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실제 나이와 외모가 거꾸로 가는 판타지를 가미해 벤자민 버튼이라는 극 중 인물의 일생을 다룬 영화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어려지는 신선한 발상으로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영화다.

KBO에도 그런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야구를 잘하고 있는 박경수다. 박경수는 6일 기준으로 .302의 타율에 6홈런 18타점으로 kt타선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실패한 유망주'로 남는 듯했으나...

 LG시절 박경수

LG시절 박경수 ⓒ LG트윈스


고교시절 박경수에 대한 기대는 엄청났다. 성남고의 천재 유격수로 불린 박경수는 김재박-유지현의 LG 유격수 계보를 이을 후계자로 지목받았고, 4억 3천만원이라는 거액을 받으며 LG에 1차지명으로 입단했다.

프로 첫 해 84경기에 나와 .273의 타율에 19타점을 기록하며 기대할만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LG에서 10시즌 동안 933경기에 나서 .241의 타율과 43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014년 군 전역 이후에도 .228의 타율을 기록하며 LG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실망스럽게 보냈다.

잦은 수비 포지션의 이동과 잔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거듭되는 부진과 '만년 유망주'라는 수식어에 스스로 부담마저 느끼며 부진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도무지 바람 잘 날이 없어 보였던 박경수는 그저 실패한 유망주 중 하나로 남는 듯했다.

kt에서 거꾸로 가는 시계를 찾은 박경수

 시계를 찾은 박경수

시계를 찾은 박경수 ⓒ kt위즈


kt와 4년 18억 2000만원 FA계약을 맺은 박경수. 신생구단 kt의 선수 모으기식 영입으로 비춰졌으나 거대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31살의 나이에 고교시절 '천재 타자'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인생의 시작이었던 게토 씨의 역전시계를 찾은 것 마냥 말이다. 시계를 찾은 박경수는 2015년부터 거침없는 질주를 시작한다.

2015년 .284의 타율에 22홈런 73타점을 거두며 개인 첫 시즌 100안타와 두자릿 수 홈런을 기록한 박경수는 2016년 클린업에 자리 잡으며 .313의 타율에 20홈런 80타점을 기록한다. 개인 첫 3할 타율 달성과 2년 연속 20홈런을 거둔 시즌이었다. 30대가 지나 전성기에 내려올 나이이지만 오히려 이전 시즌보다 발전하며 기량은 더욱 젊어졌다. 2년 연속 토종 2루수 20홈런은 KBO 역대 최초의 기록. 이견의 여지가 없는 성적에 첫 골든글러브 수상도 기대됐으나, 서건창에게 밀리며 발전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고군분투하는 현재, 주장의 올바른 길

 주장을 맡고 있는 박경수

주장을 맡고 있는 박경수 ⓒ kt위즈


시즌 초반 1위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킨 kt. 그러나 타격 난조와 젊은 선발진들이 잇따라 무너지며 승패마진이 마이너스로 바뀌었다. 특히 팀 타율은 .233에 그치고 있어(6일 기준) 상승세로 도약하는 데 크게 발목을 잡고 있다.

2년 째 주장을 맡고 있는 박경수는 홀로 타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302의 타율로 팀 내 유일한 규정타석 3할 타자인 박경수는 홈런, 타점, 득점, 출루율, 장타율 등 대부분의 공격 지표에서 팀을 리드하고 있다. kt 타선에서 박경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지난 26일 NC전에서는 완패 분위기에서도 홈런 2방을 때리며 팀의 모든 타점을 올리기도 했다.

실력에서도 모범을 보이고 있으나 팀 내 분위기 조율도 잘하고 있는 주장이다. 지난 18일 완봉패 후 선수단 미팅을 몸소 열어 독려로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했으나 언론을 통해 '심우준은 최고의 내야수가 될 것이다'라며 후배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타 팀에 비해 경기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적절하게 아우르면서 김진욱 감독의 신임을 받고 있다. 김진욱 감독은 "주장 박경수가 적극적으로 어린 선수들에게 다가가며 의기투합하고 있어 계획한대로 나갈 수 있었다"며 흡족한 의사를 표했다.

1984년 생으로 한국 나이로 34살을 맞이한 박경수. 노장에 접어든 나이지만 숫자에 반하는 활약으로 팀의 주춧돌이 되고 있다. 천재 타자의 모습을 어김없이 발휘하고 있는 박경수의 시계는 여전히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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