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영화 포스터

▲ <명량> 영화 포스터 ⓒ (주)빅스톤픽쳐스,CJ 엔터테인먼트


지금 <명량>이 나온 이유, '왜 이순신 장군인가?'라는 질문은 2013년 한국 영화의 흐름의 연장선에서 읽어야 한다.

지난해 나온 한국영화에서 크게 감지된 정서는 '억울함'이다. 차별적인 계급 구조를 다룬 <설국열차>, 언론과 정부의 거짓에 분노하는 <더 테러 라이브>,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는 <집으로 가는 길> 등은 사회에 흐르는 억울함이란 무의식을 반영했다. 희망을 줄 인물을 그리워하는 감정은 <변호인>으로 폭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2014년에 선보인 <군도: 민란의 시대>와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는 억울함에 못 이겨 권력과 정면으로 맞서는 무정부주의자가 등장한다. <군도>의 도치(하정우 분)는 정부에 깊은 상처를 받고 도적 떼에 들어갔으며, <해적>의 장사정(김남길 분)은 권력을 탐하는 쿠데타 세력에 반대하며 산적이 되었다.

이상형의 지도자를 염원하는 바람은 <광해>와 <변호인>을 잇는 또 다른 영웅을 갈망했고, <명량>은 역사의 인물인 이순신(최민식 분)을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모셔왔다.

영웅 바라는 시대와 사극 열풍의 만남이 이순신 불러

<명량> 영화의 한 장면

▲ <명량> 영화의 한 장면 ⓒ (주)빅스톤픽쳐스,CJ 엔터테인먼트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은 그동안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룬 바 있다. 대중에게 크게 각인된 이순신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김명민이 만든 인물에 기인한다. 그 틀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탓인지, 이후 공상과학적인 상상력에 이순신을 연결한 <천군> 정도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으로 불리는 한산도 대첩, 명량 대첩, 노량 대첩이란 승전보 중에서 <명량>은 제목 그대로 한국 역사의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기록된 명량 대첩에 시선을 집중한다. 12척의 배로 330여 척의 왜선을 무찌른 명량 대첩은 세계 해전사의 유례가 없는 사건이기에 TV 드라마의 규모에서 벗어나 극장 화면의 스펙터클로 보여주기 안성맞춤인 소재다.

<명량>처럼 전쟁을 재현한 한국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고지전>과 <포화 속으로>가 실패를 거둔 후에 대형 전쟁 영화의 맥은 끊어졌다. 이후 한국 영화는 <해운대> <타워> <감기> <연가시> 같은 재난 영화로 스펙터클의 관심을 옮겼다.

재난에 몰두하던 한국영화가 다시금 전쟁 영화이자 사극 영화인 <명량>에 자그마치 180억 원이라는 엄청난 물량을 투입하게 된 계기는 <광해> <관상>의 성공에 빚지고 있다. <명량>은 스펙터클을 향한 한국영화의 집착, 사극 영화의 열풍, 영웅을 바라는 시대 상황이 만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조선과 일본이 벌인 처절한 전투를 장대한 규모로 재현한 <명량>은 역사가 기억하는 그 날에 관객이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이것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주었던 체험과 흡사하다.

작전에 대한 명확한 묘사가 부족하고, 녹음 상태가 좋지 않은 아쉬움은 남으나, 세트와 CG 등 훌륭한 구석이 많기에 <명량>은 기술적인 면에서 칭찬받아 마땅하다. <최종병기 활>에서 활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던 김한민 감독은 <명량>에서 거대한 전투의 긴장감과 박진감을 멋지게 조율했다. 

점점 강한 군사력 원하는 일본에 대한 견제 심리의 발현

<명량> 영화의 한 장면

▲ <명량> 영화의 한 장면 ⓒ (주)빅스톤픽쳐스,CJ 엔터테인먼트


명량 대첩에 임하기 전에 부하들에게 '살려고 도망가면 반드시 죽고,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산다'는 '생즉필사 사즉필생'를 강조하는 이순신은 비겁한 자들이 득세하는 작금의 현실과 대조를 이루며 깊은 감동을 준다.

"이겨도 임금은 아버지를 버릴 텐데 왜 싸우는가"를 묻는 아들에게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고 대답하면서 민본주의를 역설하는 이순신의 모습은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란 시대정신과 조응하며 큰 울림을 전한다.

반면에 명량 대첩의 승리가 민초들의 힘이란 걸 강조하기 위해 집어넣은 장면은 <명량>이 영상으로 구현하는 시각적 역사서술로 의미가 있는지 갸웃거리게 할 만큼 작위적이다. 1시간의 스펙터클을 위하여 대부분 등장인물을 낭비하는 점도 <명량>의 단점이다. 특히 일본 장군 구루지마(류승룡 분)는 이순신과 대척되는 중요한 인물이었건만, 어떤 개성도 보여주지 못한 채로 희생된다.

<명량>에서 포착되는 흥미로운 지점은 힘에 대한 욕망과 그것이 향하는 방향이다. 세기말에 등장한 <유령>에서 202(최민수 분)는 "강하지 않으면 짓밟히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를 외치며 굴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핵잠수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뒤를 이어 <한반도>에서 국새로, <신기전>에선 화기 신기전을 통하여 국가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물었다. 이들은 외세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해선 자주국방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군>은 핵무기와 이순신을 동일화시키면서 힘을 강조했다.

항상 침략을 당했던 우리 역사에서 이순신은 강력한 군사력의 상징 같은 존재다. <광해>와 <변호인>이 정치적인 영웅을 그렸다면, <명량>은 군사적인 영웅을 불러 왔다. 일본을 힘으로 제압하는 역사의 한 대목을 끄집어 낸 <명량>은 <유령> <한반도> <신기전>과는 다른 형태로 우리 안에 깊이 내재한 '힘'에 대한 열망을 표출한다.

분명 우리가 힘으로 대등하고 싶어하는 대상은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에 깊은 상처를 입힌 일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포츠에서 일본에 지지 않으려는 심리, 다른 나라가 일본에 이기면 통쾌해하는 심리는 그것을 증명한다. 그런 일본이 가장 두려워했던 대상은 바로 이순신이다.

어쩌면 <명량>은 점점 강한 군사력을 원하는 일본에 대한 견제 심리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겐 이순신 같은 고결한 희생정신을 지닌 리더도 없고, 우리만의 힘으로 자주국방을 이루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극장 안에선 통쾌하나 극장 바깥은 여전히 무력하다. 대리만족은 거기서 끝난다.

명량 김한민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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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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