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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
ⓒ 오마이뉴스 유창재
지난 18년간 판사로 일해왔던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가 13일 대법관 임명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항의성 사표를 제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지법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박 판사는 "멋진 법원에서 멋진 판사를 하고 싶었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법관을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법관으로 일해오면서 보아왔던 '대법원의 개혁'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긍정적인 부분을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습에서, 또 앞으로 개선될 희망이 안보였고, 맥이 빠지면서 절망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면서 "사무치는 일이며, 응어리졌던 문제를 제기하는 측면에서도 사표를 제출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특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대법관 제청과 관련 "대법관은 '피라미드' 관료식 운영방식에서 승진의 마지막 단계로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이는 사법부 전체를 죽이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또 "대법관은 피라미드 승진단계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자유롭게 떨어져 있는 조직이 돼야 하고, 다양한 계층과 집단, 부류 등이 포함돼야 한다"면서 "대법관은 나이와 기수, 성향 등 여러 방면에서 소수와 다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시환 부장판사는 기자들에게 "물의를 일으켜 미안하다"면서 "이것(사표제출)이 반발 내지는 반격식의 갈등구조로 비춰지길 원치 않고 진지한 성찰의 필요에서 순수한 뜻임을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박 부장판사는 이야기 도중에 감정이 복받치는 듯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소식을 듣고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에 "앞으로 변호사를 해야죠"라며 "변호사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박 부장판사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아직 별달리 생각한 바는 없고, 모르겠다"면서 "원래 오늘(13일) 하루 휴가를 냈었는데, 앞으로 생각해 봐야죠"라고 말하며, 사표가 수리될 때까지 출근해서 남은 일을 정리하겠다고 전했다.

다음은 박시환 부장판사와의 일문일답.

- 갑자기 사표를 내게 됐는데?
"대법원의 개혁이 현실성 없는 생각이란 생각이었다. 대법관으로 제청된 명단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뜻을 같이하는) 다른 판사들과 (사표제출에 대해) 공식적으로 의논한 것은 아니다. 몇몇 사람에게 묻기는 했다. 한 두 친구는 적극 만류하기도 했다. (내 행동이) 돌출행동이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다양한 비판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안팎으로 이야기를 듣고 결정했다. 사실 어제(12일) 저녁에 내려고 했는데, 혹시 자문위에서 변수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상황을 보았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원칙과 소신 뚜렷한 인권판사"
박시환 판사는 누구인가

53년 생인 박시환 판사는 서울지방법원 사시 21회로 18년간 판사로 근무해왔다. 헌법재판관·대법관 임명 제청을 앞두고, 그동안 '대법관·헌법재판관 시민추천운동'을 전개해 온 '시민추천위원회'는 지난 8월 1일 시민추천후보 6명을 발표하면서 박시환 판사를 그중 1명으로 추천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박 판사는 인신보호에 관한 일련의 판결에서 볼 수 있듯이 원칙에 입각한 뚜렷한 소신이 돋보인다. 특히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권리를 박탈당한 피고인을 직권으로 석방하는 등 인권의식이 투철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종교를 이유로 한 병역거부'문제에서도 현행 병역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하여 종교적 소수자의 입장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법원 인사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다수의 현직 판사들과 함께 건의문을 작성하여 대법원장에게 제출하는 등 법원개혁에 관한 소신도 남다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다른 판사들과 협의나 논의가 있었단 이야기인가.
"동반 사표를 계획하거나 기대하거나 그런 의도는 없다. 전혀 백지로 남겨놓고 혼자 판단했다. 사표는 그냥 의견서를 내는 것과는 다르다. 다른 판사들이 '사표'에 대해 부담을 가질지 모른다. 이번 일에 대해 파급이 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93년 사법개혁을 주도했던 적이 있다. 그때 동료들에게 '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법원에서 근무를 하고 싶은지'를 물었었다. 다들 'NO'했었다. 지금까지 힘든 것을 참아왔다. 하지만 지금 긍정적인 부분을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습에서, 또 앞으로 개선될 '희망'이 안보였고, 맥이 빠지면서 '절망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 의사표현이 '사표' 제출밖에 없었나.
"의견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다 올렸다. 안팎으로 다 개진해봤다. 하지만 대법원장의 생각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기존의 인사방식에서 조금도 변화하고자 한 흔적이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이렇게 모든 목소리들이 '대법원의 법관 인사 개혁'으로 모아진 적이 없었다. 점층적으로 나온 때이기에 바로 지금이 그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를 하고 목소리가 나와야 할 때라 생각했다. 똑같은 결론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부족한 것 같아 의미를 두는 차원에서 '사표' 방식을 택했다."

- 이번 대법관 제청 자문회의에 제청된 인사들이 문제가 있었던 건가.
"이번에 제청된 분들에 대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대법원에서 이뤄진 절차나 인사방식, 의견수렴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없었던 것과 개진하고자 하는 고민이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절망감을 느꼈다. 문제제기와 입장을 분명히 하는 차원에서 사표를 낸 것이다."

