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13 05:50최종 업데이트 22.05.2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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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비평연재 <좋은데, 싫었습니다>(좋싫)는 주류의 담론에 대항하는 저항의 언어조차 어쩌면 '당위'라는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질문합니다. 그저 이것'만'이 옳고, 이것은 '반드시' 좋아해야 하고,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대해야 한다는 절대적이고 당위적인 언어들이 정말로 대안과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편집자말]
요즘처럼 날씨가 화창하고 술 마시기 좋은 낮이면 '을지면옥'엘 간다. 제육 한 접시 시켜놓고 소주를 마신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낮 시간, 부산할 것도 없는 가게에서 소주와 함께 차게 식은 돼지고기를 집어 우물거리는 일은 서울의 한가운데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한가로운 맛이다.

고기 접시의 바닥이 보일 즈음 혹은 소주가 다 떨어져 갈 즈음 냉면과 소주를 시킨다. 한동안 평양냉면을 먹을 땐 가위질을 하지 말아야 한다느니 식초는 어떻게 넣고 또 겨자는 어떻고, 그놈의 면스플레인이 많았지만, 맛있는 건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법이다.


난 냉면이 나오면 계란이나 면이 육수를 흩트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육수를 먼저 한 모금 마신다. 을지면옥 육수는 고기 향이 과하지 않고 청량감이 있어 소주와 함께 먹기 매우 좋다.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면을 조금 씹다가 또 육수를 한 모금하고 다시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다시 면을 우물거리고. 이 행복한 순환을 몇 번 이어가다 보면 배도 부르고 술도 취하고.

을지면옥을 나와 취기도 포만감도 가라앉힐 겸 동네를 털레털레 걸어 다닌다. 골목골목 공장이 있고 동네 철물점에선 보지 못하던 공구를 파는 상점들이 있다. 평상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점빵'들 옆으로 '구루마'와 '리어카'들이 서있다. 그 사이사이로 날카로운 쇳소리와 기계소리가 분주한 골목을 지나면 '을지OB베어'가 나온다.
 

서울 을지로3가역 부근 일명 '을지로 노가리골목' 을지OB베어와 만선호프. 2021.4.26 ⓒ 권우성

 
날씨 좋고 배 부른데 술이 모자란다면 역시 노가리 안주에 맥주를 마시는 것이 '국 룰'이다. 을지OB베어는 몇 년 전부터 '노가리 골목'이라 불리며 사람들이 가득 찬 골목에 가장 먼저 문을 연 생맥주 집이다. 맥주 취향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목이 찢어질 것 같은 탄산이나 골이 띵할 정도로 차가운 살얼음은 맥주의 미덕이 아니라고 믿는 나에게 을지OB베어는 내게 생맥주의 이데아에 가깝다.

치킨과 떡볶이까지 판매하면서 굳이 '노가리 골목의 맥주집'이라는 브랜드를 고집하려는 옆 집 '만선 호프'에 비해 노가리와 쥐포 정도밖에 없는 을지OB베어의 안주도 "가볍게 맥주나 한 잔 더 할까?"라는 술꾼들의 입버릇에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그래서일까. 서울시는 지난 2015년에 을지OB베어를 오래도록 보존하고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는 집이라며 '백년 가게'로 선정했다. 역시 좋은 건 누구에게나 좋은 법.
   
기억이 저장되는 곳은 어디일까

을지로에서 처음으로 술을 마신 건 아마 모친과 함께였던 것 같다. 결혼 전 을지로의 인쇄소에서 일했던 모친은 당시 유명한 을지로의 한량이었다. 처음으로 을지로에서 같이 술을 마셨던 십수 년 전의 어느 날, 당연히 자연스레 모친을 인도하려 했으나 종로통과 무교동, 을지로 골목골목을 누비는 모친에게 어느새 주도권을 뺏기고 말았던 것이다. 마치 "니가 술을 마셔봤자지, 이 구역의 한량은 나야"라는 표정이었달까.

그때 모친과 함께 찾은 집은 '동원집'이었다. 감잣국을 시켜놓고 앉아 30년 전 모친의 전성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난 당시 맞이한 나의 음주 전성기를 뽐냈다(취해서 서로의 얘긴 안 듣고 자기 할 얘기만 했다는 이야기).

동원집에서 을지OB베어, 길 건너의 영락 골뱅이로 3차까지 이어진 그날, 모친은 그날 골목 골목을 누비면서 그때와 달라진 풍경, 이제 떠난 사람들,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 변해버린 당신의 모습, 하지만 여전한 당신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소 자기의 이야기나 지나간 것들에 대해 별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던 모친은 그 골목에서, 그 공간에서 30년 전의 자기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신이 났다.

정말이지, 기억은 공간에 저장되는 것일까. 을지로엔 그런 곳이 많이 있다. 아니 을지로뿐일까. 오래된 도시 서울엔 그렇게 세월이 켜켜이 쌓이고 딱 그 세월만큼의 기억이 쌓이고 그렇게 쌓인 기억과 시간이 올올이 엮여 '가치'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 '가치'를 문화라 부르기도 하거나 분위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이 오래된 골목이나 오래된 가게들을 다시 찾는 것은 단지 레트로의 유행이나 신기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모양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공간에 쌓여 있는 것들에 대한 공명. 그리고 그 위에 덧붙이는 내 시간과 기억들. 그렇게 많은 것들이 전승되고 발전한다.

