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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3일 <무한도전>이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한국 방송 환경을 감안하면, 한 예능 프로그램이 10년 가까이 생존한다는 것은 분명 드문 일입니다. 같은 PD가 9년 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 또한 놀랍습니다. <무한도전> 10주년을 맞아 이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김태호 PD라는 한 사람을 통해 살펴봅니다. 김태호 개론 2편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말]
"왜 대한민국에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 천재들이 드문가? 많은 부모와 교사, CEO들은 오늘도 창의적 인재를 키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실은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 모범직원을 만드는 데 급급할 뿐이다. 누구나 창의성의 중요함을 강조하지만, 정작 창의성이 언제 어떤 순간에 발현되며, 어떻게 북돋아야 하는지는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먼저 교수님 한 분을 소개한다. 최인수 교수, 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및 인재개발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같은 대학교 다산창의력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적 창의성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창의성 연구의 세계적 석학 칙센트 미하이 교수가 있는 시카고 대학으로 찾아가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한다. 위 글이 실린 <창의성의 발견>이라는 책의 저자다.

이 책, 제목은 다소 '접근'을 망설이게 만들지 모르지만 그 내용은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대중들과 창의성을 주제로 소통하고 싶었다"는 최 교수 말대로 창의성이란 개념이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풀어냈다. 창의성을 주제로 김태호란 사람을 분석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재미는 창의적 성취에 가장 중요한 원동력"

최인수 교수는 창의적 성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꼽는다. 창의적 인물들을 인터뷰한 결과 "결국 창의성은 본인이 재미있어 하는 주제를 선택하고 이를 열심히 할 때 나오는 결과물"이란 것이다. 사진은 최 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다산창의력센터 홈페이지 이미지
 최인수 교수는 창의적 성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꼽는다. 창의적 인물들을 인터뷰한 결과 "결국 창의성은 본인이 재미있어 하는 주제를 선택하고 이를 열심히 할 때 나오는 결과물"이란 것이다. 사진은 최 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다산창의력센터 홈페이지 이미지
ⓒ creativity.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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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시카고 대학 유학 시절, 노벨상 수상자 등 세계적으로 창의적 성취를 이룬 인물 100명을 인터뷰하고 이를 분석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귀국해서도 IT 전문가 등 우리나라의 창의적 인물을 두루 인터뷰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들에게 던진 공통 질문은 이것이었다고 한다. 당신의 성취에 중요한 역할을 한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시카고 대학의 연구 결과다. 인터뷰 참가자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인터뷰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85%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최 교수는 "결국 창의성은 본인이 재미있어 하는 주제를 선택하고 이를 열심히 할 때 나오는 결과물"이라고 단언한다. "재미와 같은 내재적 동기가 창의적 성취에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본인이 재미있어 하는 주제, 김태호의 경우는 그럼 무엇이었을까. 한 공개 인터뷰에서 그는 '왜 PD가 되고 싶었냐'는 물음에 "혼나지 않고 TV를 많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한다. 단순하다. 복잡할 필요는 사실 없다. 재미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붙지 않기 마련이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그는 "어릴 때부터 TV를 보는 걸 좋아했다"며 "TV를 보는 것에 대해 좀 더 정당한 이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왜 자꾸 공부 안 하고 TV 보니' 하면, '나중에 이거 할 것'이라고 얘기하면 어느 정도 양해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한다.

그럼 왜 하필 PD, 그중에서도 예능 PD를 선택한 걸까. 그는 한 대학 특강에서 "안 하는 게 없어서 예능을 하게 됐다. 드라마, 쇼, 버라이어티, 시상식, 교양 등 모든 게 담겨 있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있다"며 "지금도 예능이 제일 재미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김혜리와의 인터뷰에서는 조금 더 속내를 드러낸다.

"솔직히 PD 평균 수명이 입사 뒤 5년은 조연출하고, 현장에서 딱 10년 뛰면 데스크로 가거든요. 전 자칫하면 <무한도전>만 하다가 데스크로 물러날 수도 있는데, 누가 제 경력을 챙겨줄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무한도전>의 색깔을 유지하는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 연기자들이 해보고 싶은 걸 담아내며 위안을 구하지 않으면 정말 소모품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2009년 12월 22일, <씨네21> 인터뷰)

재미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김태호 PD
 김태호 PD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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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하고 싶은 걸 하자, 스스로 하고 싶은 일에는 재미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그 재미는 때로 사람을 비정상적으로 만든다. 김태호는 한 인터뷰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편을 촬영할 때는 메인 작가 속눈썹에 얼음이 맺혔을 때가 돼서야 춥다는 것을 알고 쉬자고 했다"고 말한다.