- 사표 제출로 기존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표현한 것인가.
"궁극적으로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사항은 아니다. 두 방식 다 장단점이 있다.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지금으로써 기존 방식보다 다른 방식이 옳다고 말할 따름이다. 대법원장은 전 방식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고, 난 내 뜻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또 대법원의 입장을 다시 논의하는 장에서 대법원장이 다시 (기존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보다 내부에서 '아니다'고 하는 의견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번엔 의견 수렴이 안됐다 하더라도 다음에 있을 인사에 다른 방식으로 주장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마저도 안되고 계속 같은 방식으로 된다면 희망이 없어지는 것이다."

- 어떤 점이 문제인가.
"대법원(사법부)의 운영, 구조에 대해 크게 두 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한가지는 현재 실제로 운영되는 스타일이다. 대법원장이 맡아온 것을 취하는 입장이다. 또다른 하나는 새롭게 제기된 의견이다. (이들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기존의 방식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지 않는 학계나 시민단체 등에서 기존 운영 방식에 대한 많은 문제점을 제시해 오지 않았나. 어쨌든 운영된 결과물을 보면 (기존의 법관 및 대법관 인사, 선임방식, 기수별 자동 승진 등) 이것이 꼭 긍정적이지 못한 것 아닌가. 기존의 방식에 대한 변화와 새로운 시도가 더 많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초가 되는) 인사제도에 대한 고민 폭에 있어 질적으로, 양적으로 미흡했다고 판단된다."

- 그 중에서 이번(기존의) 대법관 제청에 대한 부분의 문제점을 지적해준다면?
"대법관은 '피라미드' 관료식 운영방식에서 승진의 마지막 단계로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사법부 전체를 죽이는 것이다. 절대로 안된다. 다시 말하지만 대법관은 피라미드 승진단계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자유롭게 떨어져 있는 조직이 돼야 하고, 다양한 계층과 집단, 부류 등이 포함돼야 한다. 대법관은 나이와 기수, 성향 등 여러 방면에서 소수와 다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 기능은 (재판을) 삼세번 하는 것이 아니다. 무수한 사건을 봐야 하겠지만, 일선 업무에서 조금 떨어져서 '가치 설정'하는 문제에 대해 여러 의견을 들어야 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런 기능을 하는 것이 대법원이다. 즉 '가치 형성' 기관이 돼야 한다. '3심'은 정말 중요한 법률적 결정이다. 그런 대법원의 기능을 하려면 (대법관은) 기본을 갖춰야 하겠고,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다양한 입장과 안목을 가진 사람들과 두루 그 안에서 토론을 통해 여론을 수혈받아 결정해 주는 기능을 해야 한다. 그래서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현재 제청 방식으로는 안된다. 대법관은 관료적으로 돼서는 소신있는 판결을 내릴 수 없으며, 새로운 개성있는 판결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악영향을 끼칠 것이며,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순치된 법관이 될 것이다."

- 법원의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방식은 바람직한 기능을 못하고 역기능을 하고 있다. 법원이 기존의 운영방식과 다르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대립해서 서로 논쟁을 해왔다. 몇 차례 법원이 검토해 봤었는데, 종전과 변화가 없었다. 이런 입장이 채택, 유지돼왔다. 이번에 다시 재검토하면서 (문제로) 제기된 것이다. 그중 대법관의 선발방식이 제기됐다. 여러 방면에서 '사법개혁'을 다시 한번 넓은 방면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단체나 학계 등에서 요 근래 와서 제기된 시점이기도 하다. 이미 의사표명은 한 것이라고 본다."

- 이번 대법관 인사의 문제점의 비중은 어떻게 되나.
"법원의 운영은 결국 법관인사에서 나타나야 한다. 특히 대법관 인사는 전체 인사와 법원의 운영을 결정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그만큼 중요하다."

- 안팎에서 본인이 후보로 거절된 것에 따른 사표제출이라는 곱지 않는 시선도 있을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내가 사표를 제출한 것은 별 건이고, 모든 것을 감수하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내가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제가 볼 때 현실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위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 내가 스스로 볼 때 나는 대법관 자격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후보로) 좋겠다고 추천했다. 가능성 있는 사람을 밀어줘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 의심받더라도 '아니다'라고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이 부분은 살아온 발자취와 살아가면서 입증할 부분이다."

- 왜 하필이면 지금 사표를 냈나.
"지금이 바로 집중적으로 문제가 확대되고 문제제기가 되는 상황이다. 변화가 있느냐에 대한 최종 확인을 할 수 있는 때였다. 지금 이야기 않는다면 늦는다는 판단을 했다. 법원은 지금 방식에서 'NO'다. 점진적으로 (변화해) 간다는 것도 아니다. 만약 대법원 현실 여건상 어쩔 수 없고 점진적으로 변화하겠다는 흔적이 있다면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 사표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다른 법관들에게 (사법 개혁의 의지가) 전개되길 기대 안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개될 것을 의도로, 또 계획해서 사표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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