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6 07:15최종 업데이트 24.01.1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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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이 바라는 주택' 민생토론회에서 주택 문제를 빠르고 확실하게 풀어내고 튼튼한 주거 희망 사다리를 구축하겠다고 하면서, 실로 파격적인 부동산 정책을 약속했다. 두 가지가 중심인데, 하나는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를 철폐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이명박 정부 이래 보수 정치세력의 대표적인 부동산 정책으로 자리 잡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훨씬 "빠르고 확실하게" 추진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마침 같은 날 정부에서도 관계부처 합동으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 방안'(1.10 대책)을 발표했는데, 대통령의 발언과 기조가 같다. 


1.10 대책과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가 비판 논평을 발표했고,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 등 전문가들의 비판 칼럼도 이어졌다. 필자는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비판에 대체로 동의한다. 

대학에서 38년간 경제학을 가르치고 연구했으니, 필자가 감히 '경제학 선생'을 자처해도 욕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학 전공자로 오랫동안 검사 생활을 하며 수사와 기소에 전념했으니 그 방면의 전문가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제에 관한 한 초보자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윤 대통령을 경제학을 배우는 '학생'으로, 그의 발언을 주관식 시험의 '답안지'로 여기고 한번 채점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대통령은 과연 100점 만점에 몇 점을 받을까. 시험 문제는 '한국의 부동산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냉정한 교수라고 할지라도 주관식 시험에 0점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필자는 먼저 윤 대통령의 발언 내용 중에 점수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정치를 처음 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부동산 문제"였다고 하는 부분은 정치인으로서 바람직한 마음가짐으로 보아 점수를 줄 수 있겠다. 그 외에 세금을 부과하면 조세 전가가 일어난다든지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후생이 감소한다든지 하는 일반론을 잠시 언급했으니, 거기에도 억지로 약간의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머지 내용에서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대통령의 시험 점수는 기껏해야 20점을 넘을 수 없다. 아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왜 점수를 받을 수 없는지 대표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따져보기로 하자. 만일 필자의 평가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대통령은 자신에게 이런 내용을 주입한 참모나 관료를 즉각 교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부동산 문제의 본질을 파악 못 한 대통령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부동산 가격과 투기·불로소득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을 괴롭혔던 것은 부동산 투기 광풍과 부동산 가격 폭등이 아닌가. '영끌투자', '이생망', '갓물주' 등의 신조어가 출연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국민의 다수가 주택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고가주택에 대한 중과세나 재건축 규제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올라간 집값과 전셋값 때문이 아닌가. 주택 문제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해결하겠다는 마당에, 가격 문제와 투기·불로소득 문제를 철저히 외면한 것은 한국 부동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물론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부동산 시장의 상황이 역전되어 가격 폭등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한정 없이 높아진 부동산값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부동산으로 인해 이미 악화할 대로 악화한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장 상황의 변화로 윤 대통령을 변호하기에는 남은 문제가 너무나도 심각하다.

대통령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서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를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그는 주로 보유세를 염두에 두고 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부동산 부자에게 엄청난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으로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임차인이 혜택을 입는다고 하다니,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동산 부자에 대한 중과세가 철폐되면 부동산 부자들은 즉각 세금 부담이 줄어들고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해서(보유세를 완화하면 보유 비용이 줄어들어 부동산 가격은 상승 압력을 받는다), 확실한 이익을 얻게 된다. 장차 다시 투기가 발발하기라도 하면, 지난 몇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불로소득을 챙길 수 있다. 그러니 이 정책의 실체는 부자 감세요, 부동산 부자 지원책이라고 규정해야 마땅하다.

부동산 부자들에게 중과세를 하면 조세가 전가되어 그 피해를 임차인들이 고스란히 보는 것이 명백하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하지만 부동산 조세가 임차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내용은 경제학 교과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조세 전가는 조세 부과로 공급이 감소할 때 일어난다. 그러나 부동산은 공급이 비탄력적이어서(즉 가격이 변하더라도 공급량이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보유세를 부과하더라도 임차인에게 전가되기가 어렵고 집주인이 고스란히 조세를 부담한다. 그러니 조세 전가 때문에 부동산 부자에 대한 중과세의 피해를 임차인이 고스란히 본다는 말은 틀렸다. 

