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 모래톱에 까맣게 내려앉은 민물가마우지들.
성낙선
민물가마우지들로서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그게 다 저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고, 새끼 낳아 기를 생각으로 하는 단순한 생태적 활동일 뿐인데 말이다. 특정 야생동물에 '유해' 딱지가 붙으면, 그때부터는 그 동물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생존을 위협받는다.
동물들에게 그게 어느 정도로 위급한 사건이냐면, 추운 북쪽나라에서 따듯한 남쪽나라로 귀순한 사람에게 '그가 남쪽 나라 생활 방식에 익숙하지 않고, 달리 하는 일 없이 그저 남쪽나라 식량을 축낸다'는 이유로 그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여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안정적인 생태계 운운하는 사람들의 과거 행적도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사람들은 이미 한강은 말할 것도 없고, 4대강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강가 습지를 대대적으로 파괴한 전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우리 생태계를 걱정해 옳은 판단을 내렸을까?
급기야 지난 4월 초, 일부 지자체에서 엽사들을 동원해 민물가마우지를 총기로 쏴서 잡아들이는 일을 시작했다. 물론, 한강에서까지 엽총으로 민물가마우지들을 사냥하는 장면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도심이나 관광지에서까지 총을 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에 따라 민물가마우지를 포획하는 일이 가능해진 이상, 한강에 사는 민물가마우지들 또한 어떤 식으로든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민물가마우지들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민물가마우지들의 앞날이 불투명하다.

▲밤섬, 찰랑이는 얕은 강물 속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철새들.
성낙선
철새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사람들은 이미 민물가마우지를 '소리 없이' 잡아들이는 방법들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방식대로 둥지를 제거하거나 포획 틀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물가마우지의 생태를 연구하는 등 개체수 조절을 위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제거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과연 민물가마우지가 사람에게 끼치는 '해악'을 제거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수를 제거해야, 민물가마우지가 더 이상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착한 동물'이 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사실은 그 모든 게 다 주먹구구다.
단지 민물가마우지를 제거한다고 해서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본래는 이 모든 게 지구 생태계가 정상이 아닌 데서 비롯됐다. 그리고 지구 생태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범인은 따로 있다. 그 범인이 적어도 민물가마우지는 아니다. 민물가마우지는 억울하다.
애초, 특정 동물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하는 기준 자체가 참으로 애매하다. 그 동물을 유해야생동물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준은 더 더욱 애매하다. 그런 기준이 있다고 해도, 그게 가능한지도 알 수 없다. 한 번 딱지를 붙인 동물에게서 그 딱지를 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한강, 한겨울 깨진 얼음 사이를 떠다니며 먹이를 찾는 철새들.
성낙선
▲철새들이 강가에 모여서 깃털을 다듬고 있다. 물닭, 흰죽지 등이 보인다.
성낙선
그동안 한국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민물가마우지들에게 난데없는 시련의 세월이 시작됐다. 그 시련이 언제쯤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은 다만 그 시기가 민물가마우지들이 유해야생동물에서 '멸종위기동물'로 분류되는 시점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최근에는 물닭 같은 철새들도 텃새로 변해간다는 소식이다. 이런 경우가 민물가마우지나 물닭에서 그치지 않는다. 철새들이 집단으로 푸대접을 받을 날이 머지않았다. 이러다 한강이 이러저러한 철새들의 도래지가 아니라, 그 철새들의 사냥터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가 한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철새로는 민물가마우지와 물닭을 비롯해 흰죽지, 재갈매기, 청둥오리 등 수십 종이 있다. 그중에는 흰꼬리수리, 큰기러기 같은 멸종위기종도 있다. 철새가 더 이상 철새가 아닌 세상에, 다함께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강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물닭 한 마리.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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