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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통일 토크콘서트로 정부·언론 '종북몰이'의 중심에 서게 돼 강제출국당한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가 자신이 한국에서 직접 겪은 일을 정리해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지방 강연을 떠나기 앞서 내 기행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낸 출판사 네잎클로바의 사장님이 인사차 찾아주셨다. 위로의 말과 함께 좋은 소식도 전해준다.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단다.

일부 언론의 허위보도만 아니었다면 그저 몇백 명이 모인 장소에서 조용히 '그들만의 토크콘서트'로 끝날 일을 되레 더 널리 선전해준 셈이다. 내 북한 기행문이나 통일 토크콘서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사람들마저 관심을 보이면서 책을 구입한다는 게다.

이번 모국 방문의 원래 목적이었던 친정 조카 결혼식날이 밝았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갈 수 없었다. 물론 내가 결혼식장에 나타난다고 해서 가족이 나를 밀쳐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객들을 놀라게 하거나 당황하게 만들어 결혼식을 망쳐서는 안될 일 아닌가. 조카와의 지난날들을 되새기며 홀로 조용히 눈물만 흘릴 뿐이다.

"종북 신은미는 북한으로 가라!"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지난 12월 11일 오후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이 예정된 서울 정동 금속노조 사무실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지난 12월 11일 오후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이 예정된 서울 정동 금속노조 사무실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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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8일. 대전의 한 시민단체에서 나를 초대했다. 행사 중간에 내가 간단히 인사말을 하는 순서가 있었다. 1시간 전쯤 행사장에 도착하자 입구에는 벌써부터 보수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큰소리로 시위를 한다.

"종북 신은미는 북한으로 가라"는 소리가 내가 있는 커피숍까지 메아리친다. 북한은 누구든지 가서 살겠다고 하면 다 받아주는 그런 나라던가. 아니다. 가서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행사 시각이 임박해오자 주최 측 실무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허겁지겁 달려와 말문을 연다.

"선생님, 어쩌면 좋죠? 장소를 빌려준 건물 측에서 선생님께서 장소에 나타나시면 건물 전체에 전기를 끊겠다고 합니다. 지금 사정을 하고 있는 중인데…. 어쩌면 좋아요, 선생님…."
"아, 그렇군요. 제가 주연이 돼 열리는 행사도 아닌데…. 저 때문에 중요한 모임이 파탄 나면 안 되죠. 저는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가셔서 행사 잘 치르도록 하세요."

눈물이 글썽글썽한 주최 측 사람과 긴 포옹으로 아쉬움과 서글픈 심정을 나누고 씁쓸한 마음으로 자동차에 올랐다.

내 고향 대구 찾았지만, 나를 맞은 건 바로 시위대

신은미씨와 황선씨의 평화콘서트가 열린 지난해 12월 9일 오후 대구동성아트홀 입구. 보수단체 회원들이 막무가내로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해 힘으로 밀어붙이자 행사 주최 측이 이를 막고 있다.
 신은미씨와 황선씨의 평화콘서트가 열린 지난해 12월 9일 오후 대구동성아트홀 입구. 보수단체 회원들이 막무가내로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해 힘으로 밀어붙이자 행사 주최 측이 이를 막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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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9일, 나는 다음 토크콘서트를 위해 내 고향 대구로 향했다. 이곳에서 태어나 비록 6살 때까지밖에 살지 않았지만, 대구는 영원한 나의 고향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도착한 대구에서 나를 반겨준 것은 다름 아닌 시위대였다.

원래 강연은 경북대학교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북대는 대관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행히 동성아트홀이라는 한 독립영화관이 흔쾌히 대관을 승낙했다고 한다. 입구에는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소위 '보수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아수라장이다. 스피커에선 "기쁨조 신은미는 북한으로 가라"는 말이 나온다. 어떤 이는 스프레이에 불을 붙여 화염을 내뿜기도 한다. 툭 하면 물대포를 맞고 연행되는 노동자·농민들의 시위와 달리 이들 '보수단체' 시위대는 어디를 가나 보호를 잘 받는 모양새다. 겨우 강연장으로 들어갔다.

강연 전 기자회견을 마치고 극장 안에 들어오니 시간이 다 됐음에도 객석이 텅 비어있다. 사정을 알아보니 강연장 입구에서 입장을 방해하는 보수단체들의 행패 때문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단다. 이렇게 또 무산되나 생각하던 찰나,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줄지어 들어오더니 객석을 가득 메운다. 관객들이 '007 작전'을 방불케 하듯 극장 뒷문으로 순식간에 들어왔다고 전해 들었다.

