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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통일 토크콘서트로 정부·언론 '종북몰이'의 중심에 서게 돼 강제출국당한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가 자신이 한국에서 직접 겪은 일을 정리해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기사 수정: 10일 오후 5시 52분]

'기사수정' 관련해 알려드립니다

임수경 의원의 토크 콘서트 참석 관련해 필자와 임 의원 간에 주장이 일부 엇갈려 양측의 의견을 반영해 기사를 수정했습니다.

2011년 10월 태어나 처음으로 두려움과 호기심의 보따리를 싼 채 남편과 함께 북녘땅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나와 똑같은 인간사의 희로애락에 눈물짓고, 미소도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내 형제, 일란성 쌍둥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려움이 발동하기는커녕 낯설었던 형제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느끼고 돌아왔다.

북녘 동포들은 순박하고 인정 넘치며, 지혜롭고 성실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내 동포들은 분단의 아픔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 또한 우리 남녘의 사랑스러운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분단의 아픔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버겁게 살아가고 있는 내 형제요, 내 겨레였다.

북한 여행을 통해 나는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로운 통일을 염원하게 됐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인가. 동시에 조국이 분단돼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해야 했다. 나의 북한 여행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었다. 그 후, 북녘 동포들과 나눈 마음과 정을 내 사랑하는 모국 한국의 동포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나는 2012년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북한 여행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통일 조국은 남과 북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이 돼 누리고 살아갈 조국이므로, 그리고 조국의 통일은 보수-진보 관계없이 우리 한민족 모두의 사명이며 공의의 실현이므로, 나는 강연 주최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나를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흔쾌히 찾아갔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육체적·경제적 그리고 내 개인적 삶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 모국, 한국 방문 역시도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 돼버렸다.

토크 콘서트를 제안받다

평양의 아침, 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평양의 아침, 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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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께로 기억한다. '6·15 남측위원회'라는 단체로부터 "2014년 9월에 서울에 와서 '통일 토크콘서트'를 할 수 있겠느냐"라는 초청을 받았다. 나는 이 단체로부터 2014년 4월 초청을 받고 전국순회 강연을 한 적이 있어 승낙하고 싶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2014년 11·12월 한국에서 조카의 결혼, 조카 손녀의 돌잔치 등 집안 행사가 있었고, 또 11월 26일부터 12월 5일까지 북한에 갈 계획이었다. 평양에 있는 수양가족도 만날 겸 최근 개장했다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겨울 휴가를 보낼 생각이었다. 토크콘서트 주최 측에 "11월과 12월 사이라면 기꺼이 응하겠다"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후일 소위 '종북콘서트'라고 알려진 '통일 토크콘서트'에 참가하게 된 연유다.

기획 단계에서 주최 측은 나를 포함 세 사람이 토크콘서트를 하면 좋겠다고 알려왔다. 한 사람은 만난 적은 두어 번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 이로 이름은 황선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만난 적은 전혀 없지만 언론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현직 국회의원 임수경씨였다.

내가 임수경씨에 대해 처음 들은 때는 그녀가 북한에 불법 입국해 평양서 개최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해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1989년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학위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방북 뉴스를 듣고 보수적인 성향의 나는 그녀를 꽤나 싫어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민족과 통일에 관심을 두고 난 뒤부터는 임수경 의원을 존경하게 됐고, 한때 그녀를 증오했던 것을 떠올리며 스스로 낯을 붉히기도 했다.

주최 측은 '통일 토크콘서트'를 내 스케줄에 맞춰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남편과 나는 북한 비자 신청과 함께 비행기 일정을 잡았다. 로스앤젤레스→인천, 인천→심양, 심양→평양, 평양→북경, 북경→인천, 인천→로스앤젤레스의 복잡한 일정이었다.

나는 서울 친척들에게 줄 선물과 북한의 수양가족, 그중에서도 태어난 지 한 살이 된 수양손자 주의성(첫째 수양딸 김설경의 아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다니느라 매일 몇 시간씩을 백화점에서 보냈다. 그래도 북녘동포들에게는 한국산 제품이 쓰기가 좋겠지만, 혹시 평양 순안공항에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표를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수양손자 볼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왼쪽부터 수양딸 김설경, 수양손자 주의성, 수양사위 주혁남
 왼쪽부터 수양딸 김설경, 수양손자 주의성, 수양사위 주혁남
ⓒ 김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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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여행 준비를 하고 있던 중 '북한이 에볼라 전염을 막기 위해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의 입국을 불허한다'는 뜻밖의 뉴스를 들었다. 나는 뉴욕의 유엔본부에 있는 북한 대표부에 연락해 '혹시 예외적으로 (입국을) 허가해줄 수 없느냐'라고 부탁했지만 허사였다.

