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실을 양심선언했지만 증거인멸 등 혐의로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돼 공직을 잃은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최근 근황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한참동안 인터뷰하다 "잠시 바람 좀 쐬자"며 옥상에 올라오니 저 너머 낯익은 푸른 지붕이 보인다. 그 일을 겪으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으로 "대통령이 곧 국가는 아니다. 국민이 국가"라 하던 그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금 떠올랐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실을 양심선언했지만 증거인멸 등 혐의로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돼 공직을 잃은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최근 근황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한참동안 인터뷰하다 "잠시 바람 좀 쐬자"며 옥상에 올라오니 저 너머 낯익은 푸른 지붕이 보인다. 그 일을 겪으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으로 "대통령이 곧 국가는 아니다. 국민이 국가"라 하던 그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금 떠올랐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저기 보이는 4층 끝이 제 사무실이었어요. 나머지가 1팀부터 쭈욱. 1층에는 정부청사 어린이집이 있어요. 큰애랑 작은애가 여기를 다녔어요."

그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신이 1년간 근무했던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현 공직복무관리관실)이다. 현재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실로 쓰인다. 사무실은 블라인드로 가려졌다. 건물 뒤편에는 어린이집 놀이터가 보였다. 이곳에서 두 아이가 자랐다. 그리고 청사 위쪽으로 청와대 정문이 보였다.

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앞에서 만난 장진수(41) 전 지원관실 주무관. 2년 전, 그는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슈털어주는남자'에 출연해 청와대 행정관의 지시로 민간인 사찰의 증거를 인멸했다고 폭로했다. 그의 폭로로 부실 수사 의혹을 받았던 검찰이 재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그의 증거 인멸 혐의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위법한 증거인멸 지시를 따르지 말아야 했다는 것이다. 증거 인멸을 지시한 진경락 전 지원관실 과장에 대해서는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민간인 사찰·국정원 사건, 거짓된 전제 위에 벌어진 국기 문란"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은 예전 근무지였던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에서 사진촬영을 하려다가 직원으로부터 제지당했지만, 거리에서 우연히 자신을 알아보는 공무원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안부와 응원의 말을 건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은 예전 근무지였던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에서 사진촬영을 하려다가 직원으로부터 제지당했지만, 거리에서 우연히 자신을 알아보는 공무원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안부와 응원의 말을 건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최근까지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의 집은 옥인동이었다. 예전 근무지였던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사진 뒤쪽 건물)은 집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근 2년 만에 와본다고 말하며 슬쩍 웃었다.
 최근까지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의 집은 옥인동이었다. 예전 근무지였던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사진 뒤쪽 건물)은 집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근 2년 만에 와본다고 말하며 슬쩍 웃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자리를 옮겨 통인동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장진수 전 주무관과 인터뷰를 했다. 한 시간 넘게 폭로와 그 이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 도중 고민이 많은지 그는 "잠시 바람 좀 쐬자"며 같이 옥상에 올라갔다. 옥상에서 청와대가 보였다. 푸른 지붕이 유독 눈에 띄었다. 민간인 사찰의 배후로 지목되던 곳이다. 하지만 검찰은 윗선을 밝혀내지 못했다. 청와대를 바라본 뒤, 그는 내려왔다.

폭로에 앞서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증거가 없는데, 누가 믿어줄까' 하는 고민. 또 가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안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청와대에서 하라는대로 따라가 보는 게 괜찮지 않겠냐 싶었지만 괜찮을 거라던 청와대 사람들의 말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후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 징계위원회에서 사실대로 말했다. 하지만 메아리가 없었다. 1년 2개월이 지나 '이털남'을 통해 폭로했다.

그는 "폭로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폭로를 고민하던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고통이 컸다"며 "폭로 안 했으면 지금도 계속 그 고통 속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그는 대통령과 국가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통령=국가'가 아니라 '국민=국가'라는 것이다. 그는 "회사에서 사장이 바뀌면 직원들이 사장에게 맞추듯이 공무원들도 대통령을 중심으로 바뀌었다"며 "그게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 국가에 충성하는 일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덧붙여 현직 공무원들을 향해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그럴 때 '아니다'고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간인 사찰과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거짓된 전제 위에서 시작된 국기 문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민간인 사찰에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음성적인 저항, 국정원 사건에는 종북 세력이 거짓된 전제라는 것이다. 그는 "전제가 참인지를 증명하지 않고 국가기관이 나서 민간인을 사찰하고 댓글로 여론조작에 나섰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무직이다. 대법원 유죄 판결로 공직에서 '당연 퇴직'됐다. 당연 퇴직은 공무원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집행유예 및 선고유예 중인 경우에 퇴직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범죄자라는 낙인 때문에 선뜻 구직에 나서기 쉽지 않다. 이런 그를 위해 시민사회가 나서고 있다. 일자리를 주선하고 모금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관련기사 : 시민사회, MB 민간인 사찰 폭로한 장진수 돕는다)