'통일 토크콘서트'는 언론의 허위보도와 종북몰이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더욱 뜨거운 열기로 불타올랐다. 극장 측에 의하면 개장 이래 최다 관객이 입장했다고 한다. 모두가 한마음이 돼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만끽했다. 나는 북녘의 수양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뒤 북한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에 내 마음을 담아 '통일 토크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대구 강연 동영상 보러가기).

탈북자와의 만남... 눈물만 글썽

북한어린이돕기 평화콘서트가 열린 지난해 12월 9일 신은미씨와 황선씨가 대구동성아트홀에서 사전 기자회견을 갖고 콘서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북한어린이돕기 평화콘서트가 열린 지난해 12월 9일 신은미씨와 황선씨가 대구동성아트홀에서 사전 기자회견을 갖고 콘서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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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을 나와 뒤풀이 장소로 가는 도중에 운전하시던 분이 갑자기 차를 세운다. 우리가 미행당하고 있다고 한다. 승용차 한 대 그리고 택시 한 대가 우리를 미행했다. 차에서 내린 주최 측 사람들이 뒤따라오던 차량을 세우고 항의하면서 그들의 사진과 영상을 찍는다. 미행하던 차량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잠자고 있는 시늉만 한다.

뒤풀이 장소에 도착하니 많은 환영 인파로 앉을 자리조차 없다. 이분들 중 특히 내가 반가워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중년의 탈북자 남매분이었다. 오빠 되시는 분이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OOO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전해주시는 고향 소식을 가슴을 에는 듯한 감동으로 들었습니다. 북녘의 동포들에 대해 올바르게, 있는 그대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이번에 예정돼 있던 강연을 끝까지 마치고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것도 북에서 오신 여러분들의 격려 때문이었어요."

내 말이 끝나자 이분의 여동생이 내 손을 슬며시 잡는다. 서로 두 손을 맞잡은 채 아무런 말도 없이 일순간 눈물만 글썽인다. 비록 몸은 북한을 떠났지만 마음만은 고향에 두고 살아가는 분들일 게다.

뒤풀이를 마치고 남편과 나는 대구의 한 독자분 댁으로 갔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민단체도 이끌고 있는 이 독자는 "호텔은 위험하다"면서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너무나도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았고, 신세를 졌다.

내 고향 대구에서의 따뜻했던 시간을 보내고 전라북도 익산으로 향한다. 원래 통일 토크콘서트는 전주에서 하기로 돼 있었지만, 주최 측이 강연장 마련에 전전긍긍하자 원광대의 한 교수님께서 원광대에서 통일 토크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했단다.

하지만, 원광대마저도 문제가 생겼다. 대학 측에서 토크콘서트 개최를 반대한다는 것. 사회과학대 학장이신 그 교수님은 학장직 사표를 내면서까지 개최를 주장했다고 한다. 결국에는 익산의 한 성당이 강연장으로 결정됐다. 이토록 토크콘서트를 성사시키고자 혼신을 다한 분이 바로 '사제 폭발물 테러사건'으로 화상을 입은 원광대 정치외교학과 이재봉 교수님이다.

'불덩이'를 들고 걸어나오는 청년

지난해 12월 10일 한 고3 학생이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 현장에서 인화물질을 터트려 20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3명이 부상당했다. 사진은 인화물질 폭발 당시의 동영상 화면을 캡처한 것.
 지난해 12월 10일 한 고3 학생이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 현장에서 인화물질을 터트려 20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3명이 부상당했다. 사진은 인화물질 폭발 당시의 동영상 화면을 캡처한 것.
ⓒ 주권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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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이 있는 익산의 신동성당에 도착했다. 그곳에도 언론사 기자들이 있었고, 시위대가 강연장 입구를 막아섰다. 주최 측의 경호를 받으며 강연장에 들어섰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토크콘서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주최 측 스태프 한 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밖에 소방차가 와 있네"라는 말을 한다. 지금까지 모국에서 수십 차례 강연을 해봤지만 강연장에 소방차가 와서 대기하고 있는 건 처음이었다.

강연장이 꽉 차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자 주최 측은 벽으로 사용하던 접이식 칸막이를 밀어내고 강연장 바깥까지 의자를 배치했다. 의자도 연단 바로 앞까지 배치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3배나 많은 관객이 왔다고 한다.

