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6 11:05최종 업데이트 23.02.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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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자료사진.연합뉴스

많은 국민이 이용하는 공공시설 중 고속도로 휴게소만큼 명암이 교차하는 곳도 드뭅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깨끗한 화장실로 칭찬이 자자하지만, 음식 불만은 하늘을 찌를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휴게소 음식 불만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1970년 휴게소가 처음 도입된 이래 휴게소의 위생과 음식 불만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지난해 9월 23일,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 김진숙 사장이 임기 6개월을 남기고 갑자기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본인은 일신상의 이유라고 했지만 국토부 장관의 감찰 지시에서 비롯된 일이었고 국토부와 갈등을 빚게 된 표면적인 이유가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값 10% 인하였습니다.

휴게소 음식값 문제로 도공 사장이 사퇴하는 상황에 어리둥절합니다만, 더 관심가는 대목은 국토부 산하 공기업인 도공이 상급 기관의 음식값 인하 요청을 거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뜻 보면 '그깟 휴게소 음식값이 뭐라고?' 하겠지만 여기에는 매우 복잡한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도공이 임대료 수입 포기하지 않는 이유
 
한국도로공사 매출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공사는 직원 수 8700명, 자산 69조 원, 연 매출 9조 5000억 원, 순이익 274억 원에 달하는 매머드 공기업입니다. 이렇게 큰 외형에 비해 매년 순이익이300~500억대에 불과합니다. 물론 공기업이 많은 이익을 내는 게 비정상이지만 결과적으로 도공은 자체적으로 쓸 돈이 거의 없습니다. ​

도공의 수입은 도로를 건설하는 사업(50%)과 통행료(40%), 나머지 부대사업 임대료(10%)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도로 건설 사업은 정부 예산을 단지 집행하는 것이라 이익이 없으며, 통행료 수입 역시 비용을 제외하면 전부 기획재정부에 회수되어 이익이 없습니다. 결국 도로공사가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휴게소와 주유소에서 거두는 임대료뿐입니다.


도공은 매년 휴게소, 주유소에서 2000~3000억 원의 임대료를 거둡니다. 이 수입은 휴게소와 주유소에서 소비한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출발하는데, 휴게소에서 거두는 임대료 수입이 주유소 임대료의 2배가 넘습니다. 따라서 도공의 이익이 늘어나려면 무엇보다 휴게소 매출이 늘거나 휴게소에 더 많은 임대료를 부과해야 합니다. 휴게소 음식 불만에서 도공 임대료를 뗄레야 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도공이 많은 임대료를 걷지만 이게 다 이익이 되는 건 아닙니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와 주유소 중 70%는 도공이 투자해 짓고 관리하는 곳입니다. 매년 시설유지비 등을 제하면 남은 순이익은 대략 300~500억 원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돈은 도공 직원들의 성과급 재원으로도 사용됩니다. 성과급은 공기업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데 2022년 기준 기관장은 80%, 직원은 200%였습니다. (관련 기사 : 분노 주의!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 맛없는데 비싼 이유)

이때 경영평가의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경영성과, 즉 이익입니다. 예를 들어 인천공항이나 한국공항공사는 코로나19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임대료 수입이 줄었지만 그 결과 적자가 크다는 이유로 경영평가에서 C 등급을 받고 성과급 반납 운동까지 했습니다.

도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자가 나면 한국공항공사처럼 낮은 평가등급을 받아 성과급이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즉 휴게소와 주유소에서 거두는 임대수입은 평가등급에 영향일 미칠 뿐 아니라 만약 경영적자라도 발생한다면 우수한 평가등급을 받더라도 성과급을 줄 돈이 없게 됩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도공의 직원들이 너무 성과급만 밝히는 게 아니냐고 질책할지 모르나,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공기업 직원이 받는 성과급이란 과거 공무원이 받던 '정근수당'이 뿌리입니다.

즉 공무원은 1년에 2번씩, 1월과 7월에 실적과 관계없이 정근수당을 받지만 공기업은 이를 없애고 평가와 연계해 일을 잘해야 주는 수당으로 바꾼 것입니다. 따라서 공기업 직원들에게 성과급이란 '받으면 좋고 못 받으면 섭섭한 보너스'가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하는 수당'인 셈입니다.

제값에 팔면 적자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
   
SBS 모닝와이드SBS

도공이 음식값 인하, 정확하게 말하면 음식값에서 거두는 임대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고속도로 휴게소 쪽으로 가보겠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입점업체가 휴게소에 내는 수수료율은 대략 40~50%입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업주는 남은 50~60%로 재료도 구입하고, 직원도 고용하고, 집기도 구매하고, 세금도 내야 합니다. 대략 재료비 35%, 인건비 20%, 판관비 5% 정도입니다. 따라서 40~50%의 수수료를 휴게소에 내면 업체는 남는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질을 낮춰 원가를 떨어뜨리거나 가격을 올려 최소한의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질 나쁜 음식을 비싼 가격에 사 먹어야 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화가 나지만 적자운영이 불가능한 입점업체 입장에서도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도공도 양보할 수 없고, 입점업체도 양보할 수 없다면, 이젠 남은 곳은 40~50%의 수수료(임대료)를 거두는 휴게소 운영사가 양보해야 할 상황입니다.

