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 이소정, 조희정, 이아미 작가(위부터)가 1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MBC 이소정, 조희정, 이아미 작가(위부터)가 1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 PD수첩>에서 작가로 일한다는 건 정말 뿌듯한 일이었다. 자랑스러운 일이었고. < PD수첩>에서 뭔가를 하면 세상이 조금씩 변했다. 사회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 변화의 한 걸음에 < PD수첩>이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시사교양 작가로서 20년. 이아미 작가에게도 < PD수첩>은 특별한 프로그램이었다.

"'황우석 사태' 때도 많은 국민들이 < PD수첩>을 반대하지 않았나. 그 와중에 소수가 촛불을 들고 지킨다고 했던 그 < PD수첩>이란 말이다. 우리는 진실이라면 단 한 번도 굴복해본 적이 없다는 자존심 같은 것이 있다. 지금은, 정말 부끄럽다." (이아미 작가)

상황은 달라졌다. 이아미 작가는 억울한 사연을 갖고 < PD수첩>을 찾아온 취재원에게 "'(< PD수첩 >에서 못 다루니) <그것이 알고 싶다> 가세요'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라며 씁쓸해 했다.

"MBC라 미안했다"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 '한때' < PD수첩>을 지탱했던 문구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오래지 않아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 PD수첩>은 가능할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어요"라는 말이 "< PD수첩>은 못 할 것 같다"는 말로 변해갔다.

가시 돋힌 말이 칼이 돼 날아왔다. < PD수첩>에서 취재(막내)작가를 겪고 다시 < PD수첩>에서 메인작가 일을 하고 있었던 이소정 작가는 "이건 내가 알던 < PD수첩>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막내작가들이 '언니 MBC라서 (취재가) 안 된대요'라고 말을 하더라. 대체 이게 뭐지? 싶었다. 이정도일줄 몰랐다." 자신의 얼굴이 MBC 로고와 함께 나가는 걸 원치 않는 이도, 전화조차 받지 않는 이도 있었다.

 MBC <PD수첩> 이아미 메인작가가 1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아미 작가 "처음에 피디들이 제작 중단을 한다고 했을 때 우리끼리 농담 삼아 다른 피디들을 투입해 방송을 다시 만들 움직임을 보이면 우리도 멋있게 '싫어요'라고 박차고 나와서 기자회견도 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우리를 전혀 멋있게 만들 기회를 주지 않았다. 떨어져 나가길 바라는 건가 싶었지." (웃음) ⓒ 이정민


이유는 단 하나였다. MBC라서. < PD수첩>이라서. 'MBC라서, < PD수첩 >이라서' 가능했던 아이템들은 김재철 사장으로 바뀌면서 순식간에 'MBC라서, < PD수첩>이라서' 불가능하게 됐다. 제보를 하기 위해 < PD수첩>을 찾는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한 순간에 다 무너졌다"고 이아미 작가는 말한다.

전화기 너머 인터뷰를 거절하는 상대를 두고 작가들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MBC라서 죄송합니다." 작가들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많은 국민들이 해방감을 느꼈던 촛불 집회 현장에서도 이들은 이방인이었다. 촛불 집회 현장에 나가도 MBC는 언제나 조롱의 대상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담아 보고자 현장에 간 사람들인데 되게 괴로워하고 힘들어했다. 'MBC라 미안하다'는 걸 그때 느꼈다. 막내작가들에게도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 PD수첩>이어서 할 수 있는 게 많았는데 너희들도 그걸 느껴야 했는데 (못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소정 작가)

그들을 반긴 유일한 취재원은 '탄기국(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이었다.

"'탄기국' 쪽 취재를 하는데 그렇게 좋아하더라. MBC에서 오면 인터뷰도 다 해주고 그랬다. '그림'은 건졌는데 이걸 좋아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다. 윗선에서는 'JTBC에서도 못 찍는 '탄기국' 천막을 우리가 찍었다'고 좋아했지.(웃음)"

정권이 바뀌었지만

촛불이 일고 급기야 정국이 뒤집어졌지만 < PD수첩>은 변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 아래서도 위안부 같은 '민감한' 아이템을 MBC 사측은 여전히 허락하지 않았다. '<백분토론>이 해서' '<시사매거진2580>이 다뤄서'라면서 < PD수첩>이 민감한 아이템을 다루지 못하게 했다. 윗선은 '박근혜 대통령'이라 언급한 제목에 '박근혜'라는 말을 빼라는 세밀한 지시를 행했다. 심상정 의원이나 표창원 의원의 인터뷰가 빠졌다. 극우적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게시판의 반응을 취합하라는 명령도 나왔다. 

 MBC <PD수첩> 조희정 작가가 1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희정 작가 "내가 막내작가였을 때, 최승호 부장이 당시 메인피디였다. 그때 < PD수첩 >은 작가들이 누구나 가고 싶어 하지만 감히 아무나 갈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성역이 없는 < PD수첩 >'이라 말하지 않나. 그걸 최승호 피디에게 배웠다." ⓒ 이정민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민주노총 한상균 아이템을 두고 사측은 "자신들이 소속된 언론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 동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방송을 한다는 것은 방송 규정 위반"이라고 대응했다. < PD수첩> 피디들이 먼저 성명서를 내고 제작중단을 선언했다.

