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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통일 토크콘서트로 정부·언론 '종북몰이'의 중심에 서게 돼 강제출국당한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가 자신이 한국에서 직접 겪은 일을 정리해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우울한' 새해, 2015년이 밝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잡혀있어야 한단 말인가. 나도 개인적인 생활이란 게 있는 사람이고, 집에 아이들이 있고 살림을 하는 주부다. 문득, 어서 빨리 나를 재판에 회부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법정에 서서 사실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을 받고 싶다.

출국정지가 해제돼 집에 돌아가 엄마를 걱정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자비를 들여서라도 재판이 있을 때마다 한국에 올 것이다.

내가 머무는 곳을 아는 독자들이 새해 선물을 보내 위로한다. 강릉에서 온 산 문어, 섬진강에서 온 돌게장, 울산에서 온 과메기, 완도에서 온 미역·김 그리고 굴, 소래에서 온 꽃게장·명란젓·창난젓, 임진강에서 온 자연산 민물장어 등들. 한 입 한 입 넣을 때마다 눈물이 복받쳐 오른다. 한국에 통일을 염원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생각에 다시금 힘을 얻는다.

우리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준 부부께서 남편이 좋아하는 민물고기 매운탕을 먹으러 가잔다. 나는 얼굴을 머플러로 가리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따라나섰다. 강변의 허름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주인이 손수 잡은 민물고기들이 수조에 담겨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이 수조를 들여다보면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내게 물고기 이름을 하나하나 가르쳐준다. 메기, 구구리, 미꾸라지, 참게, 뱀장어, 붕어….

민물새우로 우려낸 매운탕 국물이 정말 시원하다. 첫 북한여행 중 원산에서 먹었던 가물치 매운탕 국물이 생각난다. '남이나 북이나 우리의 입맛이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생각을 하니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2011년 10월 원산의 한 식당에서.
 2011년 10월 원산의 한 식당에서.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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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우리는 파주로 향했다. 도로 양옆으로 드리워진 철조망이 눈에 들어온다. 북한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게다. 도착한 곳의 동네 이름이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곳에는 서양식 카페들이 참 많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휴전선 바로 너머에는 우리 식을 고집하고, 바로 그 아래는 서구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둘이 조화를 이뤄 문화발전을 이룩하면 좋겠다. 아시아에 그런 나라가 하나 있다. 아쉽게도 바로 일본이다.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다. 여전히 나에 대한 '중계방송'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나를 검찰에 송치할 것이며, 검찰은 기소유예 후 강제출국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소(indict)' '불기소(dismiss)'는 알겠는데 '기소유예'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나저나 아직 검찰에 송치도 안 됐는데 언론은 '기소유예 후 강제출국 시킬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한국 언론은 검·경의 속내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만도 못한 검찰

'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인 재미동포 신은미 시민기자. 사진은 지난 1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인 재미동포 신은미 시민기자. 사진은 지난 1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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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보도한 대로 나는 검찰의 소환을 받고 2015년 1월 7일 출두했다. 내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나타나자 건물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마이크를 들이민다. 나는 기자들에게 마음에 있는 말을 모두 토해내고 청사로 들어섰다.

검찰청 조사실에는 속기사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검사 두 사람이 교대로 질문을 하고 밖에서는 부장검사라는 분이 지휘를 하고 있는 듯했다. 경찰에게 받았던 질문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한심한' 질문들을 반복해서 듣는다. 강연 그리고 책과 연재 기사에 나오는 '대동강 맥주' '휴대전화' '북한의 강물' 등등. 참다못한 나는 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금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 때문에 이 자리에 오게 됐는데 검사님 역시 똑같이 왜곡된 질문을 하시니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실망이고 당황스럽네요. 훌륭하신 분들께서 죄를 캐내시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하시네요. 정말 애쓰십니다."