휴게소 운영사란 입찰을 거쳐 도공과 임대계약을 맺고 휴게소를 운영하는 민간기업으로 이들의 목적은 영업을 통한 이익입니다. 이들은 판매 음식에서 40~50%의 수수료를 거두어 대략 10~15%를 도공에 납부하고 25% 정도를 유지관리비에 사용하게 됩니다.

여기서 휴게소 운영사가 도공에 납부하는 임대료 시스템이 좀 특이한데, 매출이 증가하면 임대요율이 계속 높아지는 시스템입니다. 용어상으로는 '초과이윤환원법'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휴게소 운영사가 적정이익을 초과해 이윤을 가져가지 못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도공이 설계한 휴게소 운영사의 적정이윤은 매출의 5~6%입니다. 즉 고속도로 휴게소의 임대료 부과 기준인 동종업계 이익률이 소매업(6.18%), 음식점업(5.32%)으로 휴게소 운영사는 이 정도 이익만 거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휴게소 운영사가 흑자는 고사하고 적자가 나는 것입니다. 특히 비싼 임대료를 내는 대형 민자복합휴게소와 산간오지에 있는 소형휴게소가 문제입니다.

휴게소의 적자가 심각해진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우선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고물가, 최저임금, 주 52시간 근무제, 휴게소 과밀, 소비자의 이용 기피 등이 있는데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매출은 늘지 않는데, 고정비 지출은 너무 많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매출은 코로나19로 인해 휴게소 이용객이 줄어든 점도 있지만 휴게소 음식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매우 큽니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자들은 휴게소에서 필요한 서비스만 무료로 이용하고 일체의 지출을 거부하는 선택적 소비마저 보이는 상황입니다.

또한 고정비 증가도 물가나 인건비 상승 등 외부요인이 있지만 고속도로 휴게소가 부담하는 공공서비스 비용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휴게소는 손님이 없어도 연중무휴로 주차장, 화장실, 샤워실 등을 종일 운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비용을 도공이나 고속도로 통행료에서 내주는 구조가 아닙니다. 오로지 휴게소를 방문한 이용자의 소비에서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코로나19처럼 휴게소 이용객이 줄면 공공서비스 비용 부담은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제가 분석한 결과, 이렇게 휴게소가 매년 부담하는 공공서비스 비용이 휴게소 매출의 약 4~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도공이 거두는 임대료가 실질적으로 15~20%나 되었던 것입니다.

누군가는 공항이나 터미널과 역을 비교하며 똑같지 않냐고 반문하겠지만 공항은 항공기 티켓과 별도로 공항 이용료를 부과합니다. 역과 터미널의 경우 이용료는 없지만 시설관리 비용을 모두 임대주인 코레일과 운송사가 부담합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만 입점업체인 '을'에게 모든 관리 비용을 전가하는 계약구조입니다. 

따라서 휴게소 운영사 역시 10~15%의 임대료에 더해 4~5%에 달하는 공공시설 유지비를 부담하는 상황에서 추가 비용을 부담할 능력은 없는 셈입니다.

해결 불가능한 과제 아냐
수도권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자료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유지되었던 것일까요? 과거 휴게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시절에는 이런 구조에서도 영업이 가능했습니다. 휴게소는 부족했고 이용객은 넘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휴게소도 너무 많고 이용객의 소비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도공은 매년 새로운 고속도로와 휴게소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운전자의 편의를 보장하기 위해 매 25km마다 정규휴게소를, 그 중간에는 간이휴게소를 짓고 있는데요. 이렇게 늘어난 휴게소가 공공서비스 차원에서는 장점이지만 매출이 있어야 운영 가능한 휴게소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고속도로 휴게소가 공공시설로서 무료 서비스도 유지하고 음식값도 시중과 비슷하게 낮추며 품질도 높이려면 휴게소 운영사에 시중과 동등한 수준의 임대료만 걷거나 휴게소에 전가한 공공서비스 비용을 보전해 주어야 합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휴게소 음식 불만에는 이런 복잡한 돈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조에 대한 이해와 '휴게소 이용료'와 같은 새로운 재원 마련이 해결되지 않는 한 휴게소는 계속 밥값을 올리려고 할 것이고, 도공은 외부의 질타가 있을 때만 잠깐 움직일 뿐 근본적인 해결에는 외면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휴게소에서 국민이 내는 밥값으로 공기업 직원의 성과급과 공공서비스 비용을 마련한다는 게 비정상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휴게소를 무료로 이용하는 사람은 어떤 부담도 없는 반면, 휴게소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그 몫까지 대신 부담하는 구조는 형평성에서도 어긋나 보입니다.

그런데 휴게소 식사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도공 임대료는 연간 500~600억 원에 불과합니다. 어찌 보면 큰 돈이지만 해마다 설과 추석 연휴 통행료 면제로 사라지는 1400~1500억 보다는 적습니다. 따라서 이 돈을 마련하는 것은 해결 불가능한 과제도 아닙니다. 정부와 도공, 휴게소가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인 재정대책을 수립해 국민이 느끼는 고통과 불만이 머지않아 해소되길 기대합니다. 

음식값 10% 인하하면 휴게소 음식불만 해결될까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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