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3 07:09최종 업데이트 23.12.1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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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선거제도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시끄럽다(국민의힘이 이 문제와 관련해서 평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언론은 민주당 지도부가 이미 국민의힘(이하 국힘)이 주장하는 병립형 비례제도로 회귀할 것을 결정해놓고는, 약속을 어긴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미적거리고 있다는 기사를 쏟아낸다. 

김어준·이동형 등 친민주당 계열 빅유투버들은 병립형 회귀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확실한 승리의 길이라고 주장한다(심지어 이동형씨는 '준연동형에 무슨 정의가 있고 명분이 있나. 다들 자기 욕심이지'라고까지 말했다). 11일 아침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위성정당 방지에 국힘이 협조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도의 문제점을 잔뜩 늘어놓았다.
  
이쯤 되면 민주당 지도부가 사실상 병립형 회귀로 방향을 정했다는 의심을 지우기가 어렵다. 그런데 과연 현 상황에서 병립형 회귀가 불가피하며, 또 올바른 선택일까. 대답은 노(NO)다. 물론 취지가 옳다고 하더라도 실리상 손해가 명백하다면 그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취지가 옳고 실리상 손해가 없다면(아니 이익이 있다면), 당연히 그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병립형은 무엇이고, 연동형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우선 병립형이 뭔지 연동형이 뭔지부터 알아야 한다. 둘 다 국회의원 비례대표 제도의 유형인데(비례대표 제도 자체가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가 의석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전자는 정해진 비례 의석수를 각 정당의 정당 지지율에 따라 단순 배분하는 제도이고, 후자는 각 정당의 정당 지지율에 따라 지역구와 비례를 합한 정당 의석수를 미리 정하고, 각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가 거기에 미달하는 경우 비례의석으로 그 차이를 메워주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차이 전체가 아니라 절반만 메워주고, 메워주는 의석수가 미리 정해진 총 비례 의석수(현재 47석)를 초과할 때는 메워주는 의석수를 비례적으로 축소하기 때문에 완전한 연동형이 아니다. 그래서 '준' 자를 붙이는 것이다.

2020년 병립형으로 유지하던 비례제도를 준연동형으로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 소선거구제에서 지역구 방식으로만 국회의원을 선출하면 득표율과 의석수 비율 간에 큰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병립형 비례제도로 보완하더라도 괴리는 거의 해소되지 않는다(특히 우리나라처럼 전체 비례 의석수가 적을 때는 더 그렇다). 정당 득표율은 제법 높지만 모든 지역구에서 1위를 하지 못해서 지역구 의석을 1석도 얻지 못한 정당은 병립형 비례제도 하에서는 유권자의 지지에 한참 미달하는 의석수밖에 얻지 못한다. 

준연동형 비례제도의 취지와 결함
  
준연동형 비례제도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비율 간의 괴리를 완화해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상당한 정당 지지율을 얻는데도 불구하고 의석수를 제대로 얻지 못한 진보 정당들이 약진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한마디로 당시의 제도 변화는 '정치개혁'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적용된 준연동형 비례제도는 완전 연동형이 아니었고, 전체 비례 의석수를 늘리지도 못했으며,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편법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었다. 비례의석이 너무 적어서 선거의 비례성은 높아지지 않았고, 소수 정당의 의석수도 늘어나지 않았다. 민주당은 국힘의 뒤를 따라 사실상의 위성정당을 창당함으로써 제도개혁의 취지를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의석수 확대의 꿈에 부풀어 있던 정의당은 배신당했다며 원망을 토로했다(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정의당의 협조를 얻지 못한 데는 이때의 배신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과 정치개혁공동행동 회원들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의 권역별 병립형 선거제도 개악 시도를 규탄하며 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병립형으로의 회귀, 왜 나왔을까
  
지난 총선에서 적용된 준연동형 비례제도가 이런 문제점들을 노정하는 바람에 마치 병립형에서 준연동형으로의 제도 변경이 '개악'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문제의 핵심은 제도 변경이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데 있는 것이지,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라. 생각해보라. 준연동형 비례제도 때문에 선거의 비례성이 그전보다 나빠졌는가. 아니다. 선거의 비례성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민주당 입장에서 이야기해보자. 제도 변경 때문에 민주당은 손해를 보았는가. 아니다. 오히려 의석수는 그전보다 크게 늘었다. 