이번엔 내가 강연장에서 부른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북한 노래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아느냐" "지도자를 찬양하는 이런 노래의 배경 정도는 알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 "심장에 남는 이가…" 검사는 숨도 안 쉬고 장황하게 질문을 던졌다.

2012년 4월 평양에서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부르는 신은미 시민기자.
 2012년 4월 평양에서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부르는 신은미 시민기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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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사에게 "이 노래는 한국의 많은 가수들도 부르고, 또 음반에 수록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검사의 대답, 속된 말로 '돌아버릴' 지경이다.

"같은 노래라도 듣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해 '관객의 질에 따라 노래의 질이 달라진다'는 분석이다. 세상에 그렇게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합격한 수재들이 음악에 대해서는 이처럼 무지할 수 있을까.

나는 되레 그 반대라고 설명해줬다. 노래나 연주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연주자가 곡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감정과 기법으로 연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덧붙여 "강연장(토크 콘서트)을 찾은 사람들 중에는 어린아이도 있고, 학생들도 있고, 가정주부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는데 검사께서는 그들을 모두 '빨갱이'로 몰아가고 싶으신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검사의 논리에 따르면 예전 평양에 방문해 '원조 빨갱이들' 앞에서 공연한 한국 가수들의 한국 노래는 모두 '이적 노래'가 되고 만다.

검찰은 경찰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것이라는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비록 경찰이 '질긴놈'이라는 아이디로 소환장을 보냈다 할지라도 수사 수준은 검찰보다 나은 듯했다. 적어도 경찰은 "노래란 듣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무지한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경찰이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 경험에 비춰 보니,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 줘도 별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문체부와 통일부도 기소하셔야죠"... 대답 없는 검사

검사는 내게 "왜 북한의 인권문제라든가 또는 3대 세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냐"라고 물었다. 나는 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검사님은 외국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인권문제 같은 걸 알아보러 다니시나요? 저는 북한 문제 전문가나 학자로 북한을 연구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관광하러 간 거예요.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 와서 쪽방촌을 찾아다니고, 감옥이나 구경하고, 집회 장소에 찾아가 인권 유린 문제를 파악하고 다니나요?"

검사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어 검사는 '신은미씨가 종북인사 황선씨에게 이용당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즉, '당신의 의도는 그게 아닌데 황선씨에게 이용당했으니, 이를 인정하라'는 것 같다. 나는 단호히 반박했다.

"만일 주최 측이나 황선씨가 내게 어떤 특정한 발언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거나, 그래서  내가 그들이 부탁한 발언을 그대로 했다면 그들에게 이용당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어요. 나는 그들과 청중에게 북한에 대한 나의 관찰 내용과 내가 보고 느낀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오히려 제가 그들을 이용한 셈이 되지요."

그러자 검사는 "신은미씨는 북한에 이용당하고 있다, 게다가 신은미씨 스스로가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이 된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 사건을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검사에게 "북한에 빌미를 제공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한국의 언론이 아니냐"라고 답했다.

나아가 나는 검사에게 "나를 이용한 것은 황선도 아니요, 북한도 아니다, 정작 나를 이용한 것은 한국 정부다"라고 말했다.

"한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제 책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해 전국 공공도서관에 비치했지요. 게다가 통일부는 나를 다큐멘터리에 출연시켰고요. 통일 홍보 목적으로요. 그러더니 이제는 언론을 동원해 절 '종북몰이' 하고 있잖아요. 나를 기소하려면, 문체부와 통일부도 함께 기소하셔야죠."

