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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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과 함께 시작된 토지독점은 최대의 악을 초래했다. 모든 국가의 반 이상 국민에게서 마땅히 이뤄졌어야 할 보상도 하지 않은 채 자연적 유산을 박탈하는 바람에 그 이전에는 없었던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양산되었다. … 경작 및 문명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토지사유제는 마땅히 이뤄졌어야 할 보상도 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서 그 재산을 빼앗아 갔다."(Thomas Paine, Agrarian Justice, London: W. T. Sherwin, 1817, pp.7~8)
미국 독립전쟁, 즉 미국혁명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의 말이다. 페인이 1776년 1월 발간한 <상식>(Common Sense)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몇 달 만에 50만 부 이상이 팔려, 같은 해 7월 4일 발표된 <독립선언문>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중에 그는 프랑스 대혁명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하고 혁명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토지에 대한 권리를 모두가 누려야 할 자연적 유산으로 보고, 토지사유제가 도입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그 권리를 박탈당하고 가난하고 비참한 상태로 떨어졌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페인은 기본소득을 주창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이 갖는 토지권에 대한 보상이라는 차원에서 제안된 것이다.
오늘날 경제학자 가운데 토지사유제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지만, 예전 경제학자 가운데서는 그런 인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토지 소유자를 "스스로 노동도 하지 않고 조심도 하지 않고, 마치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처럼 자기의 의도·계획과는 무관하게 수입을 얻는 유일한 계급"이라고 혹평하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주는 심지는 않고 거두기만 좋아한다"라고 기술함으로써 토지사유제에 대한 불만을 표명했다.
고전학파 경제학을 집대성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 Mill, 1806~1873)도 "사유재산의 신성함을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신성함이 토지 재산권에도 같은 정도로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토지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토지는 모든 생물이 생래적(生來的)으로 물려받은 유산이다"라고 하면서 토머스 페인과 유사한 견해를 피력했다.
한계혁명을 주도한 레옹 발라(Leon Walras, 1834~1910)도 "개인의 능력에 의한 생산물을 모두 개인에게 귀속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가 토지를 소유하고 그 임대료로 국가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에 와서도 이런 유의 견해를 펼친 경제학자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 중에는 로버트 솔로(Robert M. Solow), 제임스 토빈(James Tobin), 프랑코 모딜리아니(Franco Modigliani), 윌리엄 비크리(William Vickrey)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들어 있다.
사실 긴 인류 역사 가운데 토지사유제가 합법화한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고대 로마 사회와 근대 사회 정도가 거기에 해당한다. 더 오랫동안 지속했던 토지제도는 사회 구성원에게 평등한 토지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헨리 조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기의 인류는-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언제나 평등한 토지권을 인정했었습니다. 노동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개인별로 토지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할 필요가 생긴 후에도, 평등을 충분히 보장하는 방법을 각 사회의 발전 단계에 맞게 마련해 왔습니다. 어떤 민족은 농토를 주기적으로 재분배하고 가축을 기르거나 땔감을 마련하는 토지는 공동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또 거주와 경작에 필요한 토지를 각 가족에게 분배하지만, 필요성이 사라지면 누구든 다른 사람이 그 땅을 차지하여 쓸 수 있게 하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토지법도 성격은 같습니다. 일단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한 다음, 어느 가족도 토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희년 제도를 두었습니다. 즉 매입한 토지라 하더라도 50년마다 원 소유자의 자손에게 되돌려 주도록 하였습니다."(헨리 조지, 앞의 책, 22쪽).
헨리 조지의 말대로라면, 인류는 긴긴 세월 동안 모두에게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작동시켜 온 셈이다. 토지사유제가 합법화한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 나라의 법제 안에는 그 장치의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다.
토지사유제가 합법적 제도로 정착한 결과는 참혹하다. 모든 사람이 비슷비슷하게 땅을 갖게 되리라는 생각은 몽상가의 머릿속에서만 실현 가능할 뿐, 실제로 땅은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어 갔다. 땅을 독점하면 인간을 소유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두 경우 모두 소유자가 다른 사람이 노동한 결실을 취할 수 있고 노동자의 상전이 될 수 있다. 토지 없이 생산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생존의 터전을 소유하면 결국 사람을 소유하게 된다.
더욱이 토지사유제는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하기에 노예제보다 더 간편하고 경제적이다. 노예를 사냥하고 가두고 먹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노예제에서 흔히 사용했던 채찍질도 필요 없다. 가만히 두면 사람이 제 발로 찾아와서 주인으로 모실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현대판 노예제에서 노동자의 처지는 처량하기 짝이 없다.
"토지사유제는 맷돌의 아랫돌이다. 물질적 진보는 맷돌의 윗돌이다. 노동 계층은 증가하는 압력을 받으면서 맷돌 가운데서 갈리고 있다." 헨리 조지의 말이다(헨리 조지, 김윤상 옮김,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2016,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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