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영화 포스터

▲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영화 포스터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의 습격을 받았다가 간신히 도망친 닉 퓨리(사무엘 L. 잭슨 분)는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분)에게 어떤 비밀이 담긴 USB를 전달하고 아무도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세계평화위원회의 책임자이자 쉴드의 간부인 알렉산더 피어스(로버트 레드포드 분)는 캡틴 아메리카에게 닉 퓨리가 일급 기밀을 몰래 빼내려고 시도한 배신자라 말한다.

USB의 행방을 밝히지 않은 캡틴 아메리카를 쉴드는 적으로 간주한다. 닉 퓨리와 알렉산더 피어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친 캡틴 아메리카가 닉 퓨리를 노린 세력을 밝히는 과정에서 쉴드의 숨겨진 실체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2008년 <아이언맨>의 대성공을 필두로 <인크레더블 헐크> <아이언맨 2> <토르> <퍼스트 어벤져>까지 숨 가쁘게 내달렸던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2012년 <어벤져스>를 종착역으로 1단계를 매듭지었다.

2015년 개봉하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목적지로 삼는 시네마틱 유니버스 2단계는 현재 <아이언맨 3> <토르: 다크 월드>가 극장 공개를 끝마친 상태다. 2014년 상반기에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이하 <윈터 솔져>)를, 하반기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과거 잘못된 정의가 낳은 망령 불러낸 <윈터 솔져>

세계 최초의 슈퍼 솔져로 나치와 레드 스컬에 맞섰던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의 다른 멤버들과 다른 배경을 지닌다. 아이언맨은 과학과 자본이 빚어낸 총아이며, 토르에게선 신화의 기품이 흐른다. 헐크는 과학의 부작용이 낳은 슬픔이다.

이들과 달리 캡틴 아메리카는 투철한 애국심과 정의로운 성격을 지녔지만 왜소한 체구를 지녔던 스티브 로저스가 슈퍼 솔져 프로그램을 거치며 태어났다. 아메라카의 'A'를 머리에 새기고, 성조기의 색깔을 몸에 두른 캡틴 아메리카에게선 슈퍼맨과 유사한, 영웅이 지켜야 할 도덕성이 숨 쉰다.

그러나 홀로 7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캡틴 아메리카는 돌아갈 곳이 없는 과거의 인물이다. 생사고락을 같이 한 동료들은 모두 죽었고, 사랑했던 여자 페기 카터(헤일리 엣웰 분)는 늙고 병들었다. 잠든 시간 동안 놓쳤던 것들을 따라잡으려 노력하지만, 동료와 여자친구 등과 함께했던 옛날이 그립기만 하다. <윈터 솔져>는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캡틴 아메리카가 극복해야 하는 아픔은 무엇인지 보여주고, 과거의 유산이 새로운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영화의 한 장면

▲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영화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윈터 솔져>에서 미군에서 지구의 안보를 지키는 쉴드로 소속을 옮긴 캡틴 아메리카에게 쉴드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희생은 불가피하다면서 위협이 되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고 말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쉴드의 결정에 의문을 던지면서 그렇게 얻은 것은 '자유'가 아니라 '공포'라 경고한다.

그저 옳은 일을 하고 싶었으나 이제는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하는 캡틴 아메리카, 쉴드의 일방적인 행보, 그리고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선 존 르 카레의 소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정서가 느껴진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는 자국민을 보호하는 정보기관에 대한 비판과 그들이 진정 보호하는 것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민주주의의 서구가 공산주의의 동구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이런 비판적인 시선은 <윈터 솔져>에서도 유효하다.