부동산 부자에 대한 중과세를 폐지할 때 확실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부동산 부자들이라는 사실을 은폐했고, 다주택자에 대한 부동산 보유세가 임차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에, 여기에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사실 아닌 내용으로 자신의 주장 뒷받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은 한 대에 72억 원짜리 벤틀리 차를 예로 들면서, 고가의 차량이나 주택에 보유세를 중과하면 그런 물건을 잘 안 만들게 되고, 그 결과 많은 중산층과 서민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므로, 결국 그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그런데 주택에 대한 보유세는 기존 주택에 부과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발언도 근거가 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존 주택에 대한 보유세는 일자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말이다. 

또 설사 보유세가 신규 고가주택의 공급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투입되던 생산요소가 다른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투입된다면, 일자리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벤틀리 발언 직후에 대통령은 보유세가 돈 있는 사람한테는 절체절명 한 게 아니라고 해서, 앞서 말한 내용을 스스로 부정했다. 보유세 때문에 고가주택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뜻이고, 그러니 공급이 줄어들어 일자리가 감소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금은 대부분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그런 효과가 작은 세금을 좋은 세금의 한 조건으로 꼽는다. 세금이 일자리를 줄인다고 말하려면, 여러 세금 중에서 그 세금이 일자리를 줄이는 효과가 유독 크다는 사실을 밝혀야 할 텐데,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따져봐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중산층과 서민은 왜 꼭 부자들이 사용하는 주택이나 차량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가. 대통령의 발언을 뒤집어서 말하면, 중산층과 서민이 걱정 없이 살려면, 부자들이 마음껏 사치품 소비를 하고 투기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이 발언도 점수를 얻기는 어렵다. 오히려 감점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의 보유세 사례를 언급했다. 미국의 기초자치단체에서 고가주택에 대해 보유세를 좀 많이 부과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그것은 좋은 집에 관리비가 많이 드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보유세가 고가주택 위주인 것처럼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며, 미국이든 한국이든 부동산 보유세는 국가가 부동산 소유자에게 주는 혜택에 상응하여 내는 대가라는 성격을 가지므로 미국의 사례를 들어 한국의 보유세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미국의 사례로는 보유세가 한국의 6~7배로, 그렇게 무거운 보유세가 부과되는데도 소유권을 부정한다든지 시장경제를 해친다든지 하는 주장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했으니 이 또한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철폐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대통령 발언의 다른 한 축, 즉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는 내용은 한마디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얼마 전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하겠다고 해서 주민들의 탐심을 자극했던 것과 비슷한 성격이다. 부동산을 이용해 '탐욕의 정치'를 펼쳤던 이명박 정부가 한국 사회에 어떤 폐해를 초래했는지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물론 시장 상황에 따라 각종 부동산 규제를 완화할 수는 있다. 하지만 30년만 넘어가면 아예 안전진단도 없이 바로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정책이다. 거기다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상향하겠다는 내용까지 덧붙였다. 이는 공공적 성격이 매우 강한 공중 공간을 현재의 부동산 소유자에게 무상으로 주겠다는 것이므로 심각한 내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책이 시행될 때, 누가 가장 큰 혜택을 보겠는가. 재건축 시기가 넘어서 주택 노후화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혜택을 입겠지만 그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오히려 투기 목적으로 여러 채를 사놓고 시장이 호전되어 불로소득 취득 기회가 생기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과다보유자들이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사실 주택 노후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개별적인 조사를 거쳐서 재건축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음에도, 이처럼 무분별하고 극단적인 규제 철폐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니 이 부분도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10일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 모두 발언과 마무리 발언을 주관식 시험 답안지로 간주해서 평가한 결과, 100점 만점에 최대 20점밖에 줄 수가 없었다. 그 20점도 주관식 시험에서 0점을 주기는 어려워 점수 줄 부분을 억지로 찾아내 부여한 점수다. 이런 엉터리 답안을 가지고 부동산 문제를 정치와 이념에서 해방시키고 경제 원리에 따라, 시장 원리에 따라 작동되게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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