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이 10일 전주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후반 초반에 있던 찬스를 살리지 못하며 1-2로 패배했다. 후반 막판에 터진 이근호의 골로 영패는 면했지만 1군도 아닌 상대를 맞이해 아쉬운 경기를 펼치면서 우리나라 축구의 문제점과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수비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최전방 공격수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최전방으로 나온 조동건은 크로아티아 수비진을 이겨내지 못하면서 단 한 개의 슈팅도 만들지 못했다. 결국 조동건은 전반이 끝난 후 한국영과 교체되었다.

과거 우리 대표팀의 자랑이었던, 스트라이커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수들을 알아보자. 

최순호, 스트라이커의 본질을 알려주다(A매치 95경기 30골)

천재 스트라이커라고 불리는 최순호는 항상 팀이 필요한 순간에 골을 터뜨리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185cm라는 큰 키 때문에 기술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뛰어난 기술과 함께 피지컬적인 능력도 좋았기 때문에 엄청난 활약을 하였다. 그리고 축구에 대한 머리도 뛰어나 측면으로 빠지면서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거나 동료를 이용하면서 찬스를 잘 만들었다. 그가 지금 현역으로 뛰고 있다면 홍명보 감독의 신임을 받고 있는 공격수가 되었을 것이다.

최순호는 18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국가 대표에 입성해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당시 있었던 세 번의 평가전에서 득점을 하면서 '최순호'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1986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그가 보여준 골은 이 대회 최고의 골 9위에 꼽히기도 하였다.

최순호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이탈리아 명문 축구팀 유벤투스가 나온다. 유벤투스에서 그에게 많은 관심을 표했기 때문이다. 키도 크고 기술도 뛰어났기 때문에 충분히 유럽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보았지만 아쉽게도 당시에는 유럽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에 남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그가 유럽에 갔다면 '초이'의 명성이 '차붐' 만큼 커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황선홍, 불운의 아이콘에서 희망의 아이콘으로(A매치 103경기 50골)

황선홍은 지금의 이동국 만큼이나 팬들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은 선수이다. 이동국은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넣지 못하면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남아공 16강전 우루과이전에서 찬스를 놓친 것 때문에 더 많은 안티팬을 만들었다. 황선홍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볼리비아전에서 보여준 부진으로 16강 탈락의 '원흉'으로 지목되며 많은 욕을 먹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1998년 월드컵을 위해서 꾸준하게 노력했고 그 결실이 맺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입은 십자인대 부상으로 인해서 만회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불운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잊혀져 가고 있었던 황선홍. 그러나 2002년을 앞두고 홍명보와 함께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할 선수를 필요로 했던 히딩크 감독의 눈에 띄면서 팀을 이끌며 월드컵을 준비했고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는 멋진 왼발 터닝슛으로 비난을 찬사로 바꾸었다. 이후 붕대 투혼, 이탈리아전에서의 멋진 프리킥 등 왜 그가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인지를 알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월드컵 4강으로 이끌면서 멋지게 마무리했다. 이제는 최고의 감독으로서 활약하고 있는 황선홍. 포항에서 '티키타카(짧고 간결한 패스 축구)'의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키워주기를 희망한다.

최용수, 독수리의 날개는 너무나도 컸다(A매치 67경기 27골)

최용수는 골 넣는 것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고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뛰어난 활약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지금은 FC서울 감독을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그가 이름을 알린 것은 바로 1998년 월드컵 예선 때부터였다. 황선홍의 부재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었던 대한민국의 그의 존재만으로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서정원의 동점골을 도와주며 도쿄대첩을 만든 것 또한 최용수이다. 그러나 2002년 미국전에서는 아쉽게 골을 놓치며 월드컵에서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독수리로 남아있다.

이동국, 라이언 킹의 모습을 보여주다(A매치 99경기 30골)

이동국은 참으로 아쉬운 선수다. 중요한 순간마다 심한 부상이 그를 잡았고 이전에 보여주었던 플레이 때문에 많은 안티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 이동국 만큼의 영향력을 보여준 선수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깜짝 모습을 보여주며 화려한 신고식을 했다. 잘생긴 얼굴과 뛰어난 실력까지 갖춘 그는 안정환, 고종수와 함께 트로이카를 이루며 K리그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동국은 히딩크 감독의 신임을 받지 못한 채 2002년 월드컵을 함께 하지 못했고 해외 진출을 할 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해외 진출 패배자'라는 주홍글씨를 안게 되었다.

2006년에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더 많은 안티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 이후 K리그에 돌아와 최고 공격수의 모습을 보여주며 멋진 활약을 했지만 미운털이 박혔는지 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2010년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다소 밋밋했던 활약으로 더 많은 질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한국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공격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 부상 때문에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빨리 회복해서 라이언 킹의 모습을 빨리 보여주기를 바란다.

박주영, 역시 한국에는 네가 필요하다(A매치 61경기 23골)

축구팬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인 박주영. '천재'라고 불리는 그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청소년 시절 중국을 상대로 보여준 플레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있구나'라는 충격을 주는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월드컵이나 아시안 게임, 올림픽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터뜨리며 왜 박주영인가를 알 수 있게 하였다. 나이지리아전의 프리킥과 올림픽 3, 4위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나온 그의 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병역 기피 문제와 함께 아스널과 셀타비고에서 보여준 그의 저조한 활약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안티팬들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현 대표팀 '원톱'이라는 문제의 가장 확실한 답이 박주영 부활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박주영이 빨리 뛸 수 있는 팀을 찾아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다시 한 번 원정 16강이라는 좋은 결과를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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