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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승훈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논설실장 및 해설위원실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논설실장 및 해설위원실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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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사 논설실장 및 해설실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습니다. 언론사 편집국장 오찬 간담회, 정치부장 만찬 간담회, 청와대 출입기자 오찬 간담회에 이어 네 번째 대언론 '식사 정치' 자리였습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는 뜨거운 관심거리였습니다. 그도 그럴 게 당시는 박 대통령이 불법 대선 개입 사건에 휘말린 데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킨 국가정보원에 '셀프 개혁'을 주문한 후였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이 개혁의 주체로 적절하냐는 논란이 일었고, 또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국내 정치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국정원에 대해 비판 여론도 높았습니다. 과연 박 대통령은 이런 국정원의 행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가 청와대와 사전 교감 속에 이뤄졌을 것이라는 의혹에 대한 해명도 대통령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죠.

박 대통령의 네 번째 식사정치에 없었던 것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 순방 후, '윤창중 성추행 파문'이 불거졌음에도 언론사 정치부장 만찬 간담회를 예정대로 진행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윤창중 파문'과 관련된 곤혹스러운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죠. 당시 박 대통령은 새 정부의 인사 파동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오히려 실점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때가 때인 만큼 논설·해설실장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박 대통령이 국면을 전환시킬 만한 메시지를 내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간담회 하루 전이었던 9일, 사석에서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지켜보라, 내일 간담회에서 뉴스가 나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박 대통령에게 전달된 예상 질문 및 답변 자료에 국정원 문제가 들어가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기대는 현실이 되지 못했습니다. 간담회가 끝난 후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전달된 발언 녹취에는 국정원 관련 내용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중 정상회담, 경제, 북한, 교육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고 갔지만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국정원 개혁,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은 빠져 있었습니다. 질문도 없었고 당연히 대통령의 답변도 없었습니다.

13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20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 서울광장 수놓은 수만개 촛불 13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20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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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청와대에서 민감한 이슈라는 이유로 국정원과 관련한 대통령의 발언을 가위질 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청와대에서 사전에 논설·해설실장들에게 '국정원 관련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죠. 각 언론사에서 십수 년간 기자생활을 했던 논설·해설실장들이 국정원 관련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춘추관을 찾은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국정원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느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청와대가 임의로 뺐다가 (언론으로부터) 무슨 매를 맞으려고 나왔던 이야기를 빼겠느냐"고 부인했습니다.

또 '국정원 문제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느냐'고 묻자, 역시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하나, 그랬다가는 바로 기사가 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사실 20명이 넘는 논설·해설실장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청와대가 문제될 만한 요청을 하거나 대통령의 발언을 '마사지'하는 건 불가능한 게 사실일 겁니다.

국정원 문제에 대한 질문은 왜 빠졌을까

사실 <오마이뉴스>는 이날 간담회에 초청받지 못했습니다. 논설실장 직함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포함한 인터넷 매체들과 전문지, 영자신문, 지역신문, 종편들이 초청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다른 때와 달리 중앙 일간지, 경제지, 방송, 통신사만 초청 대상이었죠.

오찬에 동석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간담회 분위기에 대해 "정치부장단 간담회와는 다르게 매우 점잖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실제로 중간 중간에 한동안 말이 없이 어색한 상황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도 "왜 국정원 질문이 안 나왔는지 의아했다. 그렇다고 국정원 질문을 해달라고 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예정된 시간을 45분이나 훌쩍 넘겨 끝난 정치부장 간담회와는 달리 논설·해설실장 간담회는 예정된 시간을 거의 지켜 끝났습니다. 일부 논설실장들은 "(공무원들) 골프 허용해주시죠"라고 하거나 "프레스센터, 언론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남한강연수원을 기획재정부나 언론인재단 (산하로) 옮겨주시면 어떨까 싶다"고 민원성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평소 사설이나 칼럼으로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내던 논설·해설실장들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가장 대답하기 껄끄러웠을 국정원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은 '사태'(?)를 접하고 박 대통령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하고 싶었던 말은 있었는데 멍석이 깔리지 않아 답답했을까요? 청와대를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을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태그:#박근혜,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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