제도 변경의 방향은 옳았고, 결함을 보완하면 선거의 비례성을 높일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한데, 더욱이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피해를 본 일이 없는데, 왜 이렇게 더 나쁜 과거로 돌아가지 못해서 안달일까. 그동안 여러 차례 '정치제도를 개혁하겠다, 위성정당은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민망해서일까.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씨가 준연동형 제도에서 국힘은 위성정당을 만들고 민주당은 만들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계산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충격을 줬던 걸까. 최씨의 시뮬레이션이 엉터리라고 하는 것은, 국힘 위성정당이 전체 비례 의석(47석) 중 68.1%(32석)를 차지하게 된다고 하면서 병립형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민주당은 앉아서 국힘에 13.2석을 '상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최병천씨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국힘은 위성정당을 만들었는데 민주당은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민주당에 몽땅 정당 투표를 해서 자기 표를 '사표'로 만들 정도로 멍청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1월 26일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한 모습. 이날 최병천씨는 국힘 위성정당이 전체 비례 의석(47석) 중 68.1%(32석)를 차지하게 된다고 하면서 병립형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민주당은 앉아서 국힘에 13.2석을 '상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뉴스공장 화면 캡처

 
위성정당 문제를 유발한 주범은 국힘이 아닌가. 그러니까 민주당은 국민들에게 위성정당의 책임소재가 국힘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고, 국힘에 위성정당을 만들지 말라고 분명히 요구하면서, 위성정당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합의하라고 압박해야 한다. 민주당이 12월 15일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를 했으니 지금 이 절차를 밟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 집단지성을 믿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국힘은 이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그간의 행태로 보아서 당연한 예측이다. 그다음이 문제다. 민주당 지도부는 다음 행보와 관련해서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늘 하는 말 아닌가. 국힘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와 의석수 간의 괴리가 커지는 과거의 제도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고 있고,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공공연히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음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그동안 수도 없이 열었던 정책토론회나 간담회를 놓아두고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 국민이 국힘은 꼼수를 쓰는데 민주당 너희는 그런 짓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국힘에 의석을 갖다 바치라고 요구할 만큼 냉혹한가. 아니면 선거의 비례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 복잡한 제도는 갖다 버리고 과거의 간명한 제도로 돌아가라고 요구할 만큼 수구적인가. 왜 국민의 집단지성을 믿지 못하고, 민주당 지도부 몇 사람이 이 문제를 결정하려고 꿍꿍이 수작을 부리는 듯 보이는가. 

자, 이제 민주당이 선거제도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지 내 생각을 밝혀보겠다. 우선, 앞서 말했듯이 병립형에서 준연동형으로 제도를 변경한 것은 분명히 제도 개선이다. 그러니 병립형 비례제도로 회귀하는 것은 민주당의 선택지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비례 의석수를 더 늘리고, 완전한 연동형 제도를 도입하는 쪽으로 방향타를 맞추라. 국힘이 병립형 회귀를 주장한다면 그냥 놔둬라. 국힘의 제도 개악 노력에 민주당이 협조할 필요가 있는가. 이번에 만일 민주당이 병립형 회귀에 동조한다면, 앞으로 두고두고 선거제도 개악의 공범으로 지탄받을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 남소연

 
국힘이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의 대응 방안

다음으로, 다가오는 총선에서 국힘이 위성정당을 만든다면 민주당은 어떻게 해야 할까. 최소한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친민주당 계열의 비례 정당들이 다수 만들어질 듯하다. 민주당은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정당 한 둘을 자매정당으로 지목하기만 하면 된다. 최근 유시민 작가도 칼럼에서 이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 물론 민주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는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총선을 맞아 마치 '떴다방'처럼 비례 정당이 난립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그런데 과거에도 선거가 다가오면 이름 모를 정당들이 여럿 등장하곤 했다. 이런 상황을 민주당이 왜 걱정하는가. 선거를 시장에 비유하자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상품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사라지듯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정당은 바로 사라질 것이다. 

