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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승훈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지난주 청와대 고위관계자와 오찬을 함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이 상황인지라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개성공단 이슈로 모아졌습니다.

이 인사는 "개성공단의 상징성이 이렇게 큰지 청와대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다, 그전까지는 안 그랬는데 개성공단 폐쇄 이야기가 나오니까 외국인들의 동요가 시작되더라"고 하더군요. 특히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대사관 직원들 소개까지 검토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당시는 북한발 안보 리스크로 이른바 코리아 리스크가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던 때였습니다. 한반도 긴장이 이어지면서 코스피 지수는 후퇴를 거듭해 1900선이 무너지기도 했고, 해외 유명 가수들의 내한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싸이의 신곡 '젠틀맨'이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이 인사는 "싸이의 힘이 대단하다"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싸이 신곡 발표를 전 세계가 지켜봤다. 뮤직비디오도 화제가 됐고 한국에서 콘서트도 했다. 밖에서 그렇게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한반도 상황이 미디어를 통해 보는 것만큼 심각하지는 않구나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싸이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기여했다는 그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더군요.  그는 거듭 "싸이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안보 문제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싸이 예찬론을 폈습니다.

박 대통령 한마디에 '창조경제 아이콘' 된 싸이

싸이(본명 박재상)가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HAPPENING' 콘서트에서 열창을 하며 공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이끌고 있다.
▲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 '싸이' 싸이(본명 박재상)가 1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HAPPENING' 콘서트에서 열창을 하며 공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이끌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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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얼마 후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도 싸이 예찬론이 나왔습니다. 지난 18일 지각 출범하게 된 미래창조과학부 업무보고 자리에서였죠. 박 대통령은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시건방 춤'에 대해서 최초의 안무가에게 저작권료를 냈다는 기사를 봤다, 그동안 관행으로는 춤만 살짝 바꾸면 저작권료를 안 내도 되는 그런 환경이었는데 이렇게 남의 창의력을 인정하는 자세야말로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에 관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싸이가 단순히 전 세계적으로 '뜬' 연예인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인 '창조경제'를 상징하는 핵심 아이콘으로 떠오르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싸이는 박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특별공연을 한 인연도 있네요. 당시 나이 지긋한 어른 관객이 대부분이어서 싸이가 아무리 흥겹게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쳐도 무대 반응이 썰렁했던 게 기억나긴 하지만요. 싸이도 그런 경험 아마 처음이었을 겁니다.

어쨌든 이후로도 박 대통령은 수시로 싸이를 언급했습니다. 창조경제를 언급할 때뿐만 아니라 화끈한 기업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박 대통령은 "이제는 시장 수요자를 우리나라에 한정해 보는 시각을 탈피하고 어떤 경우든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수 싸이를 유튜브를 통해 세계인이 보고 열광하는 세상인데, 우물 안 개구리같이 우리 시장만 보고 (규제)한다는 것은 안되는 일이다, 뭐든지 세계 시장을 놓고 규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면서 "규제를 확 풀어서 투자가 많이 돼야한다, 찔끔찔끔 해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다"라면서 "확실하게 규제를 풀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박 대통령은 또 여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최근 싸이가 2집 내고 류현진 선수가 2승을 거뒀는데 이런 게 끼와 꿈이 실현되는 사회"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박지성이 히딩크의 황태자이듯 싸이를 박 대통령의 황태자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싸이를 앞세운 대통령의 화법이 의도한 것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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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대중에게 친근한 '스타'를 예로 드는 것은 개념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창조경제를 보다 쉽게 풀어내기 위해서겠죠. 박 대통령이 "경찰과 검찰은 약자들의 빽", "인사청문회에서 쫄아서" 등의 은어를 쓰는 것도 가볍다는 평가가 없지는 않지만 보다 친근하고 쉽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화법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과감한 규제 철폐와 함께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기본 콘셉트가 뭐냐는 말이 있는데, 누누이 얘기했지만 어디를 내리치고 옥죄는 게 아니라 각 경제주체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려서 일하면 꿈을 이룰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눌러서 열심히 땀 흘려도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는 사회는 너무 절망적이니 그런 얘기가 없게 하자는 것이다. 누구의 희망을 꺾자는 게 아니니까 그런 취지에 맞춰서 하게 되면 경제민주화는 틀림없이 제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재벌 규제 완화와 경제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대체휴일제 도입 논란만 해도 그렇습니다. 정부·여당은 대체휴일제를 하반기에라도 도입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가 재계의 반발에 신중 검토로 후퇴했습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경제 상황 악화와 투자를 볼모로 한 재벌들의 압박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지금의 경제민주화에 해당하는 재벌 개혁을 외쳤던 전임 정권들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미리 비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한쪽에서 재벌에 대한 규제 강화가 불가피한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재벌 규제 완화를 외치는 게 모순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은 과거에 익히 봐왔던 실패 사례들 때문입니다.

벤처업계의 싸이 나올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의 진심은?

박 대통령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는 연예계의 싸이가 아니라 중소기업 혹은 벤처 업계의 싸이가 나오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유통망을 이용해 끼와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시장에서 인정받은 싸이의 사례가 경제 분야에서도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 정부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들고 성실한 실패자에 재도전 기회를 주는 등의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해결해내야 합니다. 

재벌 규제 완화와 경제민주화, 과연 박 대통령의 진심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을까요. 그 진심을 파악하기 위해 말이 행동, 즉 구체적 정책으로 발현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가 이번 주로 예정돼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기대가 됩니다. 이날 메시지가 박 대통령의 진심을 파악할 수 있는 한 가지 단서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태그:#박근혜, #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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