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신은미씨의 첫 방북 계기는 단순한 여행이었다. 미국의 한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북한 여행 상품을 알게 된 남편 정태일씨는 신은미씨에게 달나라에 가는 것보다 더 특별한 여행이 될 것 같은 북한 여행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북한 방문이 내키지 않았던 신은미씨는 반신반의하면서 떠난 북한 여행에서 큰 감흥을 받게 됐다.

신은미씨는 이후 <오마이뉴스>에 자신이 북한 여행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이름으로 연재해 큰 반향을 얻기도 했다. 연재 시리즈 인기에 힘입어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문화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지만, 2년 후 종북논란에 휩싸이면서 '선정 철회'라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문체부 우수문화도서 선정에 이어 통일부 홍보 영상에 등장하는 등 '통일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신은미씨는 그 여세에 힘입어 지난 2014년, 황선 현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와 함께 '통일 토크 콘서트'를 개최했다. 하지만 신은미씨는 몇몇 종편 언론에서 '신은미씨가 토크 콘서트에서 북한 체제를 찬양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뒤 하루아침에 '통일의 아이콘'에서 '종북 빨갱이'로 낙인찍힌다.

토크콘서트에서 북한 체제 찬양했다?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 상영작 <앨리스 죽이기>(2017) 한 장면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 상영작 <앨리스 죽이기>(2017) 한 장면 ⓒ 다큐창작소


김상규 감독의 영화 <앨리스 죽이기>(2017)는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였던 신은미씨를 밀착 취재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의 시작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미국의 자택에서 피아노 치며 노래를 부르는 신은미씨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노래하는 모습에서 짐작하겠지만 신은미씨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한때 대학 강단에 선 적도 있다. 그녀의 인터뷰처럼 평생 음악만 하고 살 것 같았던 신은미씨가 난데없는 이데올로기 논쟁에 휘말린 것은 우연한 기회에 다녀온 북한 여행 때문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독실한 기독교 신자 신은미씨는 북한 여행 전까지만 해도 보수 성향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TV조선, 채널A를 위시한 종편과 보수 단체들은 신은미씨가 북한 체제를 찬양했다며 종북 인사로 몰아 붙였고, 이들로 인해 촉발된 신은미씨 관련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그렇다면, 신은미씨는 진짜 일부 종편 보도와 보수 단체의 말마따나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 찬양했을까. 훗날 법원이 내린 판결처럼 신은미씨는 황선과 함께한 통일 토크 콘서트에서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이적 행위를 하지 않았다. 종편에 의해서 논란이 된 신은미씨의 토크 콘서트 발언은 "대동강 물이 깨끗하다.", "(여행 중 만났던)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정도다. 신은미씨는 숱한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이 여행 중 경험한 북한이 북한의 전부인 것처럼 말한 적이 없으며, 북한 사회의 일부일 뿐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신은미씨의 애초 의도와 달리 그녀의 발언은 종편 보도에 의해 왜곡되어 퍼졌고,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2015년 검찰의 강제 출국 요청에 따라 대한민국을 떠나야 했다. 영화는 종북으로 몰려 수난을 당했던 신은미씨의 지난 행보와 그것을 부추긴 종편 보도를 교차 편집하며 그녀가 종편의 보도대로 북한의 체제를 옹호하는 종북 인사인지 그 진위를 파헤치고자 한다.

한 사람을 '종북'으로 몰아간 움직임 그 뒤에는...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 상영작 <앨리스 죽이기>(2017) 한 장면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 상영작 <앨리스 죽이기>(2017) 한 장면 ⓒ 다큐창작소


<앨리스 죽이기>는 일방적으로 신은미씨의 편만 들기 보다, 신은미씨를 종북 인사로 규정 했던 종편 보도와 이에 대한 반박 자료를 충실히 제시하며 종북 딱지에 가려진 진실을 찾고자 한다. 영화적 재미도 상당하다. 종편 방송사들이 황선의 북한의 세 쌍둥이 우대 정책 발언을 종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황선이 언급한 북한의 세 쌍둥이 관련 내용은 이미 북한 이탈 여성들이 출연하는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등장한 에피소드였다는 사실에 관객들은 실소를 터트린다.

종북 인사로 몰린 신은미를 밀착 취재하며 그녀의 행보를 따라가는 <앨리스 죽이기>의 목표는 명확해 보인다. <앨리스 죽이기>는 종북으로 몰려 고초를 당했던 신은미씨를 통해 그녀의 발언을 왜곡해 종북 인사로 몰고 간 종편 보도, 종편이 교묘하게 이용한 종북 포비아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북한 여행기를 책으로 출간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던 신은미씨가 종북 인사라면, 신은미씨의 책을 우수문화도서로 선정하고 통일부 홍보 영상에도 출연시켰던 박근혜 정부 또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영화의 증거 화면으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신은미씨보다 더 북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쪽은 북한 이탈 여성들이 우르르 등장하는 종편 토크쇼다.

이처럼 신은미씨를 종북으로 몰아간 움직임에는 수많은 오류와 일종의 자기기만이 섞여 있다. 신은미씨를 일방적으로 두둔하기보다 절제와 거리두기 시선이 돋보이는 <앨리스 죽이기>는 '종북 포비아' 같은 분노와 혐오를 부추기는 언론, 국민/비국민을 분리하며 성립해온 반공국가,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한민국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웰메이드 블랙코미디 영화다.

신은미씨의 행보를 다룬 영화 <앨리스 죽이기>는 오는 29일까지 서울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열리는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 상영작으로, 28일 한 차례 더 상영을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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