이 방안은 위성정당을 만들 때보다는 민주당의 의석수가 적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총선 때까지만 하고 그만두지는 않을 것 아닌가. 다음 대선을 생각하면 자매정당이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민주당에는 유리하다. 게다가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엄청난 의석을 가지고도 제대로 개혁을 하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민주당 외곽에서 민주당보다 개혁적인 자매정당이 민주당을 견인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개혁 추진에 훨씬 유리할 수 있다.

민주당이 자매정당에 비례의석을 몽땅 양보하는 데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다만 10석 정도라도 비례의석을 차지하고 싶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개혁정당·시민사회가 선거연합 정당을 구성하면 된다. 민주당 후보 절반, 개혁정당·시민사회 후보 절반으로 비례 후보를 내기로 하고, 후보 결정은 국민경선 방식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이때 순위는 민주당 후보를 뒤쪽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주당 후보로 비례 당선이 되는 자는 선거 후 바로 민주당으로 복귀한다. 

사실, 이 방법은 지난 총선에서 시도되다가 민주당 쪽 전략가 한두 사람이 '공작'을 벌여 시민사회 세력을 따돌리는 바람에 매우 왜곡된 형태로 추진되었다. 그 정당, 즉 더불어시민당은 국힘의 위성 정당과 사실상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지금 민주당이 위성정당 이야기만 나오면 벌벌 기는 데는 그때 잘못했던 기억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짐작한다. 

민주당과 개혁정당·시민사회가 만들 선거연합 정당에 대해 위성정당 아닌가 하는 비난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비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설사 선거연합 정당이 위성정당의 성격을 일부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건 국힘의 꼼수에 대응하는 정당방위에 해당하고, 또 개혁정당·시민사회 인사들의 국회 진출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연동형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정당을 국힘의 위성정당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지나치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76명을 대표해 강민정, 김두관, 이형석, 이탄희, 김상희, 이용빈, 민형배, 이학영 의원은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에 '위성정당 방지법 처리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 이탄희 의원실 제공

 
국회 정개특위의 공론화 조사에서 드러난 우리 국민의 수준

2023년 5월 6-13일에 국회 정치개혁 특별위원회가 발주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관련 공론화 조사가 시행된 바 있다. 공론화 조사란 단순 여론조사와는 달리, 일정 수의 패널을 정해서 관련 주제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하면서 여러 차례 의견을 묻는 조사 방식을 뜻한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공론화 조사에서는 지역구 의석수를 늘리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비례 의석수를 늘리는 것이 좋은지, 비례대표제 강화를 위해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이 좋은지, 연동형이 좋은지 병립형이 좋은지 등 중요한 문제에 관해 3차례 조사를 했다. 

500명의 패널이 선거제도에 관해 지식이 늘어가면서, 비례의석 비율을 늘려야 한다, 비례대표제 강화를 위해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 비례제도는 현행대로 가든지 연동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바꾸는 것이 수치로 드러났다. 이 결과는 정확한 정보만 주어진다면 우리 국민은 나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니 더불어민주당에 강력하게 권고한다. 선거제도 문제를 걸머쥐고 끙끙대지 말고 그냥 국민에게 맡겨라. 국민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자매정당을 지정하든지 아니면 선거연합 정당을 만들라는 여론이 조성될 것이다. 그러면 민주당은 그 여론에 따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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