'부득이 평양에 가야 한다면 허락해주겠으나 평양 공항 도착 후 21일간 격리 수용된 뒤 이상이 없으면 입국을 허용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평양 출발 예정일인 2014년 11월 26일 전에 북한 입국 불허조치가 해제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준비를 계속했다.

그 사이 토크콘서트와 관련해 변경사항이 생겼다. 임수경 의원이 국회 일정 때문에 출연을 거절한 것이다. 나는 존경하는 임 의원과 함께하지 못하게 돼 무척 실망했다.

서울에서의 일정은 상당히 촘촘히 짜여 있었다. 내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로 한 날짜는 11월 19일이었는데, 조계사에서 열리는 첫 번째 토크콘서트가 같은 날 열릴 정도였다. 그만큼 일정이 빡빡했다.

내가 하는 북한 이야기는... 항상 같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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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흥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서울의 친척들 그리고 '통일 토크콘서트' 주최 측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를 흥분시킨 것은, 자주 보는 서울의 친척들이나  토크콘서트가 아니었다. 북한의 수양가족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서울에 도착한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 뒤 토크콘서트 장소인 조계사로 향했다. 2014년 4월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회를 본 사람이 바로 황선씨였다. 아마 그때가 황선씨를 두 번째로 만났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북한 이야기는 항상 같은 내용이다. 강연의 요지는 '남과 북의 동포들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으며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이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르며 이질감의 골은 얼마나 깊을까'라는 호기심을 갖고 첫 북한 여행을 한 뒤, 이질감은커녕 '이들은 어쩌면 우리와 이렇게 같을까'라고 느낀 내 경험을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다.

많은 청중들이 깜짝 놀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난 6~7년간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일부 언론사나 TV 방송이 내보내는 글·영상만을 접했기 때문이다. 북한 전역에는 시장의 진흙 바닥에서 강냉이 알을 주워 먹는 '꽃제비'가 들끓고, 북녘 동포들이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너다 총탄에 맞아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들. 여기에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탈북 동포들이 가세한다. 마치 북한의 동포들은 모두 굶주림에 시달리며 북한은 인간성이란 찾아보기 힘든 무지막지한 사회라고 '증언'한다. 북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말을 하니 남녘의 동포들은 울분을 터트린다.

북한에 대해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는 청중들이 '그것이 북한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단다

2014년 11월 19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렸던 '통일 토크콘서트' 홍보 웹자보
 2014년 11월 19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렸던 '통일 토크콘서트' 홍보 웹자보
ⓒ 6.15남측위 서울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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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9일 조계사에서 있었던 '통일 토크콘서트'도 평소에 내가 강연 중 하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동강 맥주 맛이 좋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녹조라떼'가 돼버린 남녘의 강물을 유머를 섞어 비유하며 "북녘에 흐르는 강물이 깨끗하다" 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임수경 의원이 깜짝 등장했다. 임 의원의 갑작스러운 출연에 청중들은 큰 박수로 환영했다.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첫 토크콘서트가 끝난 뒤 그 다음 날인지 아니면 이틀 뒤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발언했다는 자막과 함께 내 얼굴이 여러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 나오는 게 아닌가!

나에 대한 '마녀사냥'은 이렇게 시작됐다.

[편집자말] 임수경 의원은 통일 토크콘서트 참석 계기에 대해 지난 1월 15일 경찰 출석 당시 "공적인 일로 잠깐 조계사에 들렀다가 토크콘서트가 진행되는 걸 보고 참석했다"라고 밝혔다. 또 "행사 기획단계에서 (주최 측이) 출연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라고 밝혔다(관련기사 : 임수경 "정치적 공안몰이... 3년 전 일 소환 부적절").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태그:#신은미, #토크콘서트, #통일, #북한, #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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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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