<윈터 솔져>를 연출한 조 루소, 안소니 루소 형제는 정치 스릴러의 외형을 가진 현실적인 히어로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암살단>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콘돌>같은 1970년대 정치 스릴러의 스타일을 참고 했던 루소 형제는 <콘돌>의 주인공 죠 터너로 분한 로버트 레드포드가 <윈터 솔져>에 캐스팅 된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한 <콘돌>의 죠 터너와 반대 지점에 선 알렉산더 피어스를 연기한 로버트 레드포드는 묘한 기시감을 선사하며 영화의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영화의 한 장면

▲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영화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퍼스트 어벤져>가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자와 힘에 지배당하는 자의 싸움이라면, <윈터 솔져>는 잘못된 정의가 낳은 망령을 과거로부터 불러낸다. <윈터 솔져>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맞수는 '윈터 솔져(세바스찬 스탠 분)'라 불리는 유령이다. 그는 <퍼스트 어벤져>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버키 반즈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줄만 알았던 버키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과거의 어떤 사실도 기억하지 못한 채로 조직의 지시대로 싸우는 인간 병기로 캡틴 아메리카 앞에 나타난다.

<퍼스트 어벤져>에서 슈퍼 솔져 프로그램을 지휘한 어스킨 박사는 캡틴 아메리카에게 힘의 중요성을 아는 자가 되고, 자기 본연의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그 가치를 방패처럼 수호한다. 반면에 윈터 솔져는 변질한 정의가 빚은 힘이다. 어쩌면 그는 '추운 곳에서 온 군인(윈터 솔져)'일지도 모른다.

윈터 솔져 세력에 맞서 싸우는 캡틴 아메리카는 진정한 정의의 회복을 역설하면서 기존의 세상을 허물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캡틴 아메리카가 보여주는 리더쉽과 희생정신은 퇴역한 군인인 샘 윌슨/팔콘(안소니 마키 분)의 지지를 얻고, 나탸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분)를 비롯한 쉴드의 멤버들을 변화시킨다. <윈터 솔져>는 캡틴 아메리카가 지닌 '방패'의 의미와 그가 왜 '캡틴'인지 다시금 정의하면서 앞으로 쉴드와 어벤져스에서 그가 어떤 존재로 활약할지를 예고한다.

정치 스릴러 결합해 미국 정부의 행보를 꼬집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영화의 한 장면

▲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영화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윈터 솔져>는 대형 블록버스터답게 풍부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배 침투 장면, 도심 카체이스 장면, 엘리베이터 격투 장면 등은 액션 영화가 뿜어내는 아드레날린을 보장한다. 아이언맨이나 토르 같은 날아다니는 슈퍼히어로가 아닌, 땅 위에서 활약하는 캡틴 아메리카는 타격기 위주로 싸우면서 상대적으로 현실감 있는 액션을 구사한다.

여기에 캡틴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방패는 방어용뿐만이 아니라, 찍기, 던지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면서 액션의 재미를 더한다. 맞상대로 등장하는 윈터 솔져 역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화려한 액션으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윈터 솔져>의 진정한 의미는 장르의 융합을 통한 현실의 환기다. <윈터 솔져>는 슈퍼히어로 장르에 1970년대풍의 정치 스릴러 장르를 결합해 현실 정치를 소환한다. 미국이 근래 치른 전쟁이 정의를 위한 유의미한 희생인지, 정의를 가장한 거짓말이 만들어낸 무의미한 희생인지 의문을 던지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감시에 몰두하는 미국 정부의 어두운 그림자를 비판의 대상으로 올린다. 블록버스터의 재미도 얻으면서 낯선 장르를 성공적으로 교배시키며 현실의 공기까지 성취한 조 루소와 안소니 루소 형제의 연출력이 실로 놀랍다.

<아이언맨>이 마블 영화의 출발점을 세우고 <어벤져스>가 도약대를 마련했다면 현실과 역사를 동시에 머금은 <윈터 솔져>는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 잡기에 충분하다. 흥미롭게도 올해 개봉 예정인 <엑스맨>의 새 시리즈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도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연결하는 내용이다.

새로운 슈퍼히어로의 전형을 제시한 2008년 <다크 나이트>에 이어 <윈터 솔져>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이 등장하는 2014년은 슈퍼 히어로 장르의 역사에서 중요한 해가 될 공산이 높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인 슈퍼 히어로의 진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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