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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승훈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최근 들어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목소리가 부쩍 커졌습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공식 브리핑에 나선 이 수석이 격정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지난 9일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의 '선친 전철' 발언에 "언어살인, 국기 문란, 무서운 테러" 등의 거친 표현을 총동원했던 '버럭' 브리핑('울먹인 적이 없다'는 이 수석의 해명을 반영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이 대표적이지요.

지난 18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청와대 춘추관을 찾은 이 수석은 '장성택 측근 망명설' 등  현안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을 한 뒤 마이크를 꺼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수석의 '버럭' 브리핑...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9일 오후 춘추관에서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언어살인이며 국기문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양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암살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박근혜 대통령도 선친인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9일 오후 춘추관에서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언어살인이며 국기문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양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암살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박근혜 대통령도 선친인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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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석은 "불통이라는 비판이 가장 억울했다"며 대선 1주년을 앞둔 소회와 집권 1년차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을 쏟아냈는데요. 40여 분간 계속된 이 수석의 말을 노트북으로 받아치다 보니 손목이 뻐근해질 정도였습니다. 이날 어조도 양승조 최고위원의 발언을 비판할 때보다는 못했지만 때때로 격정적인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목도 적지 않았습니다.

보통 마이크를 끄고 하는 브리핑은 '쓰지 말아 달라'고 하거나 '배경 설명으로만 참고해 달라'고 하던 평상시와는 달리 이 수석은 자신의 실명 공개 보도를 못박았습니다. 다만 "오늘은 울먹했다고 쓰지는 않을거지?"라며 은근히 기자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이미 보도된 대로입니다.( 관련기사 : 이정현 수석 "원칙대로 가는 건 자랑스러운 불통")

이 수석의 이런 모습을 두고 일부에서는 여권의 수세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연출된 '정치적 쇼'라는 혹평을 가하기도 합니다. 물론 '대통령의 입' 청와대 홍보수석의 발언이 정치적 의도 없이 나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이 수석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진정성만큼은 알아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시고 있다", "대통령으로부터 몇시간 밖에 못잔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오로지 경제, 일자리 살리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 국정 전반을 이끌고 계신다"는 이 수석의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들입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정현 수석의 '버럭 브리핑'을 두고 "박 대통령을 향한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만은 틀림없다"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박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과 자기 확신이 강하다는 겁니다.

그동안 이 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들을 이야기했을 때 '그런 면이 있을 수 있다, 잘 생각해 보겠다'는 식의 반응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 수석의 입에서 대부분 그런 비판이 왜 잘못됐는지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반론이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즉각 튀어나왔는데 여기에는 '박 대통령은 잘 하고 있다'는 강한 자기 확신이 작용했을 겁니다.

박근혜 정부 이정현과 참여정부 유시민의 공통점

청와대 전경
 청와대 전경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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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 수석에게 국정에 협조는 하지 않고 발목만 잡는 야당의 비판은 야속할 것이고,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는데도 기대와는 달리 지지율은 하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은 답답함 그 자체일 수 있습니다. 이 수석이 기자들을 만나 감정을 여과 없이 토로하는 게 잦아진 것은 이런 답답함이 작용했을 지도 모릅니다.

여권 내에서는 이 수석의 활약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대통령 인기가 떨어지면 당으로선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박 대통령을 겨냥한 공격을 그만큼 진심을 다해 방어해주는 사람이 누가 있냐, 청와대에서는 이정현 수석이 유일하고 당에서도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정도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두둔하더군요.

이런 이 수석을 두고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렸던 유시민 전 의원의 모습이 겹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대통령을 겨냥한 공격을 방어하고, 때로는 역공에 나서 응징하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겁니다. 

문제는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경호하는 데에는 부작용이 뒤따랐다는 점입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유 전 의원의 '활약'은 지지자들에게는 열렬한 환호를 받았지만 대통령을 무조건 옹호함으로써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이정현 수석의 경우도 대통령에게 하는 쓴소리를 차단하는 '예스맨' 행보가 오히려 합리적인 소통을 방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유효한 노회찬 전 의원의 어록

사실 유시민 전 의원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닉네임을 공식화한 것은 노회찬 전 의원이었는데요. 노 전 의원이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하자, 유 전 의원이 "(노 의원은) 공부를 좀 하라"고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노 전 의원이 다시 유 전 의원을 겨냥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마지막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씨를 연상시킨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이후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표현만 널리 회자됐는데요. 당시 노회찬 의원은 유 전 의원을 비판하면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한나라당이 백번 비판할 때 유시민 의원이 한 번 비판하는 게 대통령이 올바로 가시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시간은 많이 지났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격'인 이정현 수석에게 여전히 유효한 말이 아닐까요?


태그:#박근혜, #이정현,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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