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5년 4월 23일 <무한도전>이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한국 방송 환경을 감안하면, 한 예능 프로그램이 10년 가까이 생존한다는 것은 분명 드문 일입니다. 같은 PD가 9년 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 또한 놀랍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무한도전> 10주년을 맞아 김태호 PD를 통해 살펴봅니다. 김태호 개론 6편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말]
마주 선 두 사람…, 결심한 듯 안경을 벗는다. 붉게 물들어 가는 얼굴들, 머리를 쓸어 내리는 손가락들.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축이는 한 사람. 2m, 1m…. 그 앞에 다가서는 또 한 사람, 두 손으로 상대방의 어깨를 움켜잡는다. 다시 30cm, 10cm…. 마침내 부딪히는 입술, 순간 터지는 장윤주의 괴성 "꺄아∼악~". 그리고 흐르는 자막은 이랬다.

대.형.참.사.

김태호와 유재석이 뽀뽀를 했다. 2014년 1월 18일 방영된 <무한도전> 'IF 만약에' 편에서. "이건 정말 전 세계 프로그램에 유례가 없는 일"이란 노홍철 말처럼, 담당 PD랑 출연자가 카메라 앞에서 뽀뽀하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 그 순간, 김태호의 머릿속에는 어떤 장면이 지나갔을까. 예능 PD로서 '유느님'에 대한 팬심이 충만했을 그때, 유재석에게 처음 전화하던 순간이 스쳐갔을지도 모른다.

유재석 전화번호 하나 때문에 시작한 <무한도전>

2014년 1월 18일 방영된 <무한도전> 'IF 만약에'편
 2014년 1월 18일 방영된 <무한도전> 'IF 만약에'편
ⓒ MBC

관련사진보기


"그때는 시청률이 4%, 뭐 3%, 방송이 나가고 시청률이 나오면 '없어진다더라' 또는 '연출자가 바뀐다더라' '멤버 누가 빠진다더라' 그랬어요. <무한도전> 1기가 끝나고 드디어 이제 위에서는 결정이 내려졌어요, '곧 <무모한 도전>은 없어진다.' 제가 듣기로는, 그때 김태호 PD가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해서, '그래, 그럼 네가 한 번 해봐라', 그렇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줬는데…." (2012년 12월 10일, <무한도전> 300회 특집 당시 유재석의 회고)

그 마지막 기회를 김태호가 움켜잡은 가장 큰 이유, 유재석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한 백화점 특강에서 "내가 <무한도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유재석씨 전화번호 하나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과 친해져서 다음 프로그램을 할 때 '내가 섭외할 수 있을까', 그 욕심 하나로 시작한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예능을 하는 사람으로서 유재석씨와 너무 친해지고 싶었다"고 한다.

<무한도전>도 친해지고 싶은 프로그램이었다. 열렬한 시청자이자 또 팬이었다고 한다. 김태호에게 <무한도전>은 "백설공주가 오기 전 일곱 난쟁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또는 "영화 <엑스맨>처럼 특기를 하나씩 갖고 있는 어리숙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중학교 탁구부원들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일본 만화 "<이나중 탁구부>와 같은 엽기적인 느낌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만화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돌아이과'에 속했다. 미남도 있었지만, 변태도 있고, 암내가 심한 친구, 또 비열하고 이기적인 경우도 있다.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만 김태호

2014년 1월 18일 방영된 <무한도전> ‘IF 만약에’편
 2014년 1월 18일 방영된 <무한도전> ‘IF 만약에’편
ⓒ MBC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보니 떠오르는 말이 '무한 이기주의'다. 변태스러운 노홍철, 뿡뿡이 박명수 이미지도 그려진다. 이렇게 보면 <무한도전> 멤버들 캐릭터는 일곱 난쟁이와 엑스맨 그리고 이나중 탁구부의 총합이었던 셈이다. 이나중 탁구부원들처럼 뭔가 모자라는 친구들, 각각 웃음 한 방을 갖고 있는 엑스맨들 그리고 유재석을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 싸우는 난쟁이들. 하지만 <무한도전>이 캐릭터 구축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봉춘', M.B.C였다. 김태호의 회상이다.

