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칼럼니스트' 황교익(59)씨
연합뉴스
실은 몰취향의 시대
개취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취향이 어디서 왔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실은 많은 취향 아닌 것들이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취향을 갖는 것은 많은 노력과 경험, 단련을 필요로 한다. 백종원이 만든 김치찌개와 백종원이 만들지 않은 김치찌개만을 경험해 본 이가 김치찌개 취향을 이야기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여러 가지를 해봐야 각각의 차이를 알게 되고 차이를 알아야 장단을 발견하고, 구조와 문법을 이해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취향이라는 것이 '발생'한다.
취향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발생한 것을 훈련하여 발현시키는 것이다. 표준화된 맛의 프랜차이즈가 지배한 골목에선 취향이 발생하지 않는다.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표준을 주입할 뿐이다. 그것이 힙이나, 유행, 패션, 핫플 같은 외피로 꾸며진다고 해서 그것이 취향이 되진 않는다.
표준화된 시장에서 강요를 선택으로 착각하는 삶은 자기의 얼굴이 무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달걀귀신의 세계와도 같다. 동어반복의 영화와 음악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사람이 볼수록 더 많이 열광하는 것을 자기의 취향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세계를 확장하여 선택지를 넓혀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이것과 저것 중 하나만을 고르는 세계를 만든다. 맥락을 고려하고 사유를 확장하는 것을 귀찮아하게 되고 그것을 엘리트주의라 비판하게 된다.
몰취향이 잉태하는 것은 어쩌면 반지성의 사회다. 이는 '대중이 선택한 것이 오직 옳은 것', 그보다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이 오직 옳은 것'이라는 자본주의적 알리바이에 기인한다. 그러나 대중, 소비자는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을 강요받았을 뿐이지.
몰취향의 강요를 개취의 선택으로 착각한 결과 새마을식당에 줄을 서고, <해운대>를 천만관객이 보고, 영화평론에 명징, 상승, 직조라는 단어를 썼다고 엘리트주의라 비난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성소수자를 혐오할 권리도 취향이라고 다양성이라고 우기는 반지성의 시대를 만들었다. 취향을 만들지 못해서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거대한 한 개의 자본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도 그것을 유행에 충실한 힙스터(이건 정말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같은 말이다. 유행 타는 힙스터라니)라고 말하는 지루한 사회를 만들었다. 몰취향의 문제는 사실 떡볶이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에 '취향' 같은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똑같이 머리를 빡빡 밀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생각을 강요받으며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노래를 들으며 똑같은 독재자를 찬양하며 사는 나라에 취향 같은 건 가당치 않았다. 취향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명확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학교 현관엔 현관문보다 큰 글씨로 단결과 통일이라고 적힌 액자가 붙어 있었다. 폭력과 야만의 시대였다. 폭력과 야만의 자리는 자본과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몰취향의 시대.
그리하여 백종원 게임이 가능한 건 백종원이 정말 모든 음식의 레시피를 공개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아는 음식 종류가 몇 개 안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취향이 없는 우리들. 당신의 소울 푸드를 무시하는 황교익도, 마가린이든 설탕이든 다 때려넣고 잘 팔리는 음식이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는 백종원도 틀렸다. 그들은 이 몰취향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네이버 검색해서 나오는 맛집이면 다 맛있다고 여기며 더는 고민하지 않는 게으른 당신과 나는 이 몰취향의 시대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취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사유하고 노력하고 단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 많이 먹어보고, 더 많이 듣고, 보고, 감각하고 경험하고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발생한 것들을 갈고 닦아 다시 발현하는 것. 어렵고 지루하고 고단한 일. 하지만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면, 더 좋은 세계를 더 다양하게 살고 싶다면 그 정도 노력은 해내야 한다. 그래도 백종원 프랜차이즈에서 1시간 30분 대기하는 것보단 쉬운 일이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