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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3일 오후 서울 북부지원 이용구 판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인터넷 연판장' 전문이다.... 편집자 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법관 제청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재경 지역의 단독판사 몇 명이 전국 법관 여러분에게 대법원장님의 재고를 건의하기 위한 의견 수렴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처음 생각에는 사법연수원 18기 이하의 소장 법관들만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였으나, 사태의 심각성으로 인하여 사법연수원 17기 이상의 부장판사님들(고등부장판사님 포함)에게도 동참을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의견서는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내규(안) 제2조 제2항에 따른 것이나, 특정 안에 대한 의견이 아니기 때문에 공개하여도 무방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형식은 연명의견서를 올리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만, 익명을 바라시는 분의 의사는 존중될 것이고, 이 경우 동의한 법관 수에 포함하는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의견서에 동의하시는 분은 저 서울 북부지원 이용구 판사에게 동의 여부 및 익명 요구 여부에 관한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대법관 제청에 관한 소장 법관들의 의견

이 의견을 제시하는 법관들은 최근 법원 안팎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대법관 인선에 관한 논의의 진행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습니다. 우리들이 침묵하고 있었던 것은 우선 대법관 후보 제청을 위한 자문위원회가 폐쇄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위원회 설치 자체가 변화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평가하였던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법원장님이 법원 안팎의 논의를 충분히 수렴하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대법원을 구성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시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된 대법관 인선과정은 우리의 기대를 외면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을 좌절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법관들은 기존의 대법관 선임이 법관 승진의 최종 단계로 운영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법원이 지나치게 동질적인 연령·배경·경험을 가진 법조인들로만 구성되었고, 이러한 인사제도는 법원 내적으로 수직적인 관료구조를 과도하게 심화시켰으며, 외적으로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사회적 분쟁에 대한 재판에서 이미 변화되어 확립된 현재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변화한다고 해서 법원이 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원래 보수적인 사법부가 선택한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현재의 규범적인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못한 채 과거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한다면 대법원은 보수적인 것이 아니라 퇴행식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대법원이 소수의 기본권 보호에 소극적이었다는 국민의 지적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위헌법률심사권을 갖지 못한 우리 대법원은 위헌제청을 하지 않는 이상 사회적 다수가 만든 법률에 따라 재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사회적 소수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나 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통찰없이 실정법을 해석·적용한다면, 자신의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는다고 믿는 소수자 집단은 대법원을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 소수가 주장하는 법 논리의 설득력 유무를 문제삼기에 앞서, 소수자들의 이해관계에 관해서도 충분히 번민하여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법원을 구성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위와 같은 이유에서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인적 구성을 갖는 대법원',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하여 법 해석을 통한 법 창조적 기능을 중시하는 사법적극적 입장과 그 반대의 입장이 조화를 이룬 대법원'을 구성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 새로운 대법관은 적어도 지금까지의 인사관행을 벗어나 위와 같은 관점에서 검증된 법조인이 제청되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우리는 한편으로는 국민이 기대하는 대법관상과 대법원의 현실적인 기능이 서로 조응하지 못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미법계의 대법과 소수주의를 취하면서도 상고사건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대륙법계의 재판제도를 갖는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바로 대법원이고, 대법원이 주도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 위에서야 합니다. 위와 같은 재판현실 때문에 업무능력이 뛰어난 대법관을 선호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국민의 신뢰에 값할 수 있는 대법원을 구성하여야 합니다.

우리 법원은 지금 '대법원을 못 믿겠다'는 종래의 불신을 불식시키고 개혁의 주체로 나설 것이냐, 아니면 여전의 개혁의 대상을 남을 것인가를 선택할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이미지를 청산하기 위한 지난 10년 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는 대법관 후보자 제청이 있기를 기대하면서, 대법원장님이 재고를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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