"처음 촬영 때는 카메라가 딱 두 대였어요. 일단 진행자가 인기도 많으니까 카메라 한 대는 유재석씨를 잡겠죠. 그럼 나머지 한 대로 나머지 멤버들 그리고 풀샷도 잡는 거죠. 그러니까 리얼하지가 않은 거예요. 당장 붐마이크, 주마이크가 항상 유재석씨 위에 있으니까, 누군가 쉽게, 어떤 멘트를 치고 싶어도 첫 마디, 앞 부분은 말이 잘려요. 그러니까 편집하려고 앉아 있으면, 현장에 있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거예요. 물론 편집하긴 쉽죠, 참 쉬운데 아쉬움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어요."(2014년 4월 한 백화점 특강에서)

김태호의 아쉬움을 없애려면 최소 여덟 대 이상의 카메라가 필요했다. 멤버마다 각각 한 대, 풀샷용 한 대 그리고 티격태격하는 멤버 두 사람을 함께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 등등. 오디오 장비도 보완이 필요했다. 그래야 "노홍철의 방언 같은 이야기들" "정형돈이 이상하게 몸 푸는 소리" "박명수의 방귀 뀌는 소리" 등을 다 잡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김태호는 카메라를 더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씨도 안 먹힐 제안이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예능 하면 무조건 카메라는 한두 대 주던" 시절이었다. 그러자 김태호는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어쩔 수 없이 외부에 있던 프리랜서 감독님들을 모아서 카메라 팀을 만들게 했죠. 그렇게 되면 인건비나 제작비가 늘어나잖아요. 회사에서는 당연히 '네가 왜 그런 판단을 하느냐', 그래서 경위서를 썼고 인사위에 회부됐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캐릭터를 하나씩 살리는데, 뭔가 캐릭터를 쌓아가는 데 충분한 소재를 만들어 주더라고요."(2014년 4월 한 백화점 특강에서)

창의적 인재들, 타고난 위험 감수자

공병호 박사는 "미래는 소수의 창의적인 인재로부터 경쟁력의 원천이 생겨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가려면 반드시 위험 감수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오마이뉴스>에서 열렸던 <공병호의 사장학> 출간 기념 강연회 당시 모습
 공병호 박사는 "미래는 소수의 창의적인 인재로부터 경쟁력의 원천이 생겨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가려면 반드시 위험 감수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오마이뉴스>에서 열렸던 <공병호의 사장학> 출간 기념 강연회 당시 모습
ⓒ 오마이뉴스 조경국

관련사진보기


김태호는 그런 일을 저지르면서 '무사히' 넘어가리라 생각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고 각오했을지도 모른다. 인사위에 회부되는 위험을 말이다.

타고난 위험 감수자. 최인수 교수(성균관대 다산창의력센터장)가 <창의성의 발견>이란 책을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로 지목하면서 쓴 표현이다. 최 교수는 "창의적 인재들은 안전한 길을 가지 않는다"라면서 "남들이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한다면 절대로 앞설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세계적인 창의성 분야 전문가 길다 바이스부르트 역시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창의적인 사람들의 개인 자질로 꼽고 있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은 아예 위험 감수를 미래 인재의 조건으로 못박기도 했다. 공 소장은 "미래는 소수의 창의적인 인재로부터 경쟁력의 원천이 생겨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이 개개인의 능력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된다면 미래 인재에게 반드시 필요한 또 하나의 조건이 추가된다"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그것은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 안주하지 않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가려면 반드시 위험 감수 능력이 필요하다.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 위험 감수)이 없다면 어떤 성장이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2008년, 공병호, <미래 인재의 조건>, 21세기북스)

이 말을 뒷받침하는 상징적인 사례는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박사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국에 돌아와 마주친 '벽' 또한 김태호의 경우와 닮은 것이었다.

전길남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그의 컴퓨터 네트워킹 연구에 대해 "그땐 다 반대했다, 왜 그런 걸 하느냐고 했다"라고 밝혔다. 다수의 반대에 무릎꿇었다면 아마도 세계에서 두 번째이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개발을 이룬 대한민국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왜 위험을 감수하냐고? 그냥... 재미가 없어서

2014년 1월 18일 방영된 <무한도전> 'IF 만약에'편
 2014년 1월 18일 방영된 <무한도전> 'IF 만약에'편
ⓒ MBC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창의적인 사람들이 남들 다 반대하는 걸 하는 이유, 그럼으로써 위험을 감수하고야 마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남들 따라하는 건 도무지 재미가 없어서다. 최인수 교수 표현대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인종'"이라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는 한 미국인 사업가의 소감이 재미있다. 그는 한 신문을 통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길에서 무슨 패션쇼가 열리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 다음 관찰이 인상적이다. 자세히 보니 옷 입는 스타일은 다 비슷하더라고. 화려한 무채색에 가깝다고 할까.

