까 힘들어서···."

"모르고 시작한 거 아니잖아. 그런 게 싫으면, 애초에 흙집을 혼자 짓겠다고 하지 말았어야지!"


남편의 별명인 '경솔의 아이콘'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닉네임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이런 흙집 짓기까지 온갖 다양한 경험들이 쌓이고 축적되면서 비로소 완성된 별명이다. 결과가 좋았다면 분명 '도전의 아이콘'이라 불렸겠지만, 끝이 항상 뭔가 미진하다 보니 결국 경솔의 아이콘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도 서까래 작업이 끝나고 '이번에는 왠지'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 왠지가 어디 한두 번도 아니고···. 서까래 위에 올라간 지 1시간도 안 돼서 투덜대는 걸 보니 '이번에도 역시'라는 익숙한 예감이 찾아들었다.
덧붙이는 글 <함양타임즈>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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