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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시곗바늘은 12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일까.

서열 중심의 대법관 후보 인선에 판사들이 집단 항의한 2003년 제4차 사법파동 때처럼, '대법관 구성 다양화'를 요구하는 법원 내부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송승용 수원지방법원 단독판사가 14일 늦은 밤 법원 내부전산망에 올린 한 편의 글이 법원 안팎의 긴장도를 높이고 있다. 그는 이날 신영철 대법관 후임으로 강민구 창원지법원장과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한위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를 꼽은 대법관 후보자추천위원회(위원장 김종인 가천대 석좌교수)의 결정을 비판했다.

그는 "대법원 구성 다양화는 근본적으로 소수자·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사법부의 역할 또는 사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추천 직전 일부 경력을 대법관 구성 다양화의 근거로 삼는 것은 외형적·표면적 다양화에 그칠 뿐"이라고 했다. 박상옥 원장은 2008년, 한위수 변호사는 2005년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각각 20년 넘게 검찰과 법원에서 일한 사람들이다. 결국 '눈 가리고 아웅' 아니냐는 지적이다(관련 기사 : 현직 판사 "대법관 후보 획일적, 다시 찾자" 공개비판).

딱 12년 전에도 이랬다.

법원 내부에서 터져 나온 항의... 12년 전의 데자뷔

 1월 14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신영철 대법관 후임으로 추천한 인물들. 왼쪽부터 강민구 창원지법원장,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한위수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1월 14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신영철 대법관 후임으로 추천한 인물들. 왼쪽부터 강민구 창원지법원장,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한위수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 대법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법무법인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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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환 전 대법관은 2003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시절, 대법관 임명방식에 항의하며 사표를 제출해 사법파동의 불을 지폈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대법원은 가치를 설정하는 문제를 두고 여러 의견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대법관 구성화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관련 기사 : "대법관이 승진자리인가... 사법부 전체 죽이는 일").

"3심은 정말 중요한 법률적 결정이다. 그 기능을 하려면 (대법관은) 기본을 갖춰야 하고 나름대로 철학이 있어야 한다. 또 다양한 입장과 안목을 가진 사람들과 두루 토론하면서 여론을 수혈받아 결정해 주는 기능을 해야 한다. 그래서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현재 제청 방식으로는 안 된다. 대법관은 관료적이면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릴 수 없다. 또  새로운 개성 있는 판결이 나오지 않아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고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순치된 법관이 될 것이다."

그 뒤 법원 내부전산망에 연판장을 돌린 이용구 당시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국민이 기대하는 대법관상과 대법원의 현실적 기능이 서로 조응하지 못한다"며 "이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대법원이고, 이를 위해서는 대법원이 국민의 신뢰 위에 서야 한다"고 했다(연판장 전문 : "지난 10년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길").

"이 같은 재판현실 때문에 업무능력이 뛰어난 대법관을 선호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국민의 신뢰에 값할 수 있는 대법원을 구성해야 합니다. 우리 법원은 지금 '대법원을 못 믿겠다'는 종래의 불신을 불식시키고 개혁의 주체로 나설 것이냐, 아니면 여전히 개혁의 대상을 남을 것인가를 선택할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2015년 벽두 대법원은 다시 비슷한 문제로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논란의 핵이었던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된 신영철 대법관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해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임명 당시부터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던 신영철 대법관은 퇴임을 맞아 물러나는 상황에서도 후임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는 '촛불재판 개입' 혐의로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됐을 당시인 2009년 3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는 신 대법관 모습이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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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대법관 구성을 둘러싼 논쟁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양 대법원장이 임명한 8명의 대법관만 보면, 박보영 대법관의 경우 임명 당시에는 변호사였다. 하지만 그도 십여 년간 법복을 입고 지낸 사람이다. 고영한·권순일·김소영·김신·김용덕·김창석·조희대 등 다른 대법관들은 전부 현직 판사였다. 2012년 8월 1일 김신·고영한·김창석 대법관의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보수 언론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마저 '법관 순혈주의'를 우려하는 사설을 실었다(<조선> 사설 보기, <중앙> 사설 보기).

신임 대법관에 더욱 눈길이 쏠리는 것은 '신영철 대법관 후임'이기 때문이다. 신 대법관은 누구보다 임명 당시 뜨거운 감자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참가자들 재판에 개입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대법관 임명 후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물론 소장 판사들과 법원 노조까지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는 결국 6년 임기를 채웠고, 이제 후임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임명될 때나 떠날 때나 신 대법관은 논란의 중심에 서는 셈이다.

신 대법관 논란은 사법부에게는 되도록 언급하고 싶은 않은 일일지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후임 인선이 법원의 신뢰 회복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송승용 판사 역시 이 대목을 언급하며 "대법원은 (이번) 제청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라는 가치를 구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송 판사가 12년 전처럼 항의 사표를 내거나 연판장을 돌린 것은 아니다. 그가 올린 글도 매우 절제되어 있고 예의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법원 바깥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

장윤석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대법관 절반을 판사가 아닌 법조인으로 임명하자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의안 원문 보기)을 대표 발의했다. 여기에는 국회의원 50%에 가까운 146명이 참여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소속 회원들을 상대로 대법관 구성과 심리방식 개선 의견을 물은 결과, 참가자 51%가 대법관 수를 늘려 상고심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관련 기사 : 대한변협 "51%가 상고법원보다 대법관 증원 선호").

이처럼 대법관 구성의 실질적 다양화에 대한 사회적 요청이 어느 때보다 높지만, 대법원의 응답은 '무늬만 다양화'라는 꼼수였다.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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