최근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책으로 정리하고 있다. 오는 5월 말 경, <오마이북>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장진수 돕기 모임, 폐가 될까 죄송스럽다"

- 폭로, 그 후 2년이 지났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요?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서 좀 답답하고, 앞으로 뭘 할지 계속 고민만 하고 있는 중입니다."

- 다시 공직에 나갈 수 있는 겁니까?
"상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겠죠. 공직에 나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다시 공무원 시험을 치는 방법도 있고요. (웃음)"

- 공직이외에 관심을 두고 있는 데가 따로 있나요?
"딱히 어떤 것을 정해놓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필요로 하는 회사에서나 아니면 누군가 절 좀 불러주시면 좋겠는데요. 아직까진 그런 건 없었고요. 주변에 계신 여러분들께서 걱정을 많이 해주시고 있는데, 어떻게든 직장을 구하는 문제부터 빨리 해결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어려움을 알고 시민사회에서 장진수 전 주무관 돕기 모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가칭, '장진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뤄졌어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다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고, 또 만약 앞으로 잘못하는 일이 있다면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더 잘해야겠고,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궁리하고 있습니다."

- 책 낸다고도 들었습니다.
"지난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이후에 한 달 정도 집에서 혼자 원고를 썼습니다. 페이스북에 '장진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조금 올리다가 중단되었던 바로 그 이야기인데요, 아무튼 지금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서 출판사와 함께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책 내용은 한마디로 진짜 제 이야기예요. <한국일보> 법조팀이 낸 <민간인 사찰과 그의 주인>이라는 책이 MB정부의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사건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리를 잘했거든요. 그것을 다시 정리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는 겁니다."

"상사가 시키는 일이 국가를 위한 게 아닐 수 있다"

-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편하려고 한 것이죠.(웃음) 그 당시에 '국민에게 봉사해야지' 하고 마음먹기는 쉽지 않잖아요? 직장을 구한다는 심정으로 공무원이 된 거죠. 솔직한 말로."

- 이 사건을 통해서 스스로도 많이 변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진짜 중요하고도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제 스스로 많이 변했다고 말하기는 그런 것 같고요.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정권과 국가는 다르다는 거예요. 대통령이 곧 국가는 아니다, 국민이 국가예요. 회사에서 사장이 바뀌면 직원들이 사장에게 맞추듯이 공무원들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바뀌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상사가 이거하라고 하면 이거하고 저거하라면 저거하고 그게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인 줄 알았어요. 그게 또 국가에 충성하는 일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겪고 나니 상사가 시키는 일이 국가를 위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 현직 공무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럴 때 '아니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제가 그걸 못해서 그런지, 그 말을 해드리고 싶네요."

- 말씀대로 위에서 시키는대로, 규정대로 하는 게 공무원 이미지잖아요. 폭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뭡니까?
"처음부터 폭로를 고민을 했죠. 그런데 폭로했을때, '누가 믿어줄까' 하는 고민도 했어요. 가진 증거가 없는데, 상사가 시켜서 했다고 해본들 검사가 '무슨 소립니까, 증거 대보세요'라고 하면 과연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또 본능적으로 제 안위를 생각하게 됐어요. 가족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청와대에서 하라는대로 따라가 보는 게 괜찮지 않겠냐 한 것이죠. 그런데 재판에서 그 사람들이 말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어요. 약속한 벌금형도 안 나왔어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거죠.

1심이 끝난 직후 2011년 1월경에, 당시 행정안전부의 중앙징계위원회가 열릴 때 모든걸 사실대로 진술하기도 했어요. '이털남'에서 폭로하기 1년 2개월 전의 일이에요. 징계위원 10여 명이 제 얘기를 다 들었어요. 징계위원의 반은 공무원, 반은 민간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일 없이 무마되고 넘어갔어요. 동시에 저를 향한 입막음도 시작됐죠."