문제는 만선 호프가 아니다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을 둘러싼 문제들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하나둘씩 가게를 늘려가던 만선 호프는 지난 1월, 을지OB베어가 입주한 건물을 구입했고 계속해서 퇴거를 요구하다 지난 4월 결국 강제 집행했다. 이미 8호점, 9호점으로 골목을 가득 채운 만선 호프는 기어이 을지OB베어 자리에 10호점을 낼 요량인가 보다. (만선 호프 사장이 을지OB베어가 있는 자리에 "화장실을 만들려고 했다"는 인터뷰도 있었으니, 백년 가게를 쫓아낸 자리에 화장실이 들어서는 걸 봐야 할 수도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3가 노가리 골목의 터줏대감 격인 노포(老鋪) '을지OB베어'가 6번째 강제집행 끝에 철거됐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등에 따르면 법원 등이 고용한 용역 등 100여 명은 21일 오전 4시 20분께 을지OB베어 강제집행에 나섰다. 이들은 1시간여에 걸쳐 을지OB베어 간판을 끌어 내리고 내부 집기류도 모두 빼냈다. 사진은 새벽 강제집행이 들어간 을지OB베어. 2022.4.21(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제공) ⓒ 연합뉴스


을지면옥도 서울시와 갈등 중이다. 을지로와 충무로 일대를 아우르는 세운지구 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을지면옥이 들어선 세운지구 3-2구역의 상인은 대부분 장사를 접고 철거한 상태다. 을지면옥만 흉물스러운 철거 가림막을 가게 문 앞에 세워두고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공구와 금속제 물건을 팔던 그 일대의 소규모 상인들은 재개발을 추진한다면서 정작 평생 장사를 해온 사람들의 생계엔 무심한 재개발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개인의 재산권 행사(을지OB베어)나 지자체의 재개발 정책을 단지 추억이 많은 노포를 없애선 안되니까 중단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을지면옥 철거가 기사화 되며 반발이 일었을 때도 건물주와 토지주들은 "가게 몇 곳 때문에 정책 사업을 그만두는 법이 어디 있냐"라고 반발했다.

맞는 말이다. 단 한 명의 입주자와 단 한 곳의 노포를 위해서라도 사업을 중단할 수 있는 것은 낭만적이고 윤리적으로 보이지만 정책 사업은 그렇게 진행돼선 안된다. 을지면옥의 철거는 재개발 사업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나타내는 상징이면서 대부분의 상징이 그러하듯 지엽적이다. 지엽적 문제를 이유로 정책의 근본이 변경돼선 안된다.

백년 가게이고 단골이 많고 건물주가 재산이 많기 때문에 재산권의 행사가 제어되어서도(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안된다. 임대차 보호법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임차인보다는 임대인을 보호하는 법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도 법이기 때문에 인정과 낭만으로 법의 체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주목하고 바꿔야 할 것은 법보다 법이 기반을 두고 있는 '가치'의 변화다.  

노후하고 안전하지 않은 을지로의 낡은 건물들을 재개발하겠다는 서울시는 번듯한 쇼핑몰을 지어서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것을 재개발의 이유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을지로의 낡은 건물들을 더욱 안전하게 보수하고 수리해 노포들을 비롯해 그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산업 전반, 그 산업의 토대 위에 존재하는 유기적 경제 생태, 그 생태계에 의탁해 살아온 공동체와 그들의 생계를 더욱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만선 호프는 골목 전체를 차지해 얼마라도 더 많은 수입을 올리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여전히 공존함으로 거리 자체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공간의 의미를 부동산으로 축소하고 왜곡해서 이해하는 현재의 천박한 인식 체계를 반성하고 토론하며 그 가치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용산참사 이후 10여 년. 온 세상의 사람들이 '사는 곳'을 '사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만들어낸 이 괴물 같은 범죄가 벌어진 지 10년 동안 반성과 고민과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11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열린 ‘을지OB베어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을지오비베어 공동대책위원회원들이 만선호프 측에 을지OB베어와의 상생을 촉구하는 내용의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2.5.11 ⓒ 연합뉴스

 
얼마 전 누군가에게 '토지와 공간을 부동산으로만 이해해선 안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가 오히려 "그게 왜 다르냐?"는 반문을 받았다. 그 반문이 오히려 악의적이지 않고 순수했기 때문에 더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서울시는 몇 해 전 서대문과 독립문 일대의 옥바라지 골목 재개발과 관련해 오래된 골목을 재개발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철거를 막겠다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더니 지금 그곳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살던 사람들은, 거기서 생계를 유지해오던 공동체는, 좁은 골목과 낡은 건물들에 올올이 박혀 있던 역사와 기억과 문화는 사라졌다.

철거. 철거는 그저 건물을 부수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쫓겨남, 삭제, 소외, 박멸. 이런 것들이 내재된 단어다. 삶을 철거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공간. 공간에 종속된 사람들의 삶과 기억에 대해서도 다시 사유해야 한다. 그것이 경제적 이익이라는 가시화된 가치보다 정말 하찮은 것인지에 대해, 공간의 가치는 오직 가시화된 경제적 이문으로만 외화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부동산과 토건 자본의 이익만을 경제 효과로 인식하는 천박한 인식을 톺아볼 수 있어야 한다. 소득과 이윤은 창출되지만 삶과 문화와 생태계는 창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생성'되는 것이다. 삶이 켜켜이 쌓여 문화가 될 것이고 문화가 엮여 역사가 된다.

을지면옥이 사라지고, 을지OB베어가 사라지고, 동원집과 원조녹두가 사라져도 난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고 냉면을 먹고 있을 것이다. 또 새로운 공간에 기억을 쌓고 시간을 남길 것이다. 하지만 을지로에 쌓았던 그 기억들은 공간과 함께 증발해 버릴 것이다.

그것이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슬픈 것은 이렇게 기억의 철거가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라면 새롭게 쌓아둔 것들도 어쩌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이다. 슬픈 것은 그것이다. 기억을 철거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세계에 살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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