김태호의 외모, 화려하지는 않다. 그리 잘 생긴 편은 아니다. 남들처럼 '무채색'으로 적당히 묻히는 편을 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스스로 도드라지는 '유채색'을 선택했다. 대학교 시절 '돌아이'란 표현을 이끌어낸 그의 패션을 보면, 노랑머리에 피어싱을 하고 당당히 MBC 면접관 앞에 나타났던 전설을 보면, 김태호는 확실히 남들 따라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인종이다.

스스로를 '유목민'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태호는 <씨네21> 김혜리와의 인터뷰에서 "다 같이 풀을 뜯는 상황에서 저희라도 고개를 들어 다른 풀밭을 찾아보지 않으면 여기서 고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스스로를 유목민으로 부르는 이유를 설명했다. 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미드(미국 드라마), 뭐 재미있더라 하고 따라하다 보면 남들 따라가는 것 밖에 안 된다", 함께 일했던 작가라면 자못 속상했을 말도 이어진다.

"옛날에는 어떤 작가가 반대하는 아이템만 하면 대박이 났어요. 오랫동안 예능에 몸을 담은 작가였죠. 그러다 보니 그 작가가 '그거 하면 된 적이 없어', 그럼 그게 도전 과제가 됐죠. '서울 구경'도 그랬고, '돈 가방을 갖고 튀어라'도 그랬어요. 지나가다 포스터 보고 '어? 저거 우리 다 있는 캐릭터인데?', 그래서 다음날 회의를 했는데 작가가 반대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죠. '이거, 대박이다!'."(2010년 한 대학 특강에서)

"태양까지 타 죽더라도 날갯짓을 하자"

물론 항상 대박이 나는 건 아니다. '28년 후... 좀비 특집'(2008년 8월 방영)은 남들 따라하기 싫어하다 '완전' 망한 케이스다. "왜 매번 납량 특집하면 꼭 폐가를 보내지? 뒤돌아보지마 식 공포물을 몇 번 하다보니 그게 너무 싫어서 좀 다른 걸 해보자"는 의미에서 만들었다고 밝힌 좀비 특집. 약 3개월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고 "엑스트라 300명에 카메라만 48대"가 동원됐다.

하지만 유재석의 실수와 박명수의 '무한 이기주의'로 인해 28분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PD인 저도 지금 경위서를 작성중입니다"란 자막과 함께 허무하게 끝났던 '좀비 특집'. 좀비…, 이도 저도 아닌 살아있는 시체다. 이도 저도 아닌, 무채색 PD가 되기보다 '차라리 타죽겠다'는 김태호의 이 말은 그의 창의적 기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새가 날갯짓을 힘차게 하다가 어느 정도 딱 상공에 올라갔다고 그냥 날개를 펴고만 있다면 곧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시청률이 오르거나 하면 안정을 추구하려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그게 싫었어요. 끊임없이 계속해서 날갯짓을 하자. 태양까지 가서 타죽더라도."(2012년 5월 청춘페스티벌 특강에서)

[김태호 개론 6편] 김태호와 나영석이 공동작품을? 사건의 전말
[김태호 개론 5편] 김태호가 아내와 싸웠다면... 무도 '레전드'는 없었다
[김태호 개론 4편] 김태호와 양현석, 치명적인 '약점' 있다
[김태호 개론 3편] 김태호가 손석희에게도 '꿀리지' 않은 이유
[김태호 개론 2편] 김태호, <동아> 합격증 걷어차다
[김태호 개론 1편] 친구의 죽음, 태호를 깨우다
[김태호 개론 프롤로그] 그 어느 날, 김태호 테러리스트가 되다

* 김태호 개론 8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김태호, #유재석, #무한도전, #장윤주, #공병호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