- 폭로를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후회는 없습니다. 왜 없냐면 제가 폭로 안 하고 지냈던 기간이 꽤 오래였어요.한 2년 가까이? 그때 고통이 컸어요.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고통이. 폭로 안 했으면 지금은 그 고통 속에서 계속 살고 있을 거잖아요. 그 기분을 알기 때문에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불법사찰?... "그렇게 학을 뗐는데, 없다고 믿어야"

그 일이 있고 2년이 흘렀다. 아직도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색하고 있다. '공무원'은 다시 그가 생각하는 미래 중 하나다. 그가 다시 '공무원' 장진수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그 일이 있고 2년이 흘렀다. 아직도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색하고 있다. '공무원'은 다시 그가 생각하는 미래 중 하나다. 그가 다시 '공무원' 장진수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이 사건을 추적한 <한국일보> 법조팀 기자들은 '국가기관에 의해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자행된 국기문란'이라고 했습니다. 당사자로서 이 사건을 규정하자면?
"저도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입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권력을 휘두르고 시민을 억압하는 이런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사건이 국정원의 정치개입 댓글 사건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그것은 두 사건 모두 거짓의 전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참이 아닌 전제 위에서 펼쳐지는 모든 논리는 필연적으로 참이 아닐 수밖에 없는데, 이 두 사건이 그렇습니다.

먼저 2008년에 만들어진 '공직윤리지원관실 지휘체계' 문건을 보면요, 거기에는 '전 정권 인사들의 음성적인 저항이 있어서 VIP 국정수행에 차질이 있다'는 식으로 첫머리에 기재돼 있거든요. 그리고 당면과제로서 공기업 임원 39명의 사표제출을 추진한다고 돼 있습니다. 실제로 전 정권 성향 인사들의 음성적 저항이 있는지를 증명을 해야 하는데, 무턱대고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한 뒤 일을 추진한 겁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책임자들은 댓글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하잖아요. '종북의 무리들이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고 국민을 이간질한다', '이들이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으니 그것에 대응해야 한다'는 겁니다. 국정원은 한국사회에 간첩 약 10만 명 정도가 암암리에 공직이든, 민간 기업이든, 언론이든, 학계에든 포진해 있고 이들에 의해 인터넷에서 세뇌된 무리들이 어마어마하다는, 이런 전제를 깔고 있는 거예요. 종북과 간첩이 있다면 그걸 증명해서 국가보안법으로 고발해야죠. 국정원이 종북과 간첩을 잡는 게 급선무일 텐데, 전제를 증명하지도 않고 엉뚱하게 행동부터 하는 겁니다.

이런 부분에서 저는 이 두 사건이 참 유사하다고 느낍니다. 증명되지 않은 거짓의 전제를 무작정 참이라고 믿고 국가기관이 나서서 국민을 억압하고 여론을 조작한 것입니다."

- 실제로 민간인 사찰과 국정원 대선 개입도 연결된다고 보는데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08년 7월에 생겼고, 원세훈 국정원장의 취임이 2009년 2월입니다. 그 배경도 비슷하다고 보입니다.
"예, 완전히 연결된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2008년 봄에 촛불집회가 일어났잖아요. 정권에서는 촛불을 하루 빨리 꺼야하죠. 그래서 '촛불 집회는 불순 세력이 선동한 것'이라고 하는 게 정권의 시나리오였다고 저는 분석하고 있어요. 그래서 김종익씨를 사찰했고, 김씨를 어떻게든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연결지으려고 시도한 것이죠. 그리고 아마도 국정원이 나서서 댓글도 쓰면서 여론을 형성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습니까?"

-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서 국정원 내에서는 내부고발자가 없었습니다. 경찰에서는 권은희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이 유일하죠.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유죄가 안 되고, 나머지 국정원 직원들은 기소 조차도 안 됐으니 누가 내부고발에 나서겠어요. 원세훈 전 원장 무죄되는 게 자기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무죄를 만들기 위해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 박근혜 정부에서 민간인 사찰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례를 보면 공직자 사찰은 이미 만연해 있다는 느낌입니다.  
"아직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직은 그대로 있지만, 민간인을 사찰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학을 뗐는데, 없다고 믿어야죠.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어요."


태그:#장진수 전 주무관, #민간인 사찰,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2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