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대교와 한강변 건물들을 데칼코마니로 만든 노을.
성낙선
저녁노을을 가리키는 또 다른 말로 '낙조'니, '황혼'이니 하는 단어들이 있다. 그 단어들에서 왠지 쓸쓸하고 외로운 정경이 떠오른다. 저녁에 해가 지면서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왜 그처럼 스산하고 시린 정서를 느껴야 하는 걸까? 낙조와 황혼은 어딘가 모르게 뒤이어 다가올 어둠을 강하게 의식한 데서 생겨난 단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사실 그 단어들이 품고 있는 의미대로, 떨어지고(낙) 저무는(혼) 풍경을 바라보면서 유쾌하고 따뜻한 감성을 느끼는 게 더 이상하다. 황혼은 심지어 '이별' 내지는 '소멸'을 표현하는 문구에 사용될 때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노을이라는 우리말에 좀 더 강한 애착을 느낀다. 노을은 아침이든 저녁이든 그 때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하늘이 붉게 물든 현상 그 자체를 가리킨다. '아침노을'이든 '저녁노을'이든, 노을이라는 단어에서 떨어지고 저무는 의미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낙조하면 자연스럽게 '서해 낙조'를 떠올린다. 서해안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어느 지역의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니까 그곳에 꼭 한 번 가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설령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 하더라도 서해를 가게 되면, 은연중 한 번쯤 낙조는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서해안에 무슨 무슨 낙조마을, 무슨 무슨 낙조전망대 하는 명칭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그런지 서해 낙조는 좀 더 특별할 거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서 있는 빌딩들. 그 사이로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고 있다. 원효대교 북단에서 바라본 풍경.
성낙선
서해 낙조가 아름다운 건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쪽 하늘로 해가 지는 풍경을 보려면 꼭 서해를 찾아가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한강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이 서해 낙조만큼이나 아름답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그 이하일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 또는 보는 장소에 따라서 내가 접하게 되는 풍경에 일정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에서 보는 저녁노을은 그 풍경이 매우 다채롭다.
한강에서는 태양이 지는 공간을 특정하기 어렵다. 태양이 때로는 빌딩 사이로, 때로는 다리 위로, 때로는 먼 산 너머로 미끄러지듯이 넘어간다. 그때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모두 다 다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이고 강이고 뭐고 전부 다 붉게 물들어 있는 광경을 보게 되면, 가슴이 뭉클하다. 하루를 이토록 아름답게 막을 내릴 수 있게 해준 데, 감사하다. 그때는, 해가 저문 뒤에 찾아오는 어둠마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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