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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창완씨가 채식주의의 길에 들어서게 된 사연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촬영장에서 만난 돼지. 35도의 뙤약볕에서 양철 지붕을 쳐다보며 기진맥진한 채 누워 있는 돼지를 보며 고기를 먹을 생각이 사라졌다고 한다.

더위에 지친 돼지에게 연민을 느껴 고기를 그만 먹게 된 것은 분명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측은지심이 있다. 괴로워하는 동물을 보면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런 인간 본연의 선한 속성을 생각하면 김창완씨의 변화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고기를 먹으면서도 고기 생산 과정으로부터 그 어느 때보다도 차단되어 있다. 고기를 먹을 때마다 내가 먹는 동물의 고통을 똑똑히 지켜봐야 한다면 지금처럼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을까? 

개 먹는 사람은 야만인?

개식용 반대를 위한 연대체 ‘인도주의행동연합’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개도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동시장·중앙시장의 단속과 개도살장 폐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개식용 반대를 위한 연대체 ‘인도주의행동연합’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개도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동시장·중앙시장의 단속과 개도살장 폐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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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의 현실이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축산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기동물 입양이나 모피반대를 외치는 캠페인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많은 화장품 회사들이 자사 제품은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작년 7월에는 서울대공원의 쇼 돌고래 '제돌이'가 제주도 바다로 돌아갔다. 이렇게 동물복지는 우리 사회에서 점차 공감을 얻고 있다.

식용으로 희생되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을 먹지 않는 것이다. 동물보호단체가 개 식용에 반대하는 것은 식용으로 희생되는 개를 줄이기 위한 당연한 활동으로, 동물을 위한 여느 캠페인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유독 개 식용 반대 캠페인은 민족주의·문화상대주의의 틀에 갇혀 거센 반발에 부딪혀왔다.  

프랑스 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손석희 아나운서와 벌인 논쟁 중에 쏟아낸 발언은 개 식용 문제를 민족주의·문화상대주의와 결부시킨 주된 원인이 되었다. 모든 동물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취지가 아닌, 개를 먹는 것을 '야만'으로 몰아붙인 그녀의 인식의 폭력은 개 식용 반대를 서양에 대한 사대주의로 왜곡시켰다.

"프랑스 또는 미국인이라면 결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그녀의 발언은 '개를 먹는 민족은 야만인'이라는 민족 간의 차별은 물론, '개는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동물 간의 차별까지 용인하는 주장이었다. 그 결과 개 식용 반대 운동은 서양 문화에 따라 개만 애지중지하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개 식용 합법화'라는 환상

개식용 반대를 위한 연대체 ‘인도주의행동연합’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식용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개식용 반대를 위한 연대체 ‘인도주의행동연합’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식용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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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단체들이 개 사육 및 도축 과정에서 야기되는 잔인성을 부각시키며 개 식용 반대 운동을 전개하자, 차라리 개 식용을 합법화하면 잔인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합법화'라는 용어에 따른 착각일 뿐이다. 합법화는 동물에 대한 인도적 대우를 의미하지 않는다.

소·돼지·닭을 비롯한 합법적인 농장 동물이 얼마나 잔인하게 사육·도살되는지 안다면, 합법화가 결코 학대를 줄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오늘날 농장 동물이 겪는 고통은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다.

개 식용이 합법화된다면, 좀 더 빨리, 좀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소·돼지·닭에게 적용되는 학대 시스템이 개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활동성 강한 동물인 개를 비좁은 우리에 가둬 최대한 살찌우고, 짖음으로 인한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러 고막을 터트려 청각장애를 일으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의 소·돼지·닭과 마찬가지로 개 역시 '고기생산 기계'로 전락할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인식 없이 개 식용 합법화를 옹호하는 것은 합법적으로 고통받는 동물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격이다.

조류인플루엔자·구제역·광우병 등의 농장 전염병도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겨났다. 분뇨를 비롯해 농장에서 배출되는 각종 유해물질로 인한 환경오염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나친 육류 섭취는 공공의 건강까지 해치고 있다. 과도한 육식이 인간·동물·환경을 희생시키는 현실에서 우리 사회는 개 식용 합법화까지 감당할 여력이 있을까? 

고양이 고기는 일명 '나비탕'이라고 불리며, 때로는 고양이 고기가 개고기로 둔갑되기도 한다. 특정 동물의 식용을 허용하는 것은 또 다른 동물의 식용을 허용하는 근거가 되어, 결론적으로 더 많은 희생을 야기한다는 우려를 낳는다.
▲ 개, 고양이 식용 반대 고양이 고기는 일명 '나비탕'이라고 불리며, 때로는 고양이 고기가 개고기로 둔갑되기도 한다. 특정 동물의 식용을 허용하는 것은 또 다른 동물의 식용을 허용하는 근거가 되어, 결론적으로 더 많은 희생을 야기한다는 우려를 낳는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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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식용 반대에는 오늘날의 육식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동물보호 운동의 본래 취지에 따라 식용으로 희생되는 모든 동물에 대한 동등한 관심을 기울일 때, '소·돼지·닭을 먹고 있으니 개도 먹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개식용에 반대하는 사람들부터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사람을 신분·인종·성에 따라 차별해도 좋다는 생각은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인간의 이성이 진보를 거듭하면서 잔인한 악습들이 사라져갔다.

오늘날 인류의 이성은 '종에 따른 차별'에 반대한다. 내가 속한 종의 입맛이나 오락을 위해 다른 종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는 투우·푸아그라(거위의 목에 금속관을 끼우고 사료를 강제 급여해 만드는 지방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식재료로 쓰였다) 등의 전통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냉철한 머리와 동시에 뜨거운 가슴도 지니고 있다. 미국 도살장의 어두운 진실을 파헤친 게일 아이스니츠의 <도살장>이라는 책에는 어느 도축장 일꾼의 증언이 등장한다.

"(도살장에서) 얼마 동안 일하다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동물을 죽일 수 있게 됩니다. 이른바 '피구덩이'에서 돼지랑 있다가 그놈 눈을 들여다보고는 '아이구 이 녀석 귀엽게 생겼네'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쓰다듬고 싶어질 수도 있지요. 도살대 앞에서도 돼지들이 다가와 강아지처럼 코를 문질러 대기도 했어요. 그러고 2분 뒤에 나는 그것들을 죽여야 했습니다.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말이지요. 어쩔 수 없는 거지요." 

이 일꾼은 동물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위해 도살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치르는 정서적 대가가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했다. 비록 생업일지라도 인간의 본성은 동물에게 고통을 주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 희망을 걸고 싶다. 우리 사회가 생명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를 바란다.

평소 육식으로 고통 받았던 동물들과 내 몸을 위해 다가오는 복날에는 채식을 하면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진정한 '보신'이 아닐까?


태그:#개식용 반대, #생명존중, #동물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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