검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행기에 대한 북한의 반응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북한 주민들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북한 주민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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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와서 '종북몰이'를 당하면서 검·경 수사를 받고 있자니 내 책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생각난다. 내가 기행문에서 언급했듯이, 사실 북한도 내 기행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나는 기행문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과 남한 박정희 대통령을 함께 거론했다.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 궁전을 방문했을 때, 그곳을 찾은 북한 주민들의 표정 속에서 나는 그들이 김일성 주석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일성 주석의 서거 당시 북한 주민들의 오열을 거짓으로만 생각했던 나는 그들의 슬픔이 진실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책에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많은 국민들이 통곡하지 않았던가"라면서 북한 주민들의 오열도 사실일 것이라고 써놨다. 바로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어떻게 김일성 주석을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을 토벌하던 박정희 대통령과 비교할 수가 있느냐"라는 반응이 나왔다.

솔직히 이는 북한의 관점에서 볼 때 큰 '불경'을 저지른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유신시대 당시 남한에서도 어떤 여성 통일운동가가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을 비교했다고 해서 징역살이를 하지 않았는가.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책 속에서 북한을 "가난한 나라"라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의 서문과 본문에 "내게 북한은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라고 답하곤 한다"라고 써놨다. 이것이 문제가 됐다. "북의 인민들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왜 당신은 가난하다고 평가하느냐"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내가 수양딸 설경이의 집 방문을 부탁하려고 북한 '해외동포위원회' 부국장이라는 분을 만났을 때였다, 그는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를 지적했다. 그러나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지나가는 이야기로 할 정도였다. "신 선생이 남쪽에서 태어나 자랐고, 또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이해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지금 내가 검·경의 수사를 받으면서 이 난리를 겪고 있자니, 대체 한국은 정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맞긴 한 건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검찰의 회유... "미안하다, 유감이다, 못하겠나?"

한 검찰 관계자가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오가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가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오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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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내게 "'물의를 일으켜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냐"라고 물었다. 내가 거부하자 이번에는 조금 수위를 낮춰 "'물의를 일으켜 유감이다'고 표명할 수 있지 않겠냐"라고 재차 묻는다. 나는 거꾸로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로 내가 이런 곤란을 겪었으니 참으로 유감입니다"라고 맞받아쳤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와 마녀사냥식 '종북몰이'로 엄청난 고통을 입었고, 사제 폭발물 테러로 생명까지 잃을 뻔한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라니…. 이 나라에 정의라는 게 있긴 한 걸까.

검사는 마지막으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나는 검사에게 "혹시 시간이 나시면 제 책을 한 번 읽어보시라"고 부탁했다. 시간이 없다면 서문만이라도. 죄를 캐내기 위해 읽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봐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꼭 한 번 북한을 방문해보시라"면서 "그러면 제가 책을 통해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가 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장검사라는 분은 내게 "신 선생님이 의도한 것과는 달리, 사람에게는 이따금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라면서 "모국에서 있었던 일은 훌훌 털어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시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리고 나와 장시간 사투를 벌이며 조사를 벌였던 한 검사는 내게 "혹시 미국에 가게 되면 신 선생님 댁을 방문해도 좋습니까? LA 갈비라도 구워주실래요?"라고 농담도 던졌다.

이 검사 농담이 사뭇 미국 스타일이다. 훌륭한 농담이며 여담이다. 검사와 무고한 시민과의 관계는 이래야 한다. 나는 "그럼요, 언제든지 오세요"라고 답례했다. 그리곤 마음속으로 '꼭 오시라, 정원에서 멋진 파티를 열어 드리겠다'라고 속삭였다.

장시간 조사를 마치고 속기록을 점검하는 시간. 경찰조사 때보다 속기록 두께가 훨씬 더 두꺼워 보인다. 이 과정 역시 몇 시간 소요됐다. 나는 오전 3시가 넘어서야 검찰청을 떠날 수 있었다.

나는 검사들이 비합리적으로 비이성적이라서 조사 중에 그런 '한심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 역시 경찰과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에 의거해 위반사항을 캐내는, 그저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조사를 받는 동안 부장검사는 제일 아낀다는 차를 대접해주기도 하고, 수시로 다과를 내다줬다. 내 건강을 살펴준 검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신은미, #종북몰이, #통일, #북한, #토크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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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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