재미에는 퇴근 시간도 없다. 새벽 2∼3시까지 일하는 걸 무척 가볍게 얘기하거나 "36시간 연속 촬영한 적도 있다. 그 이후로는 밤 12시에 끝나도 상당히 일찍 끝나는 것 같아서 부담이 없더라. 가끔씩 그런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말하는 이가 또 김태호다. 그러니 같이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김수현 작가 같은 유명한 작가도 그 밑에 도와주는 작가들이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지금 많은 후배들이 AD로 있으면서 여러 가지 자막들을 쓰면, 그걸 보고 김태호 PD가 정말 까다롭게, 그리고 시도 때도 없다고 합니다. 일 중독이라고 그래요. 새벽 3시, 4시 대중이 없대요."(2013년 5월 23일 <썰전>에서 김구라)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만든 윤종빈 감독과의 인터뷰에서는 '집에 잘 들어가냐'는 질문에 김태호는 "아내 자는 얼굴만 보는 것 같다"며 "이것(<무한도전>) 말고 아무 것도 못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김태호의 '반노동자적 행태'는 최인수 교수에게는 창의적 인물의 전형적 특성 중 하나다.

최 교수는 "창의적 인물들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고로 집중한다"며 "창의적 인물들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단호하게 대처한다"고 한다. 그 생생한 예가 다음에 있다. 2010년 12월 4일, 김태호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다.

손석희에게도 쫄지 않는 태호의 단호함

2010년 12월 4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김태호 PD
 2010년 12월 4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김태호 PD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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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 "약력을 잠깐 소개 드립니다. 김태호 프로듀서, 1975년생이십니다. 충청남도 대천이 고향이시구요. 고려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셨고, 2002년에 MBC에 입사하셨죠."

김태호 : "아, 2001년 1월 2일."

손석희 : "(약간 당황) 아... 2001년, 자료가 잘못됐습니다. 그리고 조연출로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 <논스톱 4>, 이건 시트콤이었죠. 그리고 <코미디 하우스>, 잘 기억이 안 나는 프로그램인데."

김태호 : "<코미디 하우스>가 예전에 허무개그부터 시작해서 역사가 꽤 오래됐던 프로그램입니다."

다시 손석희의 입에서 '아...'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상대가 그야말로 쟁쟁한 언론인이자 회사 대선배임에도 굴함이 없다. 2010년 12월 4일 전파를 탄 MBC 라디오 <손석희가 만난 사람>은 이렇게 시작부터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렇다고 방송 분위기가 냉랭했던 건 아니었다. 웃음도 자주 나왔고 전반적으로 훈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물론 분위기를 깨는 단호한 반박은 몇 차례 더 이어졌지만.

손석희 : "처음에는 이름이 <무한도전>이 아니었죠? <무리한 도전>이었죠?"

김태호 : "아뇨. <무모한 도전>이었다가 제가 하면서 <무리한 도전>으로 바뀌었죠."

손석희 : "리얼 버라이어티를 시작한 프로그램인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 전에도 아주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김태호 : "그 단어를 유재석씨가 처음 사용했죠. (못박듯이) '리얼 버라이어티 무한도전'이란 이야기를. 2006년 여름에 저희가 발리 특집, 하와이 특집, 이런 걸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김태호 PD가 생각하는 리얼은 어디까지냐"는 손석희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김태호는 "사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멤버들은 이미 머릿속에 본인들이 각자 연기를 하고 연출을 하고 있는 것이라서 100% 리얼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애매하다"며 "사전에 어떤 약속이나 대본 없이 급작스럽게 진행되는 상황을 담는다는 의미로 리얼이라 표현한다"는 답을 내놓는다. 이어지는 확인.

손석희 : "<무한도전>은 적어도 거기에 충실하다?"

김태호 : "예."

박문기 심판의 증언, "그때 하하가..."