"차라리 '시청률이 안 나올 것 같으니 하지마'라든지 '얼마 전에 했던 아이템과 너무 비슷한 거 아니야?'라고 했으면 모르겠다. 그런데 '민주노총 청부 아이템'이라거나 '너희 민노총 소속이잖아 너희 수장을 다루겠다는 거야?'라고 말하니까 중단 사태까지 오게 된 거다." (조희정 작가)

지난 2일 작가들도 성명서를 냈다. '< PD수첩> 작가들이 요구합니다. 다시 < PD수첩>이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 PD수첩> 작가들 전원은 "다시 우리는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로서 글을 쓰고 싶다"고 외쳤다.

밥줄을 건 성명서였다. 프로그램이 결방되면 작가들은 월급을 받을 수 없게 된다. 12명의 < PD수첩> 작가들이 모두 모여 비밀 투표를 진행했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릴 것인지를 논의했다. 취재와 섭외의 최일선에서 모든 걸 느낀 작가들의 부끄러움이 임계치에 다다른 걸까.

"단 한 명이라도 반대를 하는 친구가 있으면 하지 말자고 했다. 그런데 한 명도 빠짐없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나섰다." (조희정 작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소정 작가)

"사실 취재를 못 했던 시절보다 제작중단을 한 지금이 더 마음이 편하다. (웃음) 우리가 '언론 정상화'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좋고 작가들도 자긍심을 느낀다고 하니까." (이소정 작가)

MBC는 "제작거부라는 불법적 집단 행동을 하고 있는 < PD수첩> 일부 제작진에 대해 다시 한 번 권고한다. 즉각 업무에 복귀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잘 조명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프로그램 제작에 임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무시무시한 경고였다.

어떤 아이템 하고 싶냐고?

MBC와 KBS는 총파업을 앞두고 있다. '정상화가 빨리 돼야할 텐데'라는 우려 섞인 반응에 이아미 작가는 딱 잘라 "빨리는 안 된다"라고 답했다. 20년차 시사교양 작가다운 현실 인식이었다.

"사장이 바뀌면 좋아지긴 하겠지만 사장이 바뀌는 게 문제가 아니라 < PD수첩>이 다시 정상화 돼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아이템이 나가는 '그 순간'이 정상화라고 생각한다. '< PD수첩>으로 이름 걸고 다시 시작합니다'라고 말하는. 이게 우리의 '정상화다." (이소정 작가)

 MBC <PD수첩> 이소정 작가가 1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소정 작가 "누가 정권을 잡았느냐와 상관없이 성역 없는 아이템을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인 거지. 정작 진짜 해야 하는 아이템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의 < PD수첩 >을 예전에 그 < PD수첩 >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다. 성역이 생겼으니까. 진실을 파헤칠 힘이 없으니까." ⓒ 이정민


'정상화가 되는 그날 하고 싶은 아이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작가들의 얼굴에 잠시 웃음이 스쳤다. 이아미 작가는 '세월호'를 말했다.

"지난 몇 년 간 세월호 참사는 시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한 편에 있었던 아이템이다. 아이템이라고 하기에도 참. < PD수첩>을 되게 오래 했기 때문에 그만 둬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세월호'를 꼭 한 번 다뤄보고 싶었다.

팀장이 바뀌면서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를 한 번 다뤘고 대본 마지막에 그렇게 썼다. '국가가 무엇을 했는가. 그 근본적인 질문부터 다시 시작이다'라고. 그 '시작'에는 < PD수첩>이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이 세월호 방송을 하는 것으로부터 < PD수첩>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다짐이 있었다.

그리고 정상화 된다면 우선 언론부터 반성문을 써야한다. 광우병도 < PD수첩>에서 다시 한 번 하고 싶다. 아니면 이명박 10부작 같은 건 어떨까? (웃음) 그렇게 다시 한 번 시작을 해봤으면 좋겠다. 잘 해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하에서 < PD수첩>을 하면서 시스템이 잘 돼 있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MBC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걸 보면서 '시스템보다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는 그만큼의 저력이 있기 때문에 비제작부서에 계신 분들의 힘들이 다시 모이면 놀라울 만큼 빨리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MBC PD-기자 제작거부 선언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PD수첩’ ‘시사매거진2580’ ‘경제매거진 M’ ‘생방송 오늘 아침’ ‘생방송 오늘 저녁’을 제작하는 시사제작국 소속 PD와 기자 32명이 제작 중단을 선언하며 김장겸 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조창호 시사제작국장 사퇴와 PD수첩 이영백 PD 대기발령 철회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그동안 ‘세월호’ ‘4대강’ ‘국정원’이 금기어가 되었고, 세월호 참사 직후 프로그램에서는 유가족들이 우는 장면을 빼라는 지시를 받는 등 언론사가 지켜야할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왔다고 밝혔다.

▲ MBC PD-기자 제작거부 선언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PD수첩’ ‘시사매거진2580’ ‘경제매거진 M’ ‘생방송 오늘 아침’ ‘생방송 오늘 저녁’을 제작하는 시사제작국 소속 PD와 기자 32명이 제작 중단을 선언하며 김장겸 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조창호 시사제작국장 사퇴와 PD수첩 이영백 PD 대기발령 철회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그동안 ‘세월호’ ‘4대강’ ‘국정원’이 금기어가 되었고, 세월호 참사 직후 프로그램에서는 유가족들이 우는 장면을 빼라는 지시를 받는 등 언론사가 지켜야할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왔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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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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