강연이 시작되고 40~50분쯤 지났을 무렵, 앞에 앉은 한 청년이 질문을 하려는지 자리에서 일어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청년의 자리엔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던 기억이다. 그런데 청년이 질문을 하기 얼마 전, 그 중년 남성이 청년에게 좌석을 인계한 뒤 나간 것으로 기억한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청년이 내게 질문한다.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면서요?"
"네?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이 청년은 계속해서 내가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하지 않았냐"라며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스태프가 원만한 행사 진행을 위해 "나중에 기회를 드릴 테니 그때 질문을 하시라"며 그 청년을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불과 몇 분, 아니 몇십 초 지났을까…. 그 청년이 불덩이를 들고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음향을 담당하던 분이 그 청년을 향해 달려가 몸으로 불덩이를 막아냈다. 폭발물이 바닥에 떨어지며 화염을 일으키더니 장내는 불길과 함께 하얀 연기로 가득 찼다. 안갯속에 갇힌 듯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냄새도 심하다. 방향 감각을 잃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8시 20분께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씨의 토크 콘서트에서 고교 3년생 A군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가방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의해 제지됐다.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8시 20분께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씨의 토크 콘서트에서 고교 3년생 A군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가방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의해 제지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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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잃고 서 있던 나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강연장 뒤에 있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를 주방으로 피신시킨 분은 그날 초청가수로 출연한 백자라는 분이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몸을 숨기듯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몰래 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참 뒤 불에 탄 자국이 난 옷을 입고 나타난 남편과 함께 나는 사람들의 경호를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익산의 한 독자님 댁으로 갔다.

모든 사건들이 현실 속이 아닌, 뿌연 영화 속 슬로비디오 장면처럼 지나갔다. 폭발물을 몸으로 막은 분은 얼굴과 팔에 화상을 입고 입원했으며 토크콘서트를 주최하신 이재봉 교수님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됐다고 한다. 그리고 관객 중 몸이 불편해 잘 걷지 못하는 한 신부님은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구출될 때까지 유독가스를 마시곤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고 한다.

당일 관객이 너무 많아 강연장 칸막이 문을 모두 밀어 접어놨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사고가 발생할 뻔했다. 당시 그 성당은 구석에 작은 문이 하나밖에 없었다. 연기로 인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한국에서 북녘의 산하와 동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듣다가 폭발물 테러를 당할 수도 있다니…. 조국의 평화 통일은 아직 요원하다는 생각에 목이 메인다(익산 통일 토크콘서트 보러가기).

"어서 이 나라를 떠라나"... 공항에 갔더니 '출국금지'

익산에서 뜬눈으로 하룻밤을 보낸 나는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누군가가 미리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청년이 들어오자 자리를 내주고 사라졌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쿵쾅거리며 뛰고 있는 심장이 안정을 되찾지 못한다.

서울에 도착한 남편과 나는 미국 영사관으로 직행했다. 우리의 연락을 받은 로베르토 파워스(Roberto Powers) 영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영사에게 전날 강연장에서 있었던 폭발물 테러사건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만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영사는 이미 알고 있는 듯 우리에게 "어서 이 나라를 떠나라"고 조언한다.

원래 비행기표 예약이 다음날로 돼 있어 이날 자리가 있을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우리 자리는 비즈니스석이라 아마 좌석에 여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국서 올 때도 자리가 넉넉했으니까. 우리는 독자분께서 제공해주신 차량에 올라 영사의 지시대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라디오에서 "법무부는 신은미씨의 출국을 열흘간 중지했다"라는 뉴스가 나오는 게 아닌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출국정지를 당했다는데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아니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보통 외국인을 출국정지 시킬 경우 해당국 영사관에 통보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미 영사관에 확인해 보시죠. 저희도 여기저기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로베르토 파워스 영사에게 전화를 걸어 "대한민국 법무부로부터 에이미 정 (Amy Chung, 나의 법적 이름)의 출국금지를 통보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영사는 그런 일이 없다며 내게 '일단 출국을 시도하고, 안 되면 바로 전화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체크인을 위해 대한항공 카운터로 가서 여권을 제출했다. 항공사의 직원이 한참 모니터만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남편이 묻는다.

"좌석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좌석은 얼마든지 있는데…. 저…, 혹시 체류기간을 넘기시거나 하시진 않았나요?"
"아니요. 보시다시피 예정일보다 오히려 하루 빨리 출국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아…, 참, 그러시죠. 저…, 에이미 정 승객님께서 출국정지가 돼 있어서 법무부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가셔서 확인해보셔야겠습니다. 승객님."

우리는 공항의 출입국 관리소로 가서 나의 출국금지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출국금지가 내려졌을 경우 곧바로 전화하라'던 로베르토 파워스 영사에게 전화를 해봤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그날 온종일 우리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공항의 와이파이를 이용해 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하려 메일을 열었다. 그러자 '질긴놈'이라는 사람이 보낸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질긴놈? 누군가가 아직도 폭발물을 들고 '질기게' 나를 추적하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질긴놈'의 메일을 열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신은미, #통일, #토크콘서트, #종북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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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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