2006년 10월 7일 방영된 <무한도전> '추석 특집'의 한 장면
 2006년 10월 7일 방영된 <무한도전> '추석 특집'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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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 대답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데 중요한 '증인'을 한 분 소개할 차례다. 현재 국민생활체육전국줄다리기 연합회 이사로 있는 박문기 심판. 한때 <무한도전> 제7의 멤버로 불리기도 하는 등 팬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무모한 도전> 첫 방송 '황소와 줄다리기' 편부터 심판으로서 '아우라'를 드러냈다. <무모한 도전> 시즌에는 거의 개근하다시피 했으며, <무한도전> 시절에도 베이징 올림픽 이후 방영된 '이용대·이효정 배드민턴' 특집을 비롯해 '소지섭 리턴즈' '설특집 하하와 홍철 대결' 등에 다수 출연했다. MBC뿐 아니라 SBS나 케이블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도 진출한 경력을 갖고 있다.

박문기 심판은 <무한도전>과 여타 예능 프로그램 제작 현장의 목격자로서, 또한 <무한도전> 제작진과 시청자 사이에 있는 인물로서 '리얼 버라이어티'의 경계선을 어떻게 판정하고 있을까. 직접 만나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그의 경험담부터 들어봤다.

"한 프로그램에서 허들 100미터 경기를 했어요. 그런데 70미터만 뛰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100미터 뛰었다고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절대 안 된다'고 내가 막았죠. 왜냐. 이건 너무 허위가 되잖아요. 그렇게 방송에 나가면 최선을 다해 국가대표가 된 사람이 뭐가 되겠어요? 그래서 안 된다, 허위가 된다, 그렇게 지적했었죠."

박문기 심판은 그런 일이 <무한도전>에는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전철하고 달리기 할 때도 거리를 100미터가 아니라 95미터 놓고 할 수도 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라며 "그런데도, 그걸 정확하게 100미터 측정해서 하더라"고 했다. 그래서 똑똑히 기억하는 일화 하나.

"김태호 PD 때 열차와 달리기를 한 번 더 했었잖아요(추석 특집, 2006년 10월 7일 방영) . 딱 열차가 출발하려고 하는 순간에 화약총을 쏴줘야 해요. 거기서 1초 정도라도 늦게 쏴주면 연기자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고, 조금이라도 먼저 쏘면 연기자 입장에서는 득을 보게 돼요. 그러니까 그 순간이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었어요. 만에 하나 내가 실수해서 NG가 나면 출발했던 연기자는 다시 원위치해야 하고, 다음 열차 올 때까지 또 5분, 10분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런데 내가 그만, 하하씨가 뛸 차례였는데 조금 일찍 출발 신호를 준 거예요. 한 0.5초나 될까? 그걸 모르고 하하씨는 정말 열심히 뛰었었죠. 그런데 김태호 PD가 그걸 보고 다시 하라고 하더군요. 그 전날 다른 곳에서 야간에 녹화가 있었는지 하하씨가 굉장히 피곤하다고 그랬었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다시 도전했고, 결론은 실패였죠."

"엄격성에 대한 집착, 깐깐하고 꼼꼼하다"

박문기 심판은 "심판으로서도 <무한도전>은 높이 평가해주고 싶은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도전의 준비 과정이 정확하고 철두철미했으며, 방송이라고 부풀리거나 하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김태호는 "굉장히 원칙적인 사람, 굉장히 예리하고 냉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의 '증언'은 최인수 교수의 다음 말과 또한 정확히 통한다.

"내가 만난 창의적 인물들은 최고에 도달하기 위해 엄격성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한마디로 깐깐하고 꼼꼼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재미있다. 재미는 최고의 혹은 깐깐하고 꼼꼼한 집중력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의미 또는 가치 부여에 있어서는 단호한 면모를 보인다. 더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빼지도 않는다. 앞서 살펴본 창의적 인물의 특성들이다. 김태호 또한 그렇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란 것, 이는 창의력을 발현하는 데 있어 하나의 기본 토대일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상상력까지 그냥 풍부해지는 건 아니란 뜻이다. 대한민국 첫 손가락에 꼽히는 '창의적 기업' YG를 이끄는 양현석과 김태호의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김태호 개론 2편] 김태호, <동아> 합격증 걷어차다
[김태호 개론 1편] 친구의 죽음, 태호를 깨우다
[김태호 개론 프롤로그] 그의 머릿속이 정말 궁금했다

김태호 개론 4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김태호, #손석희